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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불교계 신뢰 또 저버리나

  • 기자칼럼
  • 입력 2015.07.03 12:14
  • 수정 2015.07.04 12:33
  • 댓글 1

서구 시인 불교적 연구 계획에
“선행연구 많고 진부” 탈락시켜
실제로는 신청자 외 연구 전무
연구 목록들 요청했지만 ‘묵살’
“불교 접근이 탈락 원인” 의혹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A교수는 얼마 전 한국연구재단의 평가 결과를 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지난 2월말 ‘성속의 이항대립을 넘어서: 불교의 진속불이로 본 존 던의 시’라는 연구계획서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 신청했었다. 영국 시인이자 기독교 성직자였던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시는 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있으며, 이를 불교의 진속불이사상과 비교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같은 연구는 존 던의 시를 서구학계와는 달리 우리 한국인의 관점에서 주체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존 던을 매개로 동서양의 소통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미 존 던의 시와 한용운의 시를 비교하고, 불교의 쌍차쌍조에서 존 던의 시 ‘금지’ 등을 분석하기도 했던 A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뜻 깊은 연구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나 평가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평가자A는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접근방법”이라고 하면서도 “선행연구가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여러 번 시도됐다”고 모호하게 평가했다. 심지어 평가자B는 “이미 진부해져버린 주제”로 못 박았다. 평가자C만 “불교와의 연관성은 던 시 읽기에서 새로운 주제접근”이라며 “필자의 선행 연구 역량에서 볼 때 성공적인 수행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A교수는 자신의 연구 과제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국내외적으로 여러 번 이뤄졌다느니 진부한 주제라느니 하는 평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A교수 자신이 존 던을 연구해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이지만 누군가 이러한 연구를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 “진부하다”는 것이 불교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A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즉각 이의신청을 제출했다. 신청과제의 탈락여부를 떠나 자신의 학문에 대한 부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에 평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자료 제시 요청과 더불어 평가자들의 견해만을 토대로 이의신청을 가볍게 넘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이 보내온 타당성 검토의견서는 그를 더욱 참담하게 했다. 역사적으로 존 던이 불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A교수가 이미 4편이나 되는 연구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참신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신청자의 선행연구가 있다는 점은 한국연구재단이 장려하는 사안이었으며, 불교적인 관점에서의 연구도 인문사회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번 시도됐다는 논문 목록은 전혀 제시하지도 않았다.

A교수는 다시 이의신청을 했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의 검토의견서를 조목조목 비판한 뒤 이런 논리라면 한 작가의 작품 하나에만 불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인지, 더 이상 존 던의 작품은 불교적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은 끝내 기존 연구 목록을 제시하지 않았고, A교수의 계속된 요청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어쩌면 A교수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다른 탈락자들도 대거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이재형 부장
그렇더라도 한국연구재단은 학문의 발전이 정직함과 객관성의 견지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4월 한국연구재단이 종교분야 책임전문위원 선정과정에서 기독교와 가톨릭은 포함하면서 불교는 배제해 불교학계의 공분을 샀던 것도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로 평가가 잘못됐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는 게 순리다. 그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의 당연한 의무이며, 학문의 발전을 이끈다는 한국연구재단의 존립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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