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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재가불자 현대적 의미와 역할

보살계 수지하고 보시 등 바라밀행 실천해야 재가불자

▲ 사찰과 수행자들의 세속화를 막아내면서 동시에 불교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재가불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사진은 한국 불자들이 외국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한국불교는 출가수행자와 재가불자로 구분된다. 한편에서 출가수행자는 열반적정의 체험과 해탈지견의 성취를 통해서 전법교화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재가불자는 삼보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한 믿음을 바탕으로 정진하면서 사찰과 출가대중을 외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출재가의 전통적인 모습이다.

대중출가주의로 구성된 승가
출가자 감소·세속활동 증가로
출·재가 관계도 한계에 직면

종교환경 변화로 재가도 변화
추종자 넘어 지도자로 나서기도
재가불자 역할 더욱 다양해져
사회적 지도자 양성·발굴해야

부처님은 출가자로 구성된 승가에 대하여 “세상에서 잘 수행하고 올바르게 수행하며,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성스러운 제자들의 모임이며, 네 쌍의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여덟 부류의 성스러운 수행자들의 모임이며, 공경하고 공양하며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공덕의 복전”이라고 하였다. 이 으뜸가는 복전은 삭발염의하고 세속을 떠나는 출가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승가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으로 출가희망자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모든 허물을 용광로처럼 녹여냈다.

그렇지만 현대에 이르러 대중출가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복덕과 지혜를 갖춘 출가자의 수적 감소와 다른 하나는 수행력과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출가자의 세속적 활동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출가자의 수적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한국불교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출가자 수의 감소는 양적 확대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질을 갖추지 못한 출가자를 배출할 경우 불자들의 신심을 약화시키고,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종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다 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익혀 수행적 자질을 갖춘 스님을 육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최근 우리 불교계 내부에서 크고 작은 소란과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스님들의 역할 수행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스님들이 산문을 나와 세속의 여러 가지 일들에 관여하면서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되었다. 이해관계의 한 편에 서면 반드시 불만을 가진 상대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화합을 추구해야 할 승가 구성원이 이익과 손해를 다투거나 그것을 세속의 법정에서 심판받으려 한다면 승가의 세속화를 부추길 뿐이다. 한국불교가 발전하려면 비구 및 비구니의 출가대중과 우바새 및 우바이의 재가대중이 각자의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석가족의 마지막 왕이었던 마하나마가 부처님을 찾아와 “재가불자 중에서 우바새란 누구를 말합니까?”라고 질문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우바새란 집에서 깨끗하게 살면서 ‘목숨을 마칠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나이다. 나를 증명하여 주소서’라고 한 이들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삼보에 귀의한 불교신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불자, 신도, 우바새 및 우바이” 등이 있다. 우바새 및 우바이는 청신사 및 청신녀, 혹은 선남자 및 선녀인 등으로도 표현하는데 이는 모두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자는 불성을 자각하고 귀의한 모든 사람이 포함되며, 신도는 불자들 중에서 재적 사찰을 두고 정기적으로 신행활동과 보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바새 및 우바이는 신도들 중에서 특히 삼보에 귀의하고 계행을 지키고, 불퇴전의 신심을 가지고 보시바라밀을 실천하고 지혜를 증득하기 위해 정진하는 불자들이다.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우바새와 우바이는 보살계를 수지하고 진리의 등불을 밝히며 바라밀행을 실천하는 재가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종교환경의 변화, 그리고 종교성의 변화는 전통적인 재가불자의 역할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추종자로서 소극적인 신행활동에 머물고 있었던 불자들에게 적극적인 우바새와 우바이로서의 지도력 발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18일에는 조계종단에서 ‘선혜 품수식’을 봉행한 바 있다. 발심, 행도, 부동의 품계에 이어 재가불자의 최고의 지위인 선혜(善慧)를 품수한 것은 그만큼 사회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불자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가불자의 역할은 사찰 내에서보다는 사찰 밖에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사찰과 수행자들의 세속화를 막아내면서 동시에 불교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재가불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불자들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재가불자는 지역 포교사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승불교의 시작도 ‘다르마 바나까’라고 불리는 독송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전의 내용을 독송할 수 있었던 재가불자들은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들을 게송이나 노래 등으로 염송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한 활동이 원동력이 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은 각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될 수 있었다. 전법교화의 영역은 스님들이 담당하지만 포교활동은 재가불자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둘째, 재가불자는 불교문화의 유지, 보존과 발전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종교는 그 사회의 문화로 정착될 때 토착화될 수 있으며, 사찰은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때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연등회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불교문화축제, 수륙재를 비롯한 각종 재의식은 신도들의 동참과 후원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진관사와 삼화사 등에서 봉행하는 수륙재도 상당부분 재가불자의 후원과 참여로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셋째, 재가불자는 지역사회의 상담사로서 우울, 슬픔, 비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불교상담사 역할을 해야 한다. 깊은 수행이나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스님들이 개입해야 하지만 생활 속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상담훈련을 받은 불자들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가불자들이 불교 상담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때 포교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재가불자는 사찰의 외호자로서 각종 단체를 이끌면서 신도교육과 신행활동의 코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불교의 미래는 교육받고 훈련받은 핵심신도의 양성에 달려있다. 불교계가 사회 속에서 존속하려면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헌신하는 불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불자들이 불교적 가르침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활동하려면 신도교육이 체계화되고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향후 신도교육은 대중교육보다는 일대일 혹은 소규모 팀교육으로 진행되는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재가불자들 중에서 초심자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교육능력, 신행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신행코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사찰 내부의 운영에도 재가불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재가불자들이 사찰 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이 문제점은 스리랑카 불교계에서 활동했던 ‘가닌 난세’라고 불리는 재가불자들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20년대 스리랑카 사찰에는 비구승이 전부 사라지는 비극적 현실에 직면했다. 당시 비구승들은 자취를 감추고 재가불자들이 황색 가사를 걸치고 삼보정재를 사유화하고 사찰을 친족에게 상속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출가자의 구족계 수지를 방해하고 사찰을 독점하는 재가불자인 ‘가닌 난세’들이 활개를 치면서 비구승가 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불교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였다. 불가피하게 사라난카라 스님 등이 미얀마와 태국 등지에 가서 구족계를 수지하고 돌아와 승가를 복원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일부 사찰들 중에서도 가족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삼보정재가 사유화되는 사례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재가불자들은 사찰의 세속화를 막는 동시에 삼보정재의 유실 없이 공심(公心)을 가진 스님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외호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찰이 건립되는 초기에는 사설사암 운영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가면 공찰로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상적인 사찰운영의 사례는 대만불교계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대만의 주요사찰들은 불교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종교법인법의 통제를 함께 수용하고 있다. 때문에 삼보정재의 형성과 수입의 관리, 지출의 결정과 집행 등의 일들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담당하게 함으로써 삼보정재가 유실되는 일 없이 사찰과 불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만의 불자들은 스님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외호하면서 계율을 어기는 스님들이 사찰에 발붙일 수 없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김응철 교수
그 결과 한국과 대만은 같은 시기에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대만불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반면에 한국불교는 다종교사회에서 다수종교의 주도적 입지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양국 불교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승가의 계율 준수와 재가불자의 사찰외호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불교계에도 신심과 원력을 갖고 사찰을 외호하면서 동시에 사회 지도자로서 활동하는 우바새와 우바이가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불교발전을 위한 다양한 역할 수행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재가불자들이 늘어나야만 우리 불교계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1295호 / 2015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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