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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여성들, 모성이 위험하다

  • 법보시론
  • 입력 2015.06.22 16:41
  • 수정 2015.06.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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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연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보다 더 두렵다. 바이러스를 잘 극복하면 면역 항체가 형성되어 다음에 이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선택하는 극단적인 사건은 지속적으로 확산되지만, 개선의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듯 하다.

바로 자신이 낳은 아기를 살해하여 유기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며칠 전 보도되었던 소위 영아시신 택배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한 아기의 시신이 택배로 보내져서 경찰에 신고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아기는 수취인의 딸이 낳은 아기였던 것이다.

피의자 이모씨는 35세 나이로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면서 혼자 고시원에 살았다 한다. 혼자 아기를 낳고 열악한 환경에서 아기를 키울 수 없어 그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년간 연락을 끊고 살았던 친정엄마에게 아기의 시신을 부탁하며 보냈다 한다.

비슷한 사건은 사실 계속 보도된 바 있다. 지난 3월에도 살해된 아기가 쓰레기 봉투에 담겨 버려진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인 역시 아기의 엄마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죽은 아기가 쓰레기 봉투에 담기고, 택배 상자로 배달된 ‘현상’에 더 경악하고 끔찍함을 느끼는 듯 하다. 그리하여 생명의 존엄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고, 자기 편하려고 모성을 저버렸다며 이 엄마들을 ‘괴물’로 쉽게 비난한다.

물론 어떤 논리로도 이 여성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조건을 살펴보지 않고, 단순히 마녀사냥만 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이들은 대개 극심한 경제적 빈곤에 놓여 있었고, 남편과 가족들과도 떨어져 고립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다. 즉, 벼랑에 서 있었던 여성들인 것이다. 이런 조건의 여성이 모두 ‘괴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조건의 사람을 아무도 돕지 않았을 때 끔찍한 일이 있어나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하고 있다.

한편, 이 문제가 많은 여성들의 심리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상황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궁지에 몰리고 고립된 심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 여성 심리학자에 의하면 지금의 현상은 이미 1990년대에 예견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시기에 유독 ‘산후우울증’ 사건 즉, 아이를 낳고 난 뒤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아이를 살해하는 일이 많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0년대 초반 한국 자살율 현황 중에서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자살율과 자살 시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정신적 상황은 생각보다 매우 위험한 수준인 것 같다. 특히 양육자로서의 여성의 문제는 바로 자녀들의 생명과 건강, 정서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너무나 긴급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가족주의, 모성 관념에 갇혀 이 문제의 사회적 해결이 더욱 어렵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상태는 가난한 싱글맘이라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경제적 빈곤이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게 만든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사회적 방치와 인간관계의 고립 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여성의 상태가 어떠한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종교는 여성들의 고통을 위로해 주기보다, 모성을 찬미하면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순응하도록 가르쳐 왔다. 그러나 모성은 이제 현실적으로도 더 이상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본성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모성의 위기는 여성들의 의식에 있기보다, 벼랑에 내몰린 이들에게만 생명을 맡기고 방관하는 구조에 있을지 모른다. 모성이 위험하다. 그리고 여성을 돕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불교가 더 모성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이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 연구교수 namutara@gmail.com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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