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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리시마 다케오의 ‘내 어린 것들에게’

기자명 이미령

아내 잃은 남편이 어미 잃은 자식에게 쓴 편지에 담긴 의미

'가족'
아리시마 다케오
에디터
자정이 넘은 시각.

책상 앞에 앉은 젊은 아비에게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려옵니다.

세 아이의 젊은 아버지 주인공
결핵이 불치병으로 알려진 시절
아내에겐 병명 숨기고 홀로 간호
직장·집·병원 오가며 고군분투

아이와 함께 심하게 앓던 날
결국 아내에게 결핵임을 밝혀
완쾌 전엔 아이들 보지않겠다
선언한 아내 결국 임종 맞아

죽음과 싸우던 처절한 시간 딛고
아이들 위해 아내의 마지막 기록
죽음 극복한 깊이 있는 삶 당부

새근새근- 깊은 잠에 빠져 든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달달해집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 그 따뜻한 작은 몸 곁에 그만 따라 눕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깊은 회한에 잠겨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글 한 편을 써내려갑니다. 기억은 더듬더듬 7년 전 아내가 첫 아이를 낳을 때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러다 결핵을 앓기 시작한 그 때에서 잠시 멈춥니다.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은 뒤 일 년이 지나서 결핵을 앓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길고 매서운 홋카이도의 기후 때문일까요? 1910년대만 하더라도 결핵은 거의 불치병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차마 병명을 밝히지 못한 채 헌신합니다. 온종일 직장에서 일을 한 뒤에 병원으로 달려가 아내를 보살피고,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세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원고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병은 나을 줄 모릅니다. 결국 이들 가족은 첫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겨울이 깊은 홋카이도를 떠나 도쿄 근처로 이사를 합니다. 아내는 가마쿠라에 있는 작은 임대별장에서, 그리고 남편은 세 아이들과 함께 근처 여관에서 지내게 되지요.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해안 모래언덕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잠깐 소홀한 틈에 아내는 더럭 감기에 걸렸고 병세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아이들 중 하나도 높은 열에 시달렸고, 설상가상으로 남편 역시 높은 열을 내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갑자기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 않자 원망에 가득 찼고, 높은 열에 시달린 아이와 나란히 눕게 된 남편은 아내에게 병명을 알려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아내는 뜻밖에 창백하고 싸늘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뿌리 깊은 집착을 또렷하게 얼굴에 새기며 남편에게 각오를 말합니다. 병이 완전히 낫기 전에는 죽어도 아이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투병을 위해 병원으로 떠나는 날, 옷장에 있는 가장 화사한 나들이옷을 꺼내 입은 아내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너무 어린 막내는 떠나는 어미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판단 아래 이별의 자리에 아예 나올 수가 없었고, 한 아이는 심한 열병에서 미처 회복되지 못해 하녀에게 업혀 있었고, 그리고 한 아이만 아장아장 엄마를 배웅하러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가득했다고 말합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훗날 아버지는 건넌방에서 곤히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적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녀가 시킨 대로 너희는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했다. 너희 어머니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지. 너희는 앞으로 어머니를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쌍한 것들.

불쌍한 것들.
불쌍한 것들.

저 불쌍한 어린 것들은 제 어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가장 화사한 나들이옷을 입고 차에 올라타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쩌면 어머니가 소풍이라도 가시는 줄 알았겠지요. 그런 가운데 아이들의 어미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무려 1년 7개월 동안 치열하게 병과 전투를 벌입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병마에서 지키기 위해 싸웠고, 아이들 역시 알 수 없는 운명과 맞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게 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회오리처럼 몰아닥친 운명의 저주 앞에서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병마의 힘이 더 셌습니다. 아이들이 여섯 살, 다섯 살, 네 살이 된 해 8월2일, 끝내 아내는 병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남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씁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리고 죽음은 모두를 구원했다.”

