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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미타경의 여시아문

기자명 이제열

아난에 의지하지 않고 법신불에게 들었다는 의미

▲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

‘아미타경’은 다른 경전들과 마찬가지로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말로 출발한다. 어느 경전을 펼치건 모든 경전의 첫머리는 여시아문으로 첫 머리를 삼는다. 아미타경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승수행자의 깨달음 경지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일

모든 것은 법신불에서 비롯
그래서 대승경전 또한 불설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의 유형을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계시종교이고 하나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계시종교는 신이 주체가 된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신이 특정한 인간을 선택하여 그에게 자신의 뜻을 내보임으로써 만들어진 종교가 계시종교다. 기독교나 회교, 힌두교 같은 종교가 대표적이다. 깨달음의 종교는 신이 아닌 인간이 주체가 된다. 초월신의 계시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세상의 문제들을 깨닫고 해결함으로써 만들어진 종교가 깨달음의 종교다. 불교나 자이나교, 도교 같은 종교가 대표적인 깨달음의 종교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석가모니라는 한 인간에 의해 탄생한 종교이다. 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진리가 증명되고 그 진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음을 내보인 종교다.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할 때에 들었다는 것은 신의 계시에 의해 들었다는 것이 아닌 위대한 한 인간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는 의미이다. 그 위대한 인물이 부처님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불교역사로 볼 때에 결집(結集)이라고 표현되는 경전의 성립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결집의 시초는 라즈기르의 칠엽굴에서 비롯된다. 나이가 들어 출가한 수밧다의 망언이 마하가섭존자의 귀에 들어가고 이를 심각하게 여긴 마하가섭존자는 부처님의 율과 경을 바로 세우고자 결집을 감행하였다. 결집은 마하가섭존자의 주재아래 500명의 아라한들이 모인 가운데에 진행됐다. 중요한 인물은 율을 암송한 우파리존자와 경을 암송한 아난존자였다. 이 가운데에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면서 부처님을 25년 동안 보필했던 인물이다.

기억력이 뛰어났던 아난존자는 대중들 앞에서 자신이 듣고 겪었던 일들과 가르침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난다존자의 기억을 통해 나온 부처님의 가르침은 500명 장로비구들의 인준을 거쳐 틀림없는 불설로 선포되었다. 따라서 경전 첫머리의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할 때에 나란 다름 아닌 아난존자다.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 같은 초기결집의 과정을 새삼 소개하는 것은 과연 수많은 불교의 경전들이 모두 아난다의 기억에 의존하여 나온 것들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경전 성립사의 측면만이 아닌 좀 더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도 모든 불경이 아난존자에 의해 탄생했다고 보기 힘들다.

냉정히 말해 아난존자의 기억에 의존하여 암송되어지거나 재편찬한 내용들은 니까야 계통의 초기경전들이다. 대승경전들은 아난존자의 기억의 영향은 받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그 사상 면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아난존자와는 무관한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대승경전의 여시아문의 주체는 아난존자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하나는 대승경전의 내용들이 아난존자의 여시아문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누구에 의해 여시아문이 이루어졌다는 것인지에 대한 것과 부처님의 직제자인 아난존자의 여시아문이 아니라면 대승경전을 불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오늘날 일부 비뚤어진 초기불교주의자들의 대승불교에 대한 비판이 주로 여기에 근거한다.

대승경전의 여시아문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듣지는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이치를 깨달은 수행자들에 의해 다른 부처님으로부터 들음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른 부처님이란 곧 수행자의 깨달음 속에서 드러난 법신의 부처님이다. 대승불교의 수행자들은 자신이 성취한 깨달음 속에서 법신의 부처를 만나고 그 부처님에 내재하는 갖가지 공덕들을 여시아문의 형식을 빌려 경전을 편찬하였다. 대승경전의 여시아문에서 아(我)는 누구인지 모른다. 또한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대승불교의 수행자들은 자신이 증득한 법의 세계를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취한 경지와 동일하다고 여겼고 이를 세상에 펼침에 있어 모든 공덕을 석가모니 부처님 쪽으로 회향하고자 하였다.

대승불교에서 확인한 부처님은 법신불이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은 경지 또한 법신불로 보았다. 대승불교에서는 법신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동일한 존재로 삼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600년 전의 인물이지만 법신의 부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없다.

초기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과 동시에 그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시각은 다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은 사라졌어도 그 분의 깨달음인 법신은 상주하며 설법 또한 중생이 존재하는 한 지속된다. 대승경전의 여시아문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대승불교의 역사는 부처님 입멸 후가 아니다. 이미 부처님 당시부터 존재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교단 내에 초기불교의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과 대승불교의 깨달음을 이룬 아라한들이 함께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결집의 역사에 있어서도 칠엽굴 결집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종류의 아라한들이 굴 밖에서 결집을 감행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듯 여시아문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내용이다.

불멸후 150여년 경 분열한 부파불교의 시작은 이미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두 종류의 깨달음이 본격적으로 충돌한 것이 대중부와 상좌부의 근본분열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설명의 각도가 약간 비껴 나간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 우리는 불교를 공부하는데 있어 대승불교의 정통성에 관해 의심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이익과 기쁨을 줄 수 있느냐에 있다. 병을 고치면 약이고 못 고치면 약이 아니듯 대승불교의 가르침이 우리의 고통을 없애 줄 수 있다면 이는 진정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여시아문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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