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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포교-포천 기갑호국사

“진정한 불자 한 명 얻기 위해 아흔아홉 명을 먹인다”

▲ 기갑호국사에서는 매년 한 차례 위문공연이 열린다. 수백 명 장병들은 이날 하루만큼은 마음껏 웃고 떠들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다. 사진은 지난 4월26일 열린 위문공연에서 스님과 장병, 공연팀이 함께한 모습.

매주 일요일 포천 기갑호국사(주지 지일 스님)는 150여명, 많게는 200여명 장병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1기갑여단의 영외 군법당이지만 인근 사단 예하부대 장병들까지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단정하게 정돈된 도량에 도착한 장병들은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한다. 법당 옆 교육관에서 잠시 잠을 청하는 장병도 있다. 흔히 떠올리게 되는 군대의 딱딱함 대신 자유로운 분위기가 도량 곳곳에 흐른다.

관리 안 돼 어려움 겪던 중
2009년 지일 스님 주지 부임
1000일 기도로 마음 모으고
2년 동안 대대적인 불사 진행

30명 불과하던 법회 참석인원
150여 명까지 확대되며 발전
자유로운 분위기·쉬운 법문
매년 한 차례 위문공연 열어
병사·간부들에게 인기 만점

하지만 법회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뀐다. 삼귀의, 반야심경, 발원문 등을 되새기며 진지한 얼굴로 간절한 마음 다해 부처님께 기도한다. 주지 지일 스님은 눈높이에 맞는 법문으로 장병들의 마음에 불법을 심는다. 불자 아닌 장병들도 많은 군대 종교행사의 특성을 고려해 누구라도 쉽게 부처님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 때때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불교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법회가 끝나고 내놓는 국수는 장병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정성이 듬뿍 들어간 맛깔스런 국수에는 불법홍포에 대한 스님의 발원이 그득하다. 여느 군법당보다 많은 장병들이 기갑호국사를 찾는 것은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재미있는 법회, 맛있는 공양과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는 스님의 마음이 어우러진 결과다.

▲ 기갑호국사를 거쳐간 장병들은 제대를 했어도 해마다 스님을 찾는다.

기갑호국사에 대한 높은 평가는 병사들에게서만 나오지 않는다. 간부들 역시 기갑호국사의 꾸준한 활동에 감화돼 서서히 불자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장교 6명이 불교를 배우고 싶다며 스님에게 배움을 요청했다. 그 후 매주 화요일 저녁 기갑호국사는 불교대학으로 변모했다. 장교들은 훈련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도 불법을 배우는 시간만큼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강의에 임했다. 장교들은 배움을 통해 어느덧 시키지 않아도 스님에게 먼저 3배로 인사를 올리는 불자로 거듭났다. 지휘관의 명령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군대에서 이 같은 변화는 주목해볼만 하다. 의욕을 가지고 군포교에 뛰어든 스님들이 지휘관들과 마찰을 겪거나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군대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갑호국사는 전법도량 본연의 역할과 동시에 1주일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장병들의 힐링 공간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는 지일 스님이 척박한 대지에 쉼 없이 원력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꽃으로 피워내려 노력했기에 가능했다. 지일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았던 2009년 무렵, 기갑호국사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출가의 뜻을 오로지 ‘포교’에 뒀던 지일 스님의 원력은 15명에 불과하던 서울 수효사 어린이법회 규모를 100여 명으로 확대시킬 만큼 대단했다. 가끔씩 스님들과 함께 군법당 봉사도 나갔다. 마침 지인이 기갑호국사를 운영할 스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원력을 되새기며 결심 했다. 군승도 아닌 비구니스님으로서 적응하기 힘들 거라는 주변의 우려와 만류도 있었지만 포천으로 향했다.

처음 마주한 기갑호국사의 모습은 처참했다. 보리수가 엉켜 있어 법당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쩍쩍 갈라진 도로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법당의 모습은 더욱 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곰팡이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멍 뚫린 천장으로 오랫동안 비가 샌 흔적이 역력했다. 그나마도 법당 한가운데 기둥이 박혀 있어 법회조차 수월하게 진행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이곳에서 부처님과 첫 대면을 하게 될 장병들이 다시는 불교를 쳐다보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움이 일었다.