어린 아이 셋과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여인의 마음은 그녀가 남긴 유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비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만약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너희 어머니 유서도 함께 읽어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너희 어머니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결코 너희를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지 않았단다. 그건 병균이 옮을까 봐 걱정해서만은 아니었다. 너희들의 맑은 마음에 잔혹한 죽음의 모습을 보여 주어 평생을 더욱 어둡게 만들까 봐 두렵고, 무럭무럭 자라나야 할 영혼에게 자칫 큰 상처를 남길까 봐 두려웠던 거다.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알게 하는 일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 장례식 때는 하녀를 아이들에게 붙여 주어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해 달라.’ 너희 어머니는 이렇게 썼단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상을 비추는 햇빛처럼 크다.’
라는 시를 적기도 했지.

아이들에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억하게 하는 이 사람은 일본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郞, 1878~1923)입니다. 이 글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1년 쯤 지난 때입니다. 어느 날, 출판사로부터 작가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렇게 써내려갔지요.

“내 행복은 어머니가 처음부터 한 분이고,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만년필이 이 문장을 마치기도 전에 자신의 어린 자식들 셋은 어미를 잃었다는 사실에 불현듯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시마 다케오는 아이들에게 제 어미의 마지막 모습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리고 어린 자식들에게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울까봐 보고 싶은 그 마음을 얼마나 애써 눌렀는지도 들려줍니다.

혹시 비라도 내려 우울한 분위기가 집 안에 가득 차는 날이면 저희 가운데 한 명이 살며시 내 서재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빠, 라는 한마디만 하곤 내 무릎에 기대어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지. 아아, 무엇인가가 천진난만한 너희에게 눈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불쌍한 것들. 이 세상에 너희가 까닭 없는 슬픔에 잠기는 걸 보는 것보다 더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일은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의 죽음을 사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집안 한 구석에 아주 커다란 구멍이 난 것을 직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 상실감이 어린 아이들을 까닭모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니,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상처한 아비의 심정은 어땠을지….

그런데 이 소설(이라기보다 저는 그냥 산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의 백미는 어미를 잃은 어린 것들을 향한 측은한 눈길만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아비는 어린 것들에게 말합니다. “괜찮다!”라고요.

그리고 말합니다.

이 슬픔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지 너희는 아직 모를 것이다. 우리는 이 상실 덕분에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지. 우리는 이 대지에 뿌리를 어느 정도 내린 셈이란다. 인생을 살아가는 이상 깊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건 재앙이다.

놀랍지 않습니까? 어미를 잃은 것이 재앙이 아니라 그 슬픔을 딛고서 깊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게 재앙이라는 것이지요. 자신들과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도처에 널렸고, 게다가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더 겪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해보자고 말합니다.

“세상은 충분히 애처롭고, 너희들과 나는 피를 맛본 괴수처럼 사랑을 맛보았으니, 가자!”라고 아버지는 말합니다. 훗날 늙은 아비를 위한다며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이렇게 힘주어 말합니다.”

“쓰러진 부모를 뜯어 먹고 힘을 얻는 새끼 사자처럼 힘차고 씩씩하게 나를 내버리고 너희 인생에 도전하기 바란다.”

아비의 글은 자정을 지나 1시 15분 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글을 맺어야 할 때입니다. 아비의 마지막 당부는 백 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힘이 느껴집니다. 지금도 참 많은 가정이 이런저런 괴로움에 납작하게 짜부라져 있습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파국을 스스로 불러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슬픔을 삶의 깊이로 승화시키고, 그 깊은 성찰 속에서 세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목숨 가진 자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어미 잃은 세 아이의 아비는 그래서 이렇게 나지막하고도 힘차게 속삭입니다.

내 어린 것들아. 불행한 그리고 동시에 행복한 너희들의 아비와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세상 여행을 떠나거라. 갈 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 없는 사람 앞에 길은 열린다.

가거라, 용기를 내서. 내 어린 것들아.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94호 / 2015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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