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실체를 바로 보라
문제의 실체를 바로 보라
  • 법상 스님
  • 승인 2015.05.26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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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가 생겼는가? 사실 그건 나에게 생겨난 어떤 문제가 아니라, 중립적인 어떤 일이 그저 존재 위를 가볍게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에게 ‘온’, ‘큰 문제’가 아니라, 나라고 동일시하고 있는 어떤 존재가 큰 문제라고 착각하며 거기에 머물러 사로잡혀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 발생하는 문제를
집착하는 순간 고통 생겨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고통 벗어나는 지혜 필요


외부의 어떤 문제가, 내부의 나라는 존재에게 다가와 실제로 주먹을 한 방 날린 것이 아니다. 그저 공원의 의자에 앉아 온종일 오고 가는 다양한 사람들, 사건들을 구경하듯 그저 그 모든 일들이 그렇게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러지 못한 채, 그 텅 빈 삶이라는 공원 속의 어떤 사람과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문제는 생겨난다. 외부에서 온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 낸 환영 같은 것이다. 문제를 당한 ‘나’도 진짜가 아니고, 그 문제라는 것조차 진짜가 아니며, 그 문제가 내게 와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또한 환상이며 이 모든 것이 마음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면 어찌할텐가. 그 꾸며내고 조작하며 판단 분별하면서 온갖 문제와 고통을 만들어내는 놈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이제 관심가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당할 만큼 충분히 당해줬다. 언제까지 계속 당하고만 있을텐가. 그 놈이 뭔 짓을 꾸미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나를 농락하고 있는지를 이제부터 한 번 알아보자.

붓다는 마음을 수상행식이라고 했으니, 느낌과 생각과 욕구와 분별을 낱낱이 관찰해 보자. 느낌, 생각, 욕구, 분별이 일어날 때 그것을 나라고 동일시하지 말고, 저만치 떨어져 바라보고 주시해 보라. 그 마음은 실체 없이 그저 텅 빈 허공 위를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것을 붙잡기 전까지는 말이다.

앞 차가 끼어들기를 한다는 중립적인 한 사건이 삶 위를 지나간다. 곧장 마음은 문제를 양산해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먼저 감정이 앞장서서 화를 일으키고, 연이어 생각도 적극 나서서 거든다. ‘저런 몹쓸 놈 같으니라구.’ 의지와 욕구는 한 발 더 나간다. ‘경적을 길게 울리고, 뒤를 바짝 쫓아가서는 창문을 열어 실컷 욕설을 퍼부어 버리라구!’ 이 느낌, 생각, 욕구의 즉각적인 행동을 종합하여 분별심은 결론 내리듯 말한다. ‘나쁜 놈 같으니라구. 나를 우습게 본단 말이지. 너 같은 놈은 한 번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차에서 내려 한 방 먹여 줘야겠군.’그러면서 또 다시 생각, 느낌, 욕구는 계속해서 돌고 돌며 더 크고 많은 마음의 작용을 만들어 낸다. 어쩌면 어떤 사람은 싸움이 붙어 경찰서까지 갈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은 싸움이 붙었다가 병원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최초 앞차가 끼어들었다는 단순한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지며 온갖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을 크게 부풀려 심각한 문제로 확대 해석해 만들어내고, 또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그런 소모적인 일상을 끝내고, 본래부터 고요하던 텅 빈 가운데 단순히 존재하는 깨어 있는 삶으로 회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의 길이다. 그럴 때 온갖 종류의 삶이 흘러가기는 할지언정 깊이 개입되지 않은 채 한 발 떨어져 영화 보듯 삶을 단순히 흥미롭게 지켜보는 관찰자가 될 것이다. 그 모든 사건, 사고,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에서도 당신은 언제나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 그 모든 것을 한가로이 구경하듯 바라보는 지구별의 여행자가 될 것이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불교에서는 ‘나’를 무아(無我)라고 한다. 내가 살아간다고 여기게 되면 한 발자국 떨어져 구경하는 관찰자가 될 수 없다. 그 모든 문제가 ‘내 문제’이기 때문에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아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그 속에 깊이 빠지고, 동일시되는 대신 한 발자국 떨어져 구경꾼이 되기 쉬워진다. 이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수행자의 자세다. 이 지구별이라는 인간계로 놀러 나온 사람처럼, 여행 온 사람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구경하는 구경꾼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라고 여기는 이 존재가 벌이는 세상만사를 마음 편히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수행자의 할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물론 삶에 개입하여 살아갈지언정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화내고 욕심 부리며 온갖 문제를 만들어 내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저만치서 흘러가고, 당신은 한 발 뒤로 물러나 관객이 될 것이다.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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