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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산이 무너져도 항상 고요하고[br]양자강이 흘러도 흐르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도 옛날의 성인보다 모자라지 않고 일도 옛날의 성인이 했던 것에 떨어지지 않아서 천하국가가 태상에 올라가 혼연히 화서(華胥)의 즐거움을 똑같이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화서는 열자 황제편에 나온다. 황제가 꿈에 화서에 가서 무위자연의 이치로 다스려지는 이상향의 세계를 보았다. 역자주]
나는 감로가 모두 달고 샘물이 모두 달게 되어서 편의에 따라 마시고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하여 태평가를 부르면서 배를 두드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무어 상서로운 감응이라고 하겠는가.

문인에게 불천이라는 자(字)를 준 이야기
문인(門人)인 양사상(梁四相)이 머리가 땅에 닿게 절하는 예를 올리면서 자(字)를 지어달라고 청하는 정성을 표했다. 나는 불천(不遷)이라는 자를 지어 주었다.

그 의미는 승조법사의 조론(肇論)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나는 젊어서 조론을 읽었다. 그런데 “괴겁에 불어오는 선람이 수미산을 거꾸러뜨려도 항상 고요하고 양자강과 황하가 다투어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아지랑이가 회오리처럼 피어올라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어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구절에 이르러 그만 멍해져서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만력(萬曆)년간 갑술년(甲戌年)에 행각을 하다가 하중(河中)에 이르러 도우인 묘봉(妙峰)과 산음도원(山陰道院)에서 동안거 결제를 했다. 이를 계기로 이 조론의 교정작업을 하다가 황홀해지면서 깨달아 들어간 바가 있었다. 주렴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나뭇잎에 불고 회오리바람이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스스로 증득하고는 “조공(肇公)이 진실로 나를 속이지 않았구나”하고 말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때마다 모두가 말하기를 “흘러가는 것 속에 흘러가지 않는 것이 있다는 말이군요”라고 하였다. 나는 웃으면서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이치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불천(理不遷)이지 승조법사가 말한 만물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물불천(物不遷)이 아닙니다”하고 말해주었다.

그렇다. 이미 만물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으니 어찌 만물을 버리고 따로 이치를 구하겠으며 움직임을 버리고 고요함을 따로 찾겠는가. 양생(梁生)의 휘(諱)가 사상(四相)이다. 그런데 만물은 이 사상에 의해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다. 흘러가지 않는 물건은 보통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가 없다. 유독 승조법사만 폐와 간을 꿰뚫어보았다.

지금 양생이 마음의 법문에 귀의하여 여기에 뜻을 두고 있구나. 진실로 흘러가지 않는 불천(不遷)의 묘를 체득하기만 한다면 일상생활을 하는 현실에서 갖가지 분주하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고 한가롭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거스르는 경계를 만나기도 하고 나의 마음대로 되어주는 경계를 만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하고 이익을 보기도 하고 손해가 나기도 하고 헐뜯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는 것과 부귀빈천과 크게는 죽고 태어나고 하는 문제에서도 끝내 조금도 오거나 가거나 하는 모습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석가의 분신(分身)이 되고 관세음보살 수응신(隨應身)이 되어 보현보살의 만행(萬行)으로 장엄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한 입에 다 털어 넣게 될 것이니 어찌 현재 벼슬아치의 몸으로 법을 설하게 되는 데만 그치겠는가.

이를 통해서 볼 때 요순이 이것으로 공손함을 드리웠고 이윤과 여상이 이것으로 백성을 구제했으며 안회가 이것으로 단표누항을 즐겼고 공자께서 들어가는 곳마다 이것으로 자득하지 않음이 없었다. 공자님이 냇가에서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음이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구나” 하셨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93호 / 2015년 5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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