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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조오현-아득한 성자

기자명 김형중

한국 선사시의 새형식 개척한 시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

오현 스님의 대표 작품으로
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돼
무상하고 허무한 인생이나
하루 잘 산 이가 주인공 강조

시인은 시로써 말하고 도인은 깨달음의 도력(道力)으로 평가한다. 구도자는 아침에 깨달음을 얻고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득한 성자’는 오현(1932~ ) 스님의 대표시로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오도송이다. 그러나 기존의 오도송과는 그 형식이나 내용, 격조가 사뭇 다르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가 참으로 의미가 깊은 표현이다. 우리가 백 년 천 년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재 이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다. 우리의 삶은 오직 현재만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과거라 하고,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을 미래라고 부를 뿐이지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경험할 수 없다.
오직 현재, 오늘 이 순간 찰나만을 살고 있다. 이 찰나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무한한 시간인 겁이라는 영원한 시간을 이루는 것이다. 시간은 현재 이 순간 찰나의 연속일 뿐이다. 세상은 무상하다. 이 도리를 깨달은 자가 부처이고, 아무 인식 없이 사는 자를 무지한 중생이라 부른다.

무상을 깨달은 사람은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모든 시간이며 가치 있는 시간임을 아는 사람이다. 무상하고 허무한 인생이지만 하루를 잘 사는 사람이 우주의 주인공이고 역사의 창조자이다.
오늘 하루 이 순간을 잘 살면 위대한 삶이요 부처의 삶이다. 백 년도 못 살면서 천 년의 욕망으로 미쳐서 사는 삶이 어리석은 중생의 삶이다.

본래 시간이란 실체는 없다. 다만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계의 사물들이 무상하게 변화할 뿐이다. 인간들은 사물의 변화 모습에 따라 시간이란 관념을 만들어 놓고 마치 시간을 기준으로 세상 만물이 변화하는 것으로 거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범부도 천성(千聖)도 오직 현재 이 순간만을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그러나 하루살이 삶이지만 하루살이는 자신이 되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고 집착을 버리고 마지막 알을 까고 죽는다.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위대하다.

만약 알을 까지 않고 죽는다면 하루살이의 삶은 영원히 끝나 버린다. 알을 까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 삶은 영원히 지속된다. 역사의 계승자로서 주인공으로서 역할이 가능해진 것이다. 알을 까는 일은 위대한 불사(佛事)다. 하루를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잘 살다가는 하루살이는 천 년을 사는 성자와 같다.

서포 김만중은 조선문학을 부르짖으며 “문학은 자신의 민족혼이 깃든 모국어로써 노래하라”고 하였다. 우리의 언어가 없던 시대는 중국의 한자를 빌어서 시를 읊고 역사를 기록하였다.

‘아득한 성자’는 이런 면에서 한국선시사(韓國禪詩史)에 새로운 시 형식을 개척한 혁명이요, 하나의 돌파이다. 아무도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지의 선시 형식의 모형을 개척한 것이다.

앞으로 선시가 자신의 깨달음의 세계를 일반인들이 잘 알 수 없는 한시 형식을 통해서 읊는 것보다 우리들의 마음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나타내기에 가장 쉬운 우리 글인 한글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 한국 시단에 심오한 정신세계와 사유를 통해 얻은 깊은 사상과 절제된 언어로 빚은 좋은 시를 보태게 될 것이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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