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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법구경 이야기1, 2, 3’

기자명 이미령

세속 떠난 수행자의 마음 속 스승에게 가는 길

'법구경 이야기 1, 2, 3'
무념, 응진 역
옛길
제따바나는 인도 코살라국의 제따 왕자와 아나타핀디까 장자가 마음을 모아서 승가에 기증한 승원이름입니다. 코살라국에 붓다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게 된 반석 역할을 한 곳이지요. 이곳에는 언제나 많은 스님들이 머물고 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제따바나 승원 수행자가 주인공
출가 전에는 고용살이에 힘든 삶
누더기옷·쟁기 하나가 전재산

탁발하던 스님 권유로 출가 인연
낭갈가꿀라 스님으로 새로운 삶
사람들 존경 받으며 인생 역전

나태해 질때마다 과거 되새겨
초발심 찾기 위해 숲으로 향해
출가할 때 버린 누더기·쟁기가
수행 의지 다지는 마음 속 스승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스님 한 분이 승원에서 나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숲으로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그리한 것은 아니지만 며칠 간격을 두고 자주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스님이 숲길을 자주 오가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사실 출가하기 전 그는 남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집안도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어 누가 봐도 딱하기 이를 데 없는 처지였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해줘야만 그날의 끼니를 때울 수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일을 쉴 수가 없습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지만 그의 처지는 깜깜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언제부터 입고 다녔는지 모를 정도로 낡은 누더기 한 벌과 노동을 위해 꼭 필요한 쟁기 한 자루가 가진 재산 전부입니다. 그렇게 품을 팔고서 그날 하루의 굶주림만 벗어나는 것이 그의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좀 더 밝은 앞날을 위해 꿈을 품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희망은 사치일 뿐, 그저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더 이상 기울 데가 없을 정도로 남루한 누더기를 입고서 쟁기를 어깨에 메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뒤에서 그를 불러 세웁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를 불러 세운 사람은 제따바나 승원에 머물며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었습니다. 이 스님이 탁발하러 길을 나섰다가 체념으로 어깨가 굽은 이 사내의 뒷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귀가 솔깃한 제안입니다. 그가 묻습니다.

“어떤 길입니까, 스님?”
“저처럼 스님이 되면 됩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스님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게다가 당시 인도 사회를 생각해보면, 보잘 것 없는 천한 태생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누더기를 입고 쟁기를 메고 가던 사내는 다시 묻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스님이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바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품을 팔아 밥을 얻어먹고 사는 처지라면 날품팔이 보다는 수행자의 위의(威儀)가 더 그럴 듯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누더기 차림의 사내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대답했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 당장 스님이 되겠습니다. 저를 승단에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러자 제따와나의 스님은 이 사내를 강으로 데리고 가서 깨끗하게 목욕시킨 뒤에 머리와 수염을 깎아주고 법다운 절차를 갖춰서 그에게 계를 주었습니다. 이름도 새로 지어줬습니다. 낭갈라꿀라, 쟁기꾼이라는 뜻이지요. 낭갈라꿀라 스님에게는 이제 누더기와 쟁기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제따와나의 스님은 그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그 누더기와 쟁기는 저 숲 속 나뭇가지에 잘 걸어두시오.”

이후 낭갈라꿀라 스님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붓다를 향해 올리는 많은 공양물이 승가 스님들에게 골고루 나눠지니 낭갈라꿀라 스님은 예전과는 아주 다르게 넉넉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눈을 살짝 뜬 채 정면 조금 앞에 시선을 두고서 탁발을 나서면 사람들은 다정하고도 공손하게 합장을 하고 공양을 올렸습니다. 늘 남들 앞에 허리 굽히며 가장 힘든 일을 해서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으로 지내오던 예전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그런데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요. 이런 삶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굵은 땀을 흘리던 시절이 그리워진 겁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 스님은 처음부터 수행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지요. 그저 스님 되면 저절로 먹을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신을 차리자. 내가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옷과 음식은 결국 빚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건 너무 지루하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님은 문득 출가할 때 숲 속 나뭇가지에 걸쳐둔 누더기와 쟁기가 생각났습니다. 부리나케 그곳으로 갔습니다. 덤불을 헤치고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들을 걷으며 숲으로 들어가니 오래 전에 그곳에 걸쳐 둔 자신의 재산이 남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습니다. 더 이상 기울 데가 없을 정도인 옷과, 버려두어도 아무도 집어가지 않을 정도로 낡은 연장 하나-숲속을 지나간 사람이 전혀 없지도 않았을 텐데 얼마나 남루했으면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일까요? 낭갈라꿀라 스님은 나무 아래 서서 그 누더기와 낡은 연장을 한참 올려다봤습니다.

