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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김춘수- 꽃

기자명 김형중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가운데 1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와 시론, 1952년)

존재 의미는 마음 통해 소통
서로 의미 부여했을 때 생성
이름 부르며 관심·사랑주면
단 하나뿐인 의미 있는 존재

김춘수(1922~2004)는 사물의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주지주의 작가이다. ‘꽃’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명품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교감과 소통에 의해서 그 존재의 의미가 생성된다. 인간에게 인식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인식되고 그 명칭과 존재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세상은 내가 보고 느끼고 알고 기억하는 세계이다. 마음이 만들고 지어낸 세계이다. 유심소현(唯心所現)이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이다. 모든 존재나 세계는 내 마음의 투영(投影)이다. 이것이 불교의 인식론이다. 불교심리학인 유식학에서는 “세상은 화가가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하였고,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고,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다”고 하였다.

불교 인식론에서는 감각기관인 5관(五官) 6근(六根: 안이비설신의)에 의해서 인식의 대상인 육경(六境, 對象: 색성향미촉법)이 접촉(接觸)되어야 여섯 가지 인식작용(六識: 안이비설신의식)이 일어난다. 이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6근·6경·6식 즉, 18계에 인식되지 않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꽃’ 1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에서처럼 존재의 의미는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 생성(生成)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접촉하여 느끼는 감수(感受)작용을 통해서만이 온전하게 존재의 의미가 생겨난다. 그래서 시인은 2연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읊고 있다.

인간과 사물은 이 세계에서 상호 인연연기 관계로 인드라망처럼 관계를 맺고 있다. 너는 나의 친구가 되고, 나는 너의 벗이 되고 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있는 비석과 꽃은 단순히 돌덩이나 꽃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가 되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하여 함께 인연을 맺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동업(同業) 중생(衆生)으로서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어린왕자가 여우를 통해서 상호 관계를 맺었을 때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것 같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길들인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비로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생텍쥐페리나 김춘수 시인 모두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고,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면 서로는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97호 / 2015년 6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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