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 중국 오대산 성지순례(상) 운강석굴-불궁사석가탑-현공사-오대산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 처음 울려 퍼진 산을 오르다

▲ 오대산 서대 법뢰사에서 중대 연교사로 이어지는 저 길을 순례객들은 지금도 걷는다. 1500여년을 이어 온 대장정이다. 이른 아침의 구름 속 연교사가 신비로워 보인다.

울산 정토사(주지 덕진 스님) 신도 분들과 함께 중국의 문수성지 오대산 가는 길이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티 없는 진실한 그 마음/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게송이 처음 울려 퍼졌다는 그 산은 산시성(山西城 산서성)에 있다.

"석굴서 핀 자애미소 ‘감탄’
허공에 매달린 절 ‘압권’
부처님 닮으려 했던
북위 사람들 정성에 ‘합장’"

▲ 달리는 차 안에서 촬영한 황토고원.

베이징(북경. 北京)에서 육로를 통해 산시성 중심부로 들어서려면 황토고원(黃土高原)을 지나야 한다. 그 언제부터인가 고비사막에서 인 바람길 따라 건너 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평균 50-80m) 들판이 되고 야산이 되었다. 면적만도 한반도 2배에 이르는 40만㎢. 저 고원에 1년 내내 비 내려 봐야 고작 200mm. 얼마나 척박한 땅인가! 그러나 지금도 누군가는 저 메마른 땅을 일구며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다.

황토고원이 끝난 자리에 얼핏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큰 산이 시야를 꽉 채우는데 오승화 중국 현지 가이드가 일러준다. “산시성에서 이동하는 내내 저 산은 순례객이 탑승한 차를 계속 쫓아 올 겁니다. 중국의 명산 타이항산입니다.”

타이항산은 한문으로 태항산(太行山)이다. 한문 행(行) 자는 ‘걷다’ 의미로 쓰일 때 ‘행’으로 읽고, ‘줄을 서다’의 ‘줄’로 쓰일 때는 ‘항’으로 읽는다. ‘큰 산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뜻이 있기에 ‘태항산’ 즉 타이항산으로 읽는다.

태항산은 중국 산시성 북부에서 허베이성, 허난성 등 3개 성 남북 600Km, 동서 250Km에 걸쳐 있다. 사실상 산맥이다. 그 중 산시성 북부에 자리한 산이 헝산(恒山 항산). 따라서 흔히 말하는 ‘태항산’은 태항산맥을 이르고, 항산(恒山)은 태항산맥에 솟아 있는 산 중 산시성 북부에 있는 산 헝산을 이른다. 지역 이름도 태항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기에 산동성(山東城)이고, 서쪽에 있기에 산서성(山西城)이다.

▲ 운강석굴을 대표하는 운강노천대불(雲崗露天大佛). 높이 13.8m. 굴 앞 벽이 무너지면서 불상의 완연한 미소가 완벽하게 세상에 전해졌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시황이 북쪽의 유목민족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기필코 그 성을 넘어 와 나라를 세운 민족이 있었으니 북위(北魏. 위진남북조시대)를 세운  선비족이다. 지금의 다퉁(大同 대동, 북위시대엔 평성)에 수도를 정하고는 대형석굴 2개를 조성했는데 그 하나가 뤄양(洛陽 낙양)의 용문석굴(龍門石窟)이고, 또 다른 하나가 순례객 눈 앞에 펼쳐진 다퉁의 운강석굴(雲崗石窟)이다. 북위의 종교 총 책임자였던 담요(曇曜) 스님이 황제(문성제)에게 건의해 조성(460년)하기 시작했다. 무주산 자락 1Km 길이의 절벽을 따라 석굴 252개가 펼쳐져 있다. 불감 1천100개에 5만불 이상이 조각돼 있다고 한다.

부처님 출생과 출가, 열반까지의 숭고한 일대기가 섬세하게 조각돼 있는 6번 굴이 인상적이다. 미려한 곡선으로 다듬어진 보살이 즐비한 7번 굴, 힌두교 흔적을 엿볼 수 있는 8번 굴도 유심히 보아둘 만하다. 북위 장인들의 올곧은 신심이 농축된 원강석굴이다.

항산(恒山)으로 들어서는 금룡협(金龍峽)에 이르렀다. 얼핏 보아도 100m 는 훌쩍 넘을 높이의 벼랑이 당장 푸른 하늘 속 구름 위로 올라서려는 듯 쭉쭉 뻗어 있다. 지금은 말라 있는 저 협곡 사이로 배가 들어왔을 터. 사공이 노를 젓는 동안 당나라 청련거사(靑蓮居士) 이백도 저 멋진 풍광 즐기며 이런저런 시상을 떠올렸겠지!

▲ 현공사 안에는 40칸의 방이 있다.

협곡의 위세에 기가 눌릴 즈음 1500여년의 숨결을 간직한 현공사(懸空寺)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 단애절벽에 사뿐히 걸터앉아 있다. ‘허공에 매달린 절’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나룻배에 몸 싣고 들어 와 저 절 처음 보았을 이백도 감탄한 나머지 시를 대신 해 두 자를 적었다. 장관(壯觀)! 선상에서 떠올렸던 시상(詩想), 현공사가 내뿜는 신묘한 위용에 무너진 게 분명하다.

▲ 현공사는 원래 지상 90m에 있었으나 흙과 모래가 쌓여 지금은 60m지점에 있다.

