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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14. 선의 경지(3)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7.07 15:28
  • 수정 2016.01.05 16:08
  • 댓글 0

남 돕겠다는 마음만으론 부족 … 신뢰 쌓는 노력 선행돼야

 
여러분이 정말 승화하고 해탈하고 싶은 불자라면, 반드시 깨달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극락세계에 가기 어렵습니다.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의 정신적인 활동인 생각, 외적인 표현인 행동 사이에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늘 잘못을 저지르면 무슨 공덕과 자격으로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가겠습니까! 나는 공덕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자비로워도
공덕 없는 이 극락 제도 못해
배움과 수행으로 자격 갖춰야
수행·선행이 최상의 지름길

‘중생제도’ 다른 말은 ‘도움’
모든 행위는 자비서 출발해야
마음이 있어도 신뢰 없으면
도움 손길 전달 되기 힘들어
충분한 시간 들여  노력해야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은 자비로워서 우리가 염불만 하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천도해 본 사람만이 극락세계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갈 수 없습니다. 때로는 원을 세운 사람만의 일방적인 바람일 뿐이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대학 총장이라고 하고 모든 사람이 우리 대학에 와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시다. 공부 잘하는 학생도 다니고,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사람도 다닌다면 그 대학이 첨단기술을 가르치는 학술, 과학연구의 요람이자 글을 깨치는 초급반까지 겸해야 합니다. 이런 정체성 없는 학교도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학은 심오한 지식을 배우는 배움터여야 합니다. 물론 총장은 모든 사람이 대학에 다닐 수 있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신입생들을 모집할 때는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덕과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경지는 배움과 수행으로 얻습니다. 우선 천당과 극락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한 사람의 인품 승화 또한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자주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눈빛에서도 도둑심보가 드러납니다. 자주 살생하는 사람은 온 얼굴에서 흉악함이 서려있습니다. 자주 착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근육, 눈빛, 행동에서 청정함과 자재함이 느껴집니다. 사람의 외적인 특징과 내면의 마음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있어 자주 수행하고 선행하면 새로운 단계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서두르면 안 됩니다. 자신의 수행일정을 짜고 매일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도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만큼 돕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제도’를 ‘도움’으로 바꾸어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천도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꼭 이 세상을 떠나야 ‘제도’한 것이고, 깨닫게 해야 ‘제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우리보다 약한 모든 중생과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며, 잘못된 행위를 하는 사람을 바른길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이때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내 말을 따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 두세요. 신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당신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심지어 당신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말을 따를까요? 당신은 그들을 도와주러 갔는데 그들은 오히려 ‘재물을 취하러 왔을까? 아니면 여색을 취하러 왔을까?’ 의심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제도는 고사하고 자그마한 도움을 주려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먼저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용은 어떻게 쌓을까요?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호감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이 호감은 꾸며 낼 수 없습니다. 호감을 느끼는 것과 신용을 쌓는 것은 모두 시간이 필요하며, 우정이나 감정처럼 시간의 검증을 받습니다. 십년지기 또는 20년 지기 친구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차용증도 받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신용입니다. 예전에 나도 다른 사람에게 20만 위안(약 3,600만 원)을 빌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차용증을 적지 않았습니다. 상대방도 꼭 적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돈은 물론 기한 내에 다 갚았습니다. 오늘 문득 그 친구가 나한테 돈을 10만 위안(약 1,800만 원) 빌려 달라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요? 물론 흔쾌히 빌려주겠지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람을 도울 때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쌓이는 법입니다.

