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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내려놓고 본래 마음 찾으면 행복의 문 열려”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 원각 스님은 1947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으며 조계종 전 종정 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7년 계를 받았다. 스님은 이후 해인총림, 영축총림, 조계총림 선원과 범어사, 상원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경남 거창 고견사 주지, 해인사 원당암 감원 겸 달마선원 선원장, 해인총림 유나 등을 역임했다

해인사 퇴설당(堆雪堂).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눈덩이’라는 의미의 퇴설당에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선불교의 치열함이 서려있다. 구한말 경허 스님이 쇠락한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선원을 개설하면서 이름 붙여진 퇴설당을, 수많은 선객들이 거쳐 갔다. 해방 이후에는 성철 스님을 비롯해 혜암, 법전 스님 등 종정을 역임한 스님들이 주석하면서 한국 선불교의 꽃을 피웠다.

치열했던 옛 수행전통을 계승해
이 시대 도인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해인총림 방장이 해야 할 역할

숫자 많다고 권력을 얻었다고
독단적으로 추진하면 대중반발
대중이 공감하는 총림운영 약속

스님 범계 막을 대책마련 시급
선원수좌회와 논의 진행할 것
스님 과거 들춰내는 것도 문제

과학발달로 살기좋은 세상됐지만
현대인의 마음은 여전히 불행해
행복은 ‘내려놓음’서 비로소 시작
이를 바로 알려면 선 수행해야

최근 퇴설당의 주인이 바뀌었다. 1997년부터 18년간 퇴설당을 지켜왔던 법전 스님이 지난해 12월 세연을 다하고 입적했다. 해인총림 대중들은 지난 3월 퇴설당의 새 주인으로 원각 스님을 추대했다.

원각 스님은 5월6일 해인총림 9대 방장 추대법회를 하루 앞두고 퇴설당에서 기자들과 마주했다. 퇴설당은 스님에게 각별한 곳이다. 출가한 뒤 처음 대중생활을 했고, 성철·혜암 스님 등 당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으며 구도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기도 했다.

스님의 출가인연은 196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인사 약수암을 찾으면서 비롯됐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산사를 찾았지만 스님의 고민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싶었다.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한 것일까’는 스님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인사 중봉암에서 도림봉철 스님으로부터 ‘착한 것도 내려놓고 악한 것도 내려놓고 본래 마음자리에서 살아라’는 한마디를 듣게 됐다. 순간 가슴에 묵어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착하게 산다는 것’도 강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스님은 곧 출가를 결심했다. 일대사를 해결하겠다는 발원도 세웠다. 1967년 원각 스님은 혜암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이무렵 성철 스님은 해인사에 총림을 설치했다. 총림은 선원과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종합수행도량으로 대중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수행공동체이다. 성철 스님은 승단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대중이 함께 모여 늘 절차탁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총림를 추진한 이유이기도 했다. 해인총림이 설치되자 대중들이 넘쳐났다. 전국에서 선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방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퇴설당을 비롯해 조사전, 선열당이 모두 선방으로 이용됐다. 원각 스님도 당시 선원 유나를 맡았던 은사 혜암 스님을 따라 퇴설당에서 정진했다. 방장과 유나 스님을 제외하고 모두가 한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수행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행자들의 신심과 열정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신참과 구참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정진했습니다. 하루에 14시간 정진하는 것은 기본이고, 조사전에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수좌들도 많았습니다. 하루는 잠을 자다가 눈을 떴더니 3분의 1이 넘는 대중들이 다시 일어나 정진을 하고 있는 겁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정진을 했지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졸리면 법당 밖을 돌며 화두를 참구하고 그랬습니다.”

스님은 첫 안거를 마친 뒤 해인사를 나와 통도사 극락암, 송광사, 상원사, 봉암사, 범어사, 불국사 등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20년간 정진했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은사 혜암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스님은 오로지 한길을 걸었다.

첫 안거로부터 50여년. 스님은 어느덧 퇴설당의 새 주인으로 해인총림을 이끌어가야 할 위치에 올랐다. 때문에 스님에게 부여된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치열함이 사라진 수행풍토를 개선해야 하는 것도 스님의 몫이 됐다.

스님은 현재의 수행풍토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중생활을 기피하면서 수행자 집단이 모두 개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심하는 수행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옛말에 공부의 절반은 대중이 시켜준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대중생활은 수행자에게 있어 기본덕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대중생활을 회피하고 개인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치열한 수행풍토가 차츰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스님은 “출가수행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하게 수행할 수 있는 그런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간화선 위기론에 대해서는 “간화선의 문제라기보다는 수행자의 자질 문제”라고 진단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부처님 법은 변함이 없는데 발심하는 수행자가 줄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깨우쳐보겠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동안 간화선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도인들이 나왔느냐”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법까지 변하는 것은 아닐 테니 결국 사람의 문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1967년 성철 방장 스님을 괴롭히듯 질문했던 것처럼 의심나면 묻고, 궁금함이 해소될 때까지 밤잠 자지 않고 치열하게 정진한다면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선지식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이렇게 도인이 나올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방장의 역할임도 강조했다.

원각 스님이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되기까지 잡음도 적지 않았다. 방장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전히 총림 대중들 사이에 갈등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스님은 “총림을 원융화합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합은 조화롭게 사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숫자가 많다고, 권력을 가졌다고 억지로 일을 추진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도 대중들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처리하든 산중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산중공의를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스님은 최근 승단의 범계 문제와 관련해 전국선원수좌회와 함께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범계 문제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단호하게 경책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스님은 “범계행위에 대한 경책도 필요하지만 의도적으로 과거의 일을 들춰내 폭로하는 행위도 큰 문제”라며 “이로 인해 불자들의 신심이 저하되고 스님들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스님은 “행복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됨을 깨닫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님은 “과학이 발달하고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삶이 윤택해졌지만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간 단체간 계층간 국가간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본래의 성품을 바로보지 못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치유하는 해법으로 스님은 ‘내려놓음’을 강조했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시비와 갈등이 사라지고 소통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지혜가 활발해져 궁극적인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내려놓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스님은 ‘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이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래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거울이 더러워지면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욕심과 개인적 이해관계로 오염돼 갈등과 시비가 생겨난다는 말이다. 선을 통해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고 본래 마음을 찾아간다면 모든 시비가 사라지고, 갈등과 대립, 고통이 눈 녹듯 없어지고 그대로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스님이 들려주는 선의 의미다.

스님은 “우리는 이미 행복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데 스스로 마음의 벽을 지어 갈등과 시비에 휘말려 살고 있다”며 “모든 시비를 내려놓고 본래 마음자리를 본다면 행복은 저절로 올 것”이라고 당부하며 맑은 미소를 보였다.

해인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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