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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름에 끄달리지 말라

기자명 서광 스님

언어는 느낌·직관·통찰 세계로 안내하는 도구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고, 어떻게 마음에 간직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금강반야바라밀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에 간직하라.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법이 존재하느냐? 수보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티끌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여래가 티끌이라고 설한 것은 티끌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이며, 여래가 설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 수보리야, 서른두 가지 신체적 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서른두 가지 특징은 단지 그 이름이 서른두 가지 특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금강은 뭐든 자를 수 있다는 의미
무지·탐욕도 단번에 지혜로 전환
언어는 불법 전하려는 수단 불과
비어있음 관찰해 집착 내려놔야

위의 부처님의 말씀을 다음 3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는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정한 의미다. ‘금강’은 부처님 가르침이 금강석처럼 세상에서 가장 단단해서 결코 깨어지거나 파괴되지 않고 무엇이든 능히 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즉 이 경은 세상의 그 어떤 무지, 탐욕, 화, 번뇌도 단번에 반야의 지혜로 전환시키고 완성시킬 수 있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깊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이라는 것이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지, 어떤 구체적인 모양이나 형태를 갖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점이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물리적 세계의 구성요소인 티끌 또한 하나의 이름일 뿐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불법의 세계 또한 그 이름이 세계라는 것이지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일까?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지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의식, 영혼, 정신, 마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부처님이 갖추신 32가지 특별한 신체적 특징, 즉 남다른 거룩한 외모라 할지라도 그 외적인 모습 자체가 부처님은 아니라는 의미다.

유식심리학은 번뇌와 망상의 알음알이를 통한 8가지 앎(八識)을 4가지 지혜(四智)로 전환하는 깨달음의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2단계 수행에 사심사관(四尋伺觀)이라 불리는 4가지 조사방법이 있다. 이는 언어에 집착하는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법으로 문자가 가지고 있는 ①명(名) ②의(義) ③자성(自性) ④차별(差別)의 4가지 속성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①모든 정신적 물질적 대상에 붙여진 이름은 실체가 아니라 가설로 정한 꼬리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관찰 ②각각의 이름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고유한 실체가 아니라 그렇게 의미부여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 ③각각의 이름과 그 이름에 붙여진 의미의 본질이 비어 있음을 관찰 ④본질적으로 비어있는 이름들이 다양한 조건들을 만나서 어떻게 현상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드러나는가를 관찰.

이와 같이 유식에서는 사심사관을 통해서 언어가 가리키는 현상은 실체가 없고 본질적으로 비어있음을 관찰함으로써 언어, 문자, 말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훈련을 한다. 언어는 부처님의 법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이고 방편이기 때문에 언어자체에 매달리거나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록 생각이나 개념, 분석, 판단 등의 언어로 설명되어지기는 하지만, 그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세계는 어디까지나 언어 너머의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비이원적 경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언어를 느낌, 직관, 통찰의 세계로 안내하는 도구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0호 / 2015년 7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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