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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암사-천년불심길-송광사-무소유길(하)

밤하늘 은하수도 그가 걸으면 무소유길

"시대의 실상 모른 체 하려는
 무관심은 비겁한 회피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인간이다"

▲ 무소유길 걸으면서도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그래야 불일암에 스며있는 법정 스님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법정 스님 만나러 가는 길이다. 무소유길 따라서 ‘무소유’ 펼치며 가는 길이다. 숲과 숲을 이어주는 저 작은 다리 건너야 진짜 무소유길이다. 저 숲에서 이 숲으로 들어설 때 둘이 오지 말라는 듯, 혼자서 조용히 발밑 살피며 오라는 듯, 폭 좁은 나무다리 하나 저렇게 놓여 있으니 저 다리 건너야 진짜 무소유길이다. 길섶에 글판 하나 서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스님의 법문이 담긴 ‘산에는 꽃이 피네’서 마주했던 글이다.

이 책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출판담당 기자였기에 밤새 탐독했다. 행간 깊이 자리 잡았을 스님의 마음 한 자락 파악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어쩌면 젊은 시절 단칼에 법정 스님을 예단했던 치기를 용서받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무소유’를 처음 만난 건 1986년 봄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고백하건대 ‘무소유’의 무소유 편을 읽고는 이내 책을 덮었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니 가능한 그 무엇도 갖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한마디는 ‘지금 갖고 있는 것도 큰 것이니 더 이상의 꿈은 꾸지 말라’로 읽혀졌다.

무소유를 다시 마주한 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봄. 대학 졸업 직후 형님이 운영하는 도매 서점에서 일하던 때다. 4개월 남짓 일하는 내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소매점으로부터 주문 들어오는 책이 ‘무소유’였다. ‘내가 모르는 뭔가 있다!’ 모두가 퇴근한 뒤 책상에 걸터앉아 책을 펼쳤다. 아! ‘인형과 인간’편을 읽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현대인들은 자기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 쓸 것인가.’

지식인들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비겁한 침묵으로 처신한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이라 설파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일갈에서 수좌 특유의 칼칼함이 느껴졌다. ‘인형과 인간’ 마무리 대목은 ‘무소유’ 전 편 중 최고의 명문이다.

▲ 저 다리 건너야 진짜 무소유길에 들어 선 것이다.

‘책임질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이다. 이 시대의 실상을 모른 체 하려는 무관심은 비겁한 회피요, 일종의 범죄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나누어 짊어진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이웃의 기쁨과 아픔에 대해 나누어 가질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다. 우리는 끌려가는 짐승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인간이다.’

서울 등지고 송광사로 돌아가 불일암 짓고 정진과 집필에 전념한 연유가 어렴풋이 잡혔다. 정치 조작극으로 8명이 처형(제2 인혁당 사건) 당하는 시대의 비극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지 고민했던 스님. ‘자신부터 성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것이다. 죄송하고 부끄러워 밤 지샜던 그날, 아직도 생생하다.

‘쏴아아∼’ 바람에 부대끼는 대나무 소리 청량하다. 한 마디 한 마디 꼭꼭 마디지어가며 꼿꼿하게 하늘로 오르는 저 대나무 정말이지 법정 스님을 꼭 닮았다. 말씀 하나, 행동 하나 허투루 한 법이 없던, ‘시시한 말을 하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빛이 조금씩 새어 나가는 것 같아 말들이 늘 허전해 진다’는 법정 스님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은, 대나무 숲길 홀로 걸어가는 법정 스님의 뒷모습과 복효근 시인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 겹쳐 한 그림으로 떠오른다. 이 길을 걸었던 ‘수좌 법정’이 품었을 고독의 한 조각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 내게서 대쪽 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 고백컨대 /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 흰 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 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중략)’

▲ 숲과 암자를 잇는 문은 저 대나무 터널이다. ‘문 없는 문’이다. 강행원 화백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문”이라며 웃는다.

