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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미타경 사십팔원- 하

기자명 이제열

“일념으로 10번만 아미타불 염송하면 정토왕생”

▲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아미타삼존도’.

법장비구의 48대원을 열거하면서 11번째 결정정각원(決定正覺願), 12번째 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 13번째 수량무궁원(壽量無窮願), 17번째 제불칭찬원(諸佛稱讚願), 18번째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 19번째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 20번째 회향개생원廻向皆生願)이 가장 두드러진 원(願)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서도 18번째 원인 십념왕생원은 그 어느 원보다 수승한 원이라서 모든 원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으뜸이 되는 원이라는 의미의 왕본원(王本願)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장비구 48대원 중에서
십념왕생원이 가장 으뜸

염불 횟수보다 믿음 중요
성불 이끌려는 무한 자비

그렇다면 여러 원들 중에서도 왜 이들 원들을 특별히 수승하다고 하는 것일까. 나아가 18번째 원을 최상의 원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11번째 결정정각원(決定正覺願)은 법장비구의 성불과 관련이 있다.

일찍이 법장비구는 세자재왕여래 앞에서 약속하기를 자신이 세운 극락정토에 중생들이 태어났을 때 그들이 만약 정각을 이루지 못한다면 자신 또한 정각을 이루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어떤 중생이든 극락정토에 태어났음에도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있다면 자신의 성불 또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는 극락정토의 주체인 법장비구와 극락정토에 태어나는 중생들, 성불의 세계인 극락정토가 결국은 동체(同體), 즉 하나라는 의미이다.

12번째 광명보조원(光明普照願)과 13번째 수량무궁원(壽量無窮願)은 법장비구의 완성체인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될 중생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름과 같이 수명과 광명이 한량없는 부처이다. 아미타불은 시간을 초월한 수명과 공간을 초월한 광명을 갖추고 있다. 중생들이 누구라도 극락정토에 나면 모두 이러한 수명과 광명을 지닌 부처로 변화한다. 다시 말해 아미타불은 한분이 아니라 무수한 아미타불들이 극락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극락정토가 비록 아미타불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만 아미타불은 한분이 아닌 무량한 아미타불이 되고 앞으로도 수많은 아미타불이 극락정토에 출현하게 된다. 그래서 수량무궁원의 특별한 원이다.

17번째 제불칭찬원(諸佛稱讚願)은 아미타불과 다른 부처와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드러내고 있다.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이 주불이다. 그렇다면 극락정토에 태어나서 성불을 원하는 중생들은 아미타불만을 찬탄하고 칭찬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꼭 아미타불만 찬탄하고 칭찬할 필요는 없다. 아미타불과 기타의 모든 부처님들은 모두 동체이고 그 부처들이 없다면 아미타불 또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찬탄하고 칭찬하듯 모든 제불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아미타불과 기타 제불과는 근원적으로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특별한 원이다.

19번째 임종현전원(臨終現前願)은 중생의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는 죽음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 중생에게 죽음은 절망이며 공포다. 더구나 불교에서는 중생이 죽을 때 생전에 지었던 업이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나 죽을 때 더욱 혼란스럽고 두렵게 한다고 말한다.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임종 때 맑고 깨끗한 현상이 나타나고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더럽고 두려운 현상들을 보게 된다. 이토록 두려운 죽음을 앞둔 이들을 무한한 수명과 광명을 지닌 부처님이 나타나 극락정토에 데려간다는 것은 크나큰 희망이다. 그래서 임종현전원은 특별한 원으로 받아들여진다.

20번째 회향갱생원은 아미타불의 교화범위를 나타내고 있는 원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에 태어나려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낮고 하찮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아미타불을 생각하면 반드시 극락정토에 나게 된다. 이는 중생을 향한 아미타불의 자비와 가피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다음은 특별한 원들 가운데에서도 왕본이라 할 수 있는 18번째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이다. 십념왕생원은 법장비구의 48대원 중에서 으뜸인 원이다. 아미타불이 있는 극락정토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행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십념왕생원에 따르면 극락에 왕생하는 조건은 매우 간결하고 쉽다. 불교의 해탈이나 성불은 한량없는 세월 온갖 바라밀과 정혜를 닦아야 비로소 얻어진다. 중생들이 정토에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토는 결과적으로 일심정토(一心淨土)다. 마음이 완전히 정화되어 악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의 번뇌가 완전히 소멸하여 청정해진 때라야 비로소 정토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생이 정토에 태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온갖 악업과 번뇌를 수반한 채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정토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8번째 십념왕생원은 기존의 왕생정토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일념으로 10번만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왕생이 보장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번을 부르는 것으로 왕생이 가능하다면 이보다 더한 행운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빠른 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법장비구의 원이 다른 수행자들의 원과 비교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중생제도와 성불의 방편으로 극락정토를 세웠다는 것도 남다르지만 10번만의 염불만으로 극락에 왕생할 수 있게 하겠다는 원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대단한 자비심이 아닐 수 없다.

중생들이 정토에 나기 위해서는 아미타불을 1000번을 부르던 10번을 부르던 동일하다. 물론 염불의 정도에 따라 정토의 자리와 성불의 시기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단 10번만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정토에 태어난다는 점이다. 특급열차가 되었건 완행열차가 되었건 특실이 되었건 입석이 되었건 일단 차를 타고 보아야 한다. 법장비구는 먼저 중생들이 극락에 태어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십념왕생원을 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 10번만의 염불로 극락왕생이 가능할까. 가부(可否)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 핵심은 믿음이다. 10번만으로 왕생이 가능하다고 의심 없이 믿는다면 왕생은 가능하다. 만약 정토와 왕생을 의심하면서 망설이는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했다면 그는 왕생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본다면 십념왕생설은 중생에 따라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으며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십념왕생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정토의 조건은 염불의 양보다도 질이 중요하다. 몇 번을 불렀느냐보다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불렀느냐 아니냐가 우선이다. 믿음을 성취한 중생에게 정토로의 왕생은 쉽다. 이러한 의미에서 18번째 십념왕생설은 법장비구의 본원들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불도는 믿음과 원력이 없으면 다다르기 어렵다. 불퇴전의 믿음과 원력이 갖추어져야 성불도 가능하다. ‘정토경’은 중생들에게 법장비구가 세운 원을 믿고 그가 세운 극락정토에 나기를 서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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