저 현공사 역시 북위 시대 요연(了然) 스님이 지은(491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북위 왕족은 왜 저토록 장엄하면서도 현묘한 운강석굴과 현공사를 지었던 것일까? 다양한 역사 해석이 있겠지만 현지 가이드의 설명과 학자들이 전한 이야기 몇 토막을 묶어 그 깊은 사연을 엿보자.

북위가 다퉁에 도읍을 정할 때만해도 선비족은 서역에서 온 불교를 적극 수용해 선비족과 한족 모두가 불교를 믿도록 권장했다. 이는 당시의 강력한 불교세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선비족과 한족의 융합을 꾀해 자국의 평화를 이루려는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의 선택이었다.

이를 곱지 않게 보았던 정치가 최호와 도사 구겸지가 서로 손을 잡고 황제(태무제)를 부추겨 불교를 탄압하게 했다. 최호, 구겸지의 의도는 하나. 선비족 중심의 불교국가를, 한족 중심의 도교국가로 바꾸려 했던 것. 당시 선비족의 황제가는 대륙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선비족의 한족화, 즉 한화(漢化)정책을 펴고 있었다. 태무제도 어쩌면 한화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오판에 두 사람의 정치적 제의를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교탄압은 6년(446~452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장안의 모든 사원은 허물어졌고, 불경과 불상, 탑도 부서졌다. 승려는 투옥됐는데 일부 스님은 생매장 당했다. 극악무도의 탄압은 태무제가 죽고서야 끝났다. 문성제가 등극(452~465년)하며 북위불교는 다시 꿈틀댈 수 있었다. 문성제를 비롯한 북위 황제가 명산 곳곳에 석굴과 절을 건축한 건 ‘6년 법난’에 대한 보상내지 참회였던 셈이다.

▲ 불궁사석가탑 앞에서 찰칵! 오대산 성지순례길에는 울산 정토사 주지 덕진 스님과 신도 95명, 일광여행사 김성민 실장과 김경민 과장, 중국 현지 가이드 오승화씨와 필자 총 100명이 함께했다.

불교와 황제 사이의 정치 관계는 접고라도 운강석굴과 현공사에 배인 북위 사람들의 신심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부처님을 닮으려 했던 그들의 정성에 손을 모으며 삼배를 올린다. 참고로 현공사 맨 꼭대기 삼교전에는 석가모니와 공자, 노자 세 성인이 나란히 봉안돼 있다. 불교와 유교, 도교가 공존하는 현공사다.
오대산 길목에 들어서면서도 눈 앞에 지상 최고 높이의 목탑이 아른거린다. 응현목탑(應縣木塔)으로 알려진 현존 세계 최대 목탑인 불궁사석가탑(佛宮寺釋迦塔. 높이 67.31m)이 세워진 건 1056년. 거의 1000년에 이른 목탑이 지금도 사람들을 품을 수 있다니 놀랍다.

▲ 정토사 신도분들이 불궁사석가탑을 돌며 석마모니 정근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저 목탑 보는 내내 상상 속에서 그렸던 황룡사 9층 목탑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더랬다. 신라의 최대 목탑은 645년 세워졌고 높이만도 80m를 넘었다 하지 않는가. 저 응현목탑처럼 그대로 있었다면, 저 현공사처럼 1천여 년의 세월을 견디었다면 황룡사 9층 목탑에 올라 저 불궁사석가탑을 내려 보았을 터. 상상 속의 황룡사 목탑만 아른거릴 뿐이니 아쉽기 그지없다.

이제 저 길을 따라 오르면 오대산 중대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받아 와 한반도 땅에 안치한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태화지가 저 산 위에 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

순례단이 찾은 명소 3

■ 평요고성

 
성벽 둘레만도 6163m, 여의도 5배인 평요고성 (平遙古城)은 태원에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성곽만 지정된 게 아니다. 성 안에 있는 건축물 일체가 지정됐다. 성 안에는 지금도 3 만명이 거주 하고 있다. 고대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셈이다. 명청시대에 많은 보수를 했지만 2700년 전의 건축 형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만리장성 거용관

 
서쪽 산해관(山海關)에서 동쪽 가속관까지의 장성 길이는 12,700(里), 6,000km에 이르기에 만리장성이라 부른다. 이미 쌓여 있던 장성을 하나로 이은 것이기에 각 구간마다 산성의 특성이 다르다. 베이징 장성만 해도 거용관을 비롯해 팔달령, 사마대, 금산령, 모전욕 등 5개가 있다. 순례단이 찾은 거용관(사진)은 사방으로 펼쳐진 산자락과 푸른 하늘이 자아내는 풍광을 자랑한다.

판자원

 
중국 베이징 화평문(和平門)에 자리한 유리창 (琉璃廠) 거리는 한국의 인사동이라 보면 틀림없다.‘유리창’이란 이름은 원나라 때 유리기와 공장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과거 시험 보러 왔다 낙방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책이나 벼루 등을 팔았던 시장. 청조 멸망 전후에는 귀족들이 소장하던 귀중품을 팔던 곳이기도 하다. 도자기나 그림, 글씨 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고가다. 반면 판자원(번자원구화시장潘家園舊貨市場, 사진) 시장의 물건들은 비교적 저가다. 원래는 주말시장이었는데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평일에도 열린다.


[1300호 / 2015년 7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