대나무 숲길 끝나는 곳, 거기서 불일암 도량은 시작한다. 대나무 숲 터널이 숲과 암자를 잇고 있다. 경계가 분명하되 경계가 없는 ‘문 없는 문’이다. 암자에 오르는 돌계단은 원래 암자 중앙을 향해 있었는데 불일암 머무른지 10년께 법정 스님이 왼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묘한 곡선이 그려진다. 나그네는 문 없는 문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 얼마쯤 가서는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거기서 또 얼마쯤 가서는 오른쪽 돌계단을 올라서야 암자와 직면하는 에스(S)자 길이다. 법정 스님이 마당에 나와 서 있어도 나그네는 금방 만날 수 없다. 찾아오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에게도 얼마간의 시간과 침묵이 필요하다.

▲ 깊은 고독 속에서 건져낸 언어가 모여 ‘무소유’가 되고 ‘말과 침묵’이 되었다. 불일암 전경.

스님이 전하는 ‘침묵’은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기 위한 수행 의미의 ‘거룩한 침묵’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서슬 퍼런 침묵’이 조화된 침묵이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다. 비겁한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법정 스님은 ‘당당한 말이 흩어진 인간을 결합시키고 밝은 통로를 뚫을 수 있다’고 확언한다. 수도자의 침묵이 고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이 생 다하는 날까지 두고두고 음미해봄직한 일언이다.

▲ 6. 송광사에서 감로암으로 넘어가는 길도 호젓하다.

평소 좋아하셨다는 후박나무는 오늘도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다. 불일암 지을 때 심었다는 저 후박나무 아래, 장작더미 속에서 골라낸 나무 몇 개 이리저리 맞춰놓고는 못 몇 개 퉁퉁 박아 만들었다는 저 의자 놓고, 말없이 앉아 조계산 지나는 모든 소리 들으셨겠지. 댓잎 부딪치는 소리, 찻잎 익어가는 소리, 하늘 길 밟아가는 구름 소리마저도 들었을 성싶다. 그리고 먼 산 응시하며 다짐했으리라.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 두고 싶다.’

▲ 송광사 우화각 계곡에 연등이 걸렸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법정 스님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단연 무소유다. 그런데 왜 무소유여야 하는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 덕에 밤하늘 걸어보는 취미가 생겼다. ‘육신 버린 후 훨훨 날아서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작은 별에 법정 스님은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도 손수 만든 투박한 의자 요리조리 옮겨놓으며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보고 계시겠지! 이생에서 머문 그 순간순간이 무소유의 삶이었듯이, 작은 별나라에 머무는 찰나찰나도 무소유 삶이니 이웃 별 구경하러 다닐 때 밟아 보았을 은하수도 무소유길이다.

‘예전 수도승들은 살던 산이 단조로워지면 도반들 곁을 떠나 더욱 깊은 산을 찾아 나섰다’ 하셨지요? 혹 낙조 보는 게 단조롭게 느껴지시면 이리로 오시지요. 한글이 너무 좋아 다시 찾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송광사 대웅전. 선암사에서 천년불심길을 따라 걷다보면 송광사 대웅전에 다다른다. 부도암을 거쳐 감로암을 지나 불일암에 이르는 길을 추천한다. 40여분 거리. 불일암만 참배한다면 계곡따라 일주문 방향으로 내려오다 불일암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을 택해 오르면 된다. 소요시간은 약 20분. 필자는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는 나그네들을 위해 송광사 일주문에서 시작해 불일암, 감로암, 보조국사 탑비와 부도암을 거쳐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이것만은 꼭!

 
부도암 : 효봉영각 옆 대나무 숲으로 300m 쯤 올라가면 부도암이 있다. 건물 편액은 부도전(浮屠殿)이며, 비전(碑殿)이라고도 한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29기의 부도와 5기의 비(碑)가 있기 때문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부도는 여기에 있다. 부도암은 송광사 율원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감로암 : 원감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감로암은 염불원으로도 쓰인다. 송광사 16국사 중 한 분인 자각국사 진영이 무량수전에 봉안돼 있다. 감로암 앞 부도탑은 원감국사 충지 스님 부도탑이다.

 
국사전 : 국보 제56호 전각. 동·남·북벽에 송광사가 배출한 고승 16국사 영정 16폭이 봉안돼 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비롯해 진각, 향우, 청진국사의 향훈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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