‘낭갈라꿀라, 이 뻔뻔한 자야! 너는 남의 종살이를 하며 지내다 존경과 공양을 받는 처지가 되었는데도 그게 지금 권태롭다며 짜증을 내고 있구나. 좋다. 저 누더기와 연장이 그렇게 좋다면 세속으로 돌아가라. 아무리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처지가 그립다면 그렇게 해라.’

속에서 이런 외침이 솟구쳤습니다. 낭갈라꿀라 스님은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그는 마음을 다시 굳게 먹고 제따바나 승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예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대하고 신자들의 공양물을 맞았습니다. 도반들은 낭갈라꿀라 스님이 어딘가 좀 달라졌다며 신기해했습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마음에 틈을 주면 게으름이 찾아오고 동시에 슬며시 권태가 밀려옵니다. 죽기 살기로 지내던 세속에서의 그 삶, 그 분주하고도 울분에 가득 찼던 삶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때면 낭갈라꿀라 스님은 숲속의 덤불을 헤치고 누더기와 쟁기가 걸려 있는 나무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절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숲 속을 오가자 이유를 알지 못하는 도반들은 놀렸습니다.

“아니, 대체 저 숲속에 뭐가 있소? 뭐가 있기에 그렇게 부지런히 오가는 것이요?”
그러자 낭갈라꿀라 스님은 대답했습니다.

“스승이 계십니다.”
“스승이라면 절에 계시잖소? 그런데 숲에도 스승을 모셔뒀다는 말이오?”
“예, 제 스승님은 숲에 계십니다. 저는 그 스승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맞습니다.

낭갈라꿀라의 스승은 숲에 계셨습니다. 그의 스승은 하루하루를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마지못해 살던 그 시절의 전 재산이었던 누더기와 쟁기입니다. 그 스승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끔한 회초리를 내리칩니다.

“예전처럼 살겠다고? 넌 무지와 번뇌에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하던 그 시절이 그리도 그립단 말이냐? 돌아올 테면 돌아오너라. 거지도 집어가지 않는 누더기와 낡은 연장이 너를 기다리고 있구나. 자, 이게 그토록 그립다면 돌아와서 이걸 가지고 예전의 그 인생으로 돌아가라!”

낭갈라꿀라는 숲 속 나무 아래에서 스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한 뼘씩 깊어졌을 테지요. 승원으로 돌아와서 붓다에게 가르침을 들으면 심장 속으로 쑥 들어와 박히는 체험을 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붓다의 제자로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경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을 완전하게 갖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스승이 의미 없어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숲속 나뭇가지에 걸린 누더기와 연장을 보러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외진 숲속에 길이 생길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어느 날 그 걸음을 뚝 멈춰버린 낭갈라꿀라 스님에게 도반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스승께서 숲에 계시다면서 어째 요즘은 한 번도 찾아뵙지 않는 거요?”
“제 마음이 세속에 있을 때는 이 길을 왔다 갔다 했지만 이제는 세속의 미련을 완전히 잘라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스승에게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는 사이 제따바나에 머물면서 이 모든 일들을 다 지켜보신 붓다는 그를 향해 이렇게 시를 읊으십니다.

네 자신을 꾸짖고 네 자신을 살펴라.
제 마음을 늘 챙기는 자는 행복해지리라.
수행자여, 그대의 보호자는 그대 자신이요,
그대의 의지처도 그대 자신이다.
말 장사꾼이 명마를 아끼고 돌보듯
그대는 자신을 아끼고 돌보아라.

법구경 379, 380번 게송이고, 위의 긴 사연은 이 게송에 숨어 있는 인연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나 스승에게 가는 길이 분명 있을 터입니다. 그 길 끝에 버려진 누더기와 낡은 연장이 쓸쓸하게 옛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커멓게 탄 가슴으로 오가느라 그 발길에 밟혀서 숲길의 풀잎들이 누레졌습니다.

붓다는 자신이 걸어간 길을 함께 가자고 권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제자를 위해 사신 분입니다. “청년들이여, 나를 밟고 일어서라”고 한 중국 문호 루신의 외침도 이와 다르지 않을 테지요. 스승은 그렇게 제자들에게 쓰임을 당하고서 버려지는 존재입니다. 그걸 기쁨으로 삼는 붓다와 스승을 기리는 날이 들어 있는 5월이 어느 사이 저물었습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97호 / 2015년 6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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