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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완전하다 안심하라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4.27 10:55
  • 수정 2015.10.20 18:12
  • 댓글 0

삶의 매 순간은 그것 자체로 숭고하고 경이롭고 아름답다. 당신 삶은 언제나 완전하다. 당신은 결코 ‘잘못’을 하거나, ‘죄’를 지을 수 없다. 스스로 그렇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죄의 과보를 결정하는 건
자신의 선택에 달렸을 뿐
지금 이 순간 충실한다면
미래의 두려움도 사라져

우주법계는, 부처님께서는 그 누구도 심판하거나 벌하지 않는다. 심판하고 벌하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일 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없거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혹은 매일 술을 퍼 마심에도 불구하고, 아내와의 매일 싸움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름답고 완전하다. 우리의 삶에 실패란 없다. 실패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을 뿐 실패자는 없다. 이 세상에서 진리라는 이름으로, 어떤 특정한 가르침을 제한시켜 놓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가거나, 최악의 과보를 받는다고 이야기 해왔던 그 모든 도그마와 방편을 이제는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 방편은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역사를 이어오며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방편에 스스로 갇힌 채 방편 뒤에 드넓고도 광활한 자유로운 진리가 있음을 보지 못한다.

‘법화경’에서는 제법실상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제법실상이란 있는 그대로의 제법, 즉 현실의 모든 것이 그대로 참된 실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진리라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행위를 하든, 당신의 삶은 하나의 숭고한 진리이다.

붓다는, 진리는, 나를 통해 진리를 드러낸다. 진리는 꽃 한 송이를 통해 진리로 피어난다. 산과 들과 꽃 한 송이와 당신과 나를 빼고, 별도의 신이나 붓다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무리 수준이 낮거나, 돈이 없거나, 계급이 낮거나, 능력이 없거나, 성격이 나쁘거나,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 그는 그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성스러운 사람과 티끌 만큼도 다르지 않다. 그는 그 자신의 삶이라는 진리를 꽃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직 진리는 일체 모든 존재를 완전히 동등하게 사랑하며, 존귀하게 여기며, 찬탄할 뿐이다.

내가 남들보다 잘난 부분에 대해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 공부를 통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보다 높지 않고, 낮지도 않으며, 더 많이 깨달았거나 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의 진리의 길을 자기답게 걷고 있는 중이다.

설사 나쁜 짓을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그 행위를 통해 삶을 배워나가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아름답다. 가해자는 가해자의 몫을 통해 깨닫고, 피해자는 피해자의 몫을 통해 깨닫는다. 그 둘은 원한과 복수의 관계가 아닌 서로를 깨닫게 해주는 아름다운 스승이요, 사랑스런 관계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핍박 받음을 통해 무언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었던 사람, 혹은 피해 받는 것을 통해 업장을 소멸해야 했던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이 세상이라는 연극 속에서 피해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가해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양쪽 모두는 저마다 자신의 진리를 행하고 있을 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용서받고 있다. 물론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를 빼고.

처벌이나, 죄의 과보는 언제나 나 자신이 원했을 때만 온다. 만약 내 안에서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용서했고, 그 모든 것이 다 완전했음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래서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면 당신은 과보를 받을 필요가 없다. 업보는 기계적으로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의 근원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존재다.

그러니,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억압하지 말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라. 당신은 완전히 안심해도 좋다. 이 세상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죽음 이후를 걱정하지 말라. 우주의 근원은 자비와 사랑의 파장, 그 파장 안에 넘실거릴 뿐이다. 거기에 악, 두려움, 근심, 걱정, 죄라는 것은 붙을 자리가 없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역사에서, 종교에서. 수도 없이 많은 각종의 학교에서 가르쳐 온 모든 것을 넘어 설 수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넘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온전한 존재함, 그저 ‘있음’으로 매 순간에 있는 것이다. 오로지 매 순간에 행복하게 존재하고 있으라. 완전히 안심한 채, 두려워할 것 없이, 매 순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만 하라. 바로 그 때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고, 모든 것은 언제나 완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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