당시 스님 수중의 돈은 70만원이 전부였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답답했지만 일단 장병들에게 먹을 거라도 잘 대접하자 마음먹었다. 철원 심원사에서 과일과 떡, 과자를 얻어 법회 때 나눠줬다. 도반스님들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빚도 얻었다. 하지만 반년도 안 돼 바닥이 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스님은 마음을 추스르고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오직 군포교에 대한 일념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스님의 마음이 전달됐는지 처음 30명에 불과했던 법회 참석 장병들은 어느새 100여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장교와 그 가족들, 지인들은 십시일반 마음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던 2010년 여름, 수해로 뒷산이 무너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기갑호국사도 적잖이 피해를 입었다. 좌절할 만도 하건만 스님은 도리어 그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군부대와 관공서에서 피해복구지원금을 받아 대대적인 환경개선에 나섰다. 우선 파괴된 법당을 정비했다. 천장 구멍을 메우고 기와를 깔았다. 법당 한가운데 흉물스럽게 서 있던 기둥도 뽑았다. 법당불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흙길을 포장하고 부대와 수도관을 연결해 물이 나오도록 했다. 피해복구지원금은 물론 속가 인연에서 비롯된 돈까지 모조리 불사에 투여했다. 결국 불사는 2012년 마무리됐다. 비로소 부처님 도량다운 모습이 갖춰지게 된 것이다.

▲ 기갑호국사 전경. 2년에 걸친 불사 끝에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그렇게 여법한 환경이 조성되자 장병들은 더욱 늘어나 평균 150여 명이 매주 기갑호국사를 찾게 됐다. 부처님오신날 법회나 1년에 한 번 열리는 가릉빈가소리의 위문공연에는 500여 명이 찾을 정도다. 오해균 세광음반사 대표가 이끄는 가릉빈가소리의 위문공연에는 전통공연을 비롯해 연예인들의 특별공연도 펼쳐진다. 때문에 장병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스님은 또 매년 부처님오신날에 장병 한 명을 선정해 장학금 100만원을 전달해오고 있다. 스님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지원을 이어오는 것은 포교에 대한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스님은 ‘진정한 불자 한 명을 얻기 위해 아흔아홉 명을 먹인다’는 신념으로 현재까지 기갑호국사를 운영해왔다. 그 한 명이 가는 곳마다 불법이 열리게 돼 100명이 되고 1000명이 될 거라는 굳은 믿음에서다.

실제로 기갑호국사를 거친 군종병과 장병들은 제대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스님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에는 11명이 기갑호국사를 찾아 후배들을 격려했다. 그들은 여자친구나 직장상사 등을 함께 데려와 부처님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장병들의 부모 역시 아들을 잘 보살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가 많다. 이밖에 기갑호국사에서 정기적으로 떡볶이를 보시하고 있는 재가불자 모임 ‘화엄회’의 활동에 감화된 주변사람들이 불자가 되는 등 스님의 포교 철학은 많은 사람들을 불법에 귀의케 하고 있다.

기갑호국사는 군포교 원력의 씨앗이 피워낸 꽃내음 가득한 전법도량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진정한 불자를 길러내기 위해 어떤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던 스님의 원력이 오늘의 기갑호국사를 만들어냈음이다. 스님의 원력 곳곳에 스민 기갑호국사는 오늘도 두 팔 벌려 장병들을 품어내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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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교마저 밀리면 불교 미래 없어

기갑호국사 주지 지일 스님

 
스님은 “혼자 힘으로는 여기까지 올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군종특별교구장 정우 스님과 자인사, 봉은사, 극락사, 심원사 등 사찰의 관심과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설명한다. 위문공연단을 꾸려 찾아오는 오해균 대표나 재가불자 봉사단 ‘화엄회’ 그리고 1기갑여단장, 수색중대 간부, 5군단 예하 모든 법사들에게도 공을 돌린다. 기갑호국사 주지 부임을 만류했던 은사스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오히려 군포교 하나만 바라보며 지난 6년을 매진할 수 있었던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의 원력이 없었다면 그 관심과 지원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다. 스님은 “이웃종교가 어린이·청소년에게 쏟는 정성에 비하면 불교계의 관심은 한참 모자라는 게 현실”이라며 “군포교마저 밀리면 불교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소임을 봐왔다”고 말했다.

서울 수효사에 있을 때, 인근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남성 성가대 소리가 항상 부러웠다는 스님이 군포교에 집중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스님은 근처 고시원을 찾아 떡을 돌리며 포교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스님은 “2년만 하고 돌아가겠다는 은사스님과의 약속이 어느덧 4년이 되고 6년이 됐다”며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때마다 찾아오는 제대 장병들을 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발원을 되새겼다.

스님이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군포교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4년 현재 군대 내 불교계 종교시설은 409개에 이르지만 군승은 131명에 불과하다. 많은 군법당이 운영되고 있지 않거나 포교사들의 봉사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구본사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 군법당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말한다.

스님은 “부대에 협조만 구하면 군법당에 들어가는 문제는 어렵지 않다”며 “다만 군법당 운영은 별개의 문제로 부대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힘든 건 사실이지만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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