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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도-상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극단 벗어난 상태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개별 악기에 집중하다보면
오케스트라 소리를 놓치듯
중도는 명료‧뚜렷함을 위한
인식의 극단 넘어선 상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인식이나 판단의 ‘명료함과 뚜렷함’을 진리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명료함(clearness)이란 개념이나 인식의 내포가 분명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뜻하고, 뚜렷함(distinctness)이란 외연이 확실하여 내부와 외부가, 그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이 확연하게 구별됨을 뜻한다. 가령 여자 옷을 입은 남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명료하지 않기에, 남성임을 가린 ‘거짓’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반면 본색을 드러낸 늑대인간은 괴물임이 명백하지만 인간에 속하는지 늑대에 속하는지가 뚜렷하지 않기에, ‘허구’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세상에는 명료하지 않은 것, 뚜렷하지 않은 것이 많다. ‘진리’를 추구한다 함은 그런 것을 추적하여 명료하고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여장한 이의 옷을 벗겨 남자인지 여자인지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 될 터이고, 괴물의 본성을 추적하여 인간에 속하지 않는 존재임을 뚜렷이 밝히는 것이 될 터이다. 이런 일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 있음과 없음을 가리는 것일 게다. 가령 사막에서 보인다는 신기루는 눈에 보이지만 가서 확인해보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서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점에서 ‘없는’ 것이고, 있는 듯 ‘속이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진 않는다. ‘없는’ 것이라면 신기루는 대체 어째서 눈에 보이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과학은 광학적인 과정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밝혀준다. 눈에 보이지만 그 오아시스는 ‘없는 것’이지만, 신기루라는 허상은 그런 광학적 이유로 인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임을 명료하고 뚜렷하게 밝혀준다.

이처럼 데카르트가 진리의 요건이라고 생각했던 ‘명료함과 뚜렷함’이란 유무의 양변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를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서양의 논리학이나 수학에서도 진리의 중요한 요건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논리학의 동일률과 모순률은 있으면서 없는 것이란 말을 허용하지 않으며, 배중률은 있는 것이면 있는 것, 없는 것이면 없는 것이지 중간은 없다는 걸 요체로 한다. 어떤 방정식의 근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고 하는 것은 수학적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니까(그래서 배중률에 문제가 있음이 명료하고 뚜렷하게 지적되었음에도 대부분의 수학자는 배중률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데카르트 생각과 달리 명료하게 할수록 뚜렷함이 사라져 모호해지는 것이 있고, 뚜렷하게 할수록 명료함이 사라져 애매하게 되는 것이 있다. 가령 오케스트라의 소리에는 수많은 악기들의 소리가 섞여있다.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의 전체 소리가 명료하다는 것은 각각의 악기소리들이 서로 섞여서 구별되지 않게 된 상태를 뜻한다(명료하나 모호한 경우). 반면 어떤 하나의 악기 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면, 오케스트라 전체 소리는 놓치게 될 것이다(뚜렷하나 애매한 경우). 그래서 지휘자는 어떤 하나의 악기 소리가 튀지 않도록, 전체 소리 속에 녹아들어가도록 하려 한다. 명료한 전체 음색을 위해선 뚜렷함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명료하나 모호한 게 이 경우엔 필요한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산사의 종소리도 그렇다. 종을 몇 번 치는지를 들으려면, 숫자를 놓치지 않고 세야 한다. 그때에는 종소리의 아름다운 음색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포기해야 한다. 반면 종소리의 음색이 변하는 데 집중하려면 숫자 세는 걸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무마저 가리기 힘든 것들이 있다. 가령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상기하는 게 고통스러워 의식에선 지웠지만 무의식에 남아서 증상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트라우마(상처)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물론 그건 과거에 있었던 사건의 기억이니 ‘있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말년에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트라우마가 정말 있었던 일인지, 환자가 있었다고 믿고 싶은 사건인지 구별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된다. 최근의 정신분석학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정말 있었던 게 아니라 있었다고 믿고 싶은 사건을 상상으로 구성하여 만들어낸 사건이고 상처라는 것이다. 환자는 그것으로 인한 증상을, 그것이 주는 고통마저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트라우마는 증상을 만들어낸 원인이니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거라고 하긴 쉽지 않다. 이때 트라우마는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이처럼 유무를 명료하고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운 것은 트라우마 같은 특별한 경우만이 아니라 물리학적 운동 자체도 마찬가지다. 한 물체가 어느 지점에 ‘있기’만 한다면, 그것은 운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 정지해 있는 것이다. 거기 없다면, 그건 그저 ‘없는’ 것이다. 운동하는 물체는 어떤 시점에 그 지점에 있어야 하지만, 또한 있기만 해도 안 된다. 어떤 물체가 운동하여 통과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켜보는 한 지점에 있으며 동시에 없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입자성’과 ‘파동성’도 그렇다. 입자성이란 위치와 크기를 갖는 것이다. 파동성이란 정해진 위치도 크기도 갖지 않는다. 입자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말은 정해진 위치와 크기를 갖는 동시에 갖지 않음을 뜻한다.

음악적 선율 같은 것은 또 다른 이유에서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다. 몇 번 치는가를 세는 것이 중요한 종소리라면, 있음과 없음이 명료하게 구분되어야 하며, 하나하나의 소리를 뚜렷하게 끊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빠빠빠 바~’하고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의 주제는 그렇게 끊어주면 선율로 들리지 않는다. 앞서 울리고 지나간 것과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이,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앞으로 울릴 것까지 하나로 합치고 섞여야 선율로 들리게 된다. 음악적 선율이란 그런 식으로 현재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섞이는 것이며, 그 섞임 속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한 시점에 선율을 구성하는 소리들은, 앞서 울리고 지나간 소리는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그 시점에 선율은 있다고 해야 할까 없다고 해야 할까? 그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베르그손이 ‘순수지속’이라고 부르는 이런 체험 속에서 선율은, 선율을 직조하는 소리 하나하나는 있는 동시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혹은 있는 동시에 없는 것을 유무의 양변을 떠난 ‘중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다는 아니라 해도, 있음과 없음 어느 하나에 귀속시킬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이나 변화, 생성을 다루려는 순간 우리는 있음과 없음 같은 이항대립(‘양변’)을 떠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중도는 명료함과 뚜렷함을 위해 사용되는 이항대립을 넘어서는 자연학적 상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나 운동하는 물체, 입자성과 파동성을 갖는 입자, 그리고 음악적 선율 같은 것은 모두 있음과 없음의 이항대립을 떠난 중도가 일종의 존재론적 상태를 표현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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