이 순간부터 마음을 바꾸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위 사람을 대해 보세요. 남녀 사이의 애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모두 사랑할 수 있는 큰 사랑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도움과 배려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큰 사랑이 있어야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도(度)’의 원래 의미는 ‘건너다’ 다시 말하면 강을 건넌다는 말이지요. 불경의 기록대로라면 피안에 닿을 수 있게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바로 ‘도(度)’입니다. 피안에 닿으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떤 사람은 다리가 필요하다 하는데 그것도 방법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바다는 넓고 끝이 없습니다. 너무 넓어서 다리로는 닿을 수가 없습니다. ‘도(度)’는 일반적으로 배로 건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배가 되고 뱃사공이 되어 고통 받는 중생을 즐거운 피안으로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신용이 부족하면 사람들을 배에 실어 고통의 바다를 벗어나게 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둑 배에 오르지 마라”는 옛말도 있잖아요. 조금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으로 선행하여 자신의 신용을 쌓아야 상대방이 우리의 말을 들어 주고 우리도 상대방을 도울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인류를 능가하는 고급 생명체와 접촉하고 소통했습니다. 옛사람들은 그 고급 생명체를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조가 신을 목격한 것은 아닙니다. 신은 지구의 어느 한 곳에 가끔 한 번씩 나타났고,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일부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친히 목격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요. 그러자 신을 보지 못했거나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왜 본 적이 없을까? 난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것은 믿지 않을 거야!” 이렇게 해서 그 어떤 시대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신을 목격할 수 있었던 사람은 일부일 뿐이고,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신이 같이 밥 한 끼 하자고 부르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업장 때문에 어리석고 의심이 많으니 반대는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눈을 믿지만, 마술사의 공연을 볼 때는 자신의 두 눈에 속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며, 열린 지혜와 평등한 마음으로 조용히 생각하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나는 선 수행을 하면서 사고하지 않고 깨닫는 방법을 적용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1차 해석은 사고이고, 2차 해석은 “비(非) 사고”입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깨달음의 방법을 얻게 되었을까요? 관세음보살님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 방법은 일반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수행을 한 이에게만 효과적입니다.

만약 어려운 일을 겪게 되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될 때에는 일하든, 가사를 하든 상관없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으로 그 일을 부처님께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이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될 때는 부처님 전에서 마음속으로 “이러한 일이 있으니 해결책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가사를 하면서, 대광명수지법을 하거나 오체투지를 하십시오. 만약 수행하고 있다면 하루만에, 보통은 3일 이내에,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불현듯 뇌리에 떠오르지만,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 해결책이 때로는 정상적인 추리와 분석으로 봤을 때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이 나면 물을 부어 불을 끄는 것이 일반적인 대책인데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 얻은 답은 ‘신경 쓰지 마’ 혹은 ‘옷을 불 위로 던지면 괜찮아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답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혜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정상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면 합리적이지 않지만, 머릿속에 이런 답이 떠올라 당신이 확신하고 진실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답입니다.

내가 포교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을 하는 과정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몹시 어려운 일이었으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성격입니다. 아무리 번거로운 일일지라도 나는 먼저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공불이색, 색불이공’을 이때에 사용하여 모든 번뇌를 허상으로 봅니다.

하지만 문제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든 해결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운전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었다면 상대방이 벌써 변호사를 고용하여 당신을 고소하여 부인할 수도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반드시 마주하여 해결해야 합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을 돕고 제도하는 과정에 나는 거의 매일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큰 어려움은 분기에 한 번 정도, 아주 큰 어려움은 3년에 한 번 정도 겪습니다. 아주 큰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다른 사람을 돕기는커녕 나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위에서 말한 방법으로 이겨냈습니다.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직접 하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에 착한 생각을 하고, 악의가 없으며,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자연히 부처님이 우리에게 하사하는 계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방법을 알게 되면 자신만 혜택을 보려 생각하며, 절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아들에게만 전하고 딸에게는 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다릅니다. 나는 널리 알립니다.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배우는 것은 바로 자비입니다. 나는 부처님의 자비에 대단히 감사하며, 때로는 고지식하게도 석가모니불과 친척관계도 아닌데 이런 방법을 전수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참뜻은 바로 ‘대자대비’라는 것을 깨닫고 감동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도 자비가 싹 트기 시작하면서 이 방법을 더욱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 설법 속의 진수를 깨닫고 혜택을 받고, 더욱 부유해지기를 바랍니다. 자비롭고 보시와 공헌을 즐겨 행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부유합니다. 하나하나 정확하게 계산하는 사람일수록 쉽게 가난해집니다. 인색할수록 가난하고, 대범할수록 부유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아는 사람은 아주 인색해도 부유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의 부는 그의 세대에서 끝이 나고 다음 세대가 되면 틀림없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대범하고 공덕이 충만한 사람만이 대를 이어 부유할 수 있으며, 물질적인 부든 정신적인 부든 대를 이어 영원히 그 가족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진푸티상사의 홍법시리즈 ‘선의 경지’ 중에서
번역 : 정금주
제공 : 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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