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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법보신문과 2015년 사면 논란

  • 기자칼럼
  • 입력 2015.07.10 15:26
  • 수정 2015.07.13 11:27
  • 댓글 22

법보신문은 종단개혁 당시
폐간 압박에도 개혁 이끌어
개혁으로 많은 성과 냈지만
돌아볼 과제도 적지 않아

의현 스님 감형논란 살피며
선입견 접고 사실 파악 노력
이제는 자비로 포용하는 게
종정과 원로의원 스님들 뜻

최근 법보신문을 좋아한다는 한 스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1994년 종단개혁에도 참여했던 이 스님은 지난 6월 조계종 재심호계원의 의현 스님 판결과 관련한 법보신문의 보도에 대해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에 앞장섰던 법보신문이 어떻게 의현 스님을 비호할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법보신문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1994년 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의 편차를 확인했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입사 초기인 2001년부터 선배들로부터 종단개혁 당시 법보신문의 활약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종단개혁은 법보신문의 자부심이었으며, 부당함에 맞서는 게 기자의 의무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그러다 지난해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이를 조명하는 기획기사를 1년간 연재할 기회가 있었다. 매주 1개 면을 할애해 종단개혁의 배경과 과정, 성과 등을 담아냈다. 이를 위해 도서관은 물론 누군가 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는 얘기가 있으면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다니며 자료들을 취합했다. 미처 기록으로 담아내지 못한 부분은 당시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종단기관의 각종 회의록, 교계신문과 일간지 보도, 재판기록 등 논문들을 제외하더라도 그렇게 모은 자료가 사과상자 몇 개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이 자료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현대 불교사의 큰 전환점인 종단개혁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불거진 아픈 상처들도 알게 됐다.

1994년 종단개혁은 의현 총무원장 체제에서 벌어졌던 폐쇄적 종단운영 구조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를 통해 합리적인 종단 운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사부대중의 염원에서 촉발됐다. 특히 종단의 입법‧사법‧행정의 권한을 분리해 특정인이 종단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불교가 정치권에 예속되는 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법보신문이 종단개혁의 전면에 나섰던 것도 이런 연유였다.

법보신문은 1994년 이전부터 폐쇄적인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비판하며 종단개혁의 불씨를 지폈고, 종단 기관지와 방송이 외면하던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선우도량 등의 활동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개혁세력의 힘이 됐다. 1994년 개혁 당시에는 사주였던 불국사의 폐간 명령에 맞서 자체적으로 ‘편집국 뉴스’를 만들어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종단개혁이 당시 시대적 과제였으며 언론에 부여된 책무였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종단개혁이 끝난 뒤에는 “불교계 내부에는 법보신문이, 외부에는 한겨레신문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년. 조계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예산규모 등 외형적인 모습은 물론 불교의 사회 참여와 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상승했다. 또 정치권에 대한 예속을 거부하며, 종법의 테두리 내에서 종무행정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도 1994년 개혁의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남아있었다. 종단개혁 과정에서 멸빈된 스님들에 대한 관심도 그 중의 하나였다.

최근 호계원이 의현 스님을 공권정지 3년으로 감형한 것과 관련해 법보신문은 편집회의를 통해 기존에 가졌던 선입견을 내려놓고 접근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불교적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은 곧 1994년 당시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종단개혁을 진행하는 것이라 여겼다. 분노와 비난의 자리에 진실과 자비가 들어설 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적인 종단개혁도 가능하리라 판단했다. 그 결과 의현 전 총무원장이 처자식이 있다느니 문화재를 팔아 돈을 챙겼다느니 수십억원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느니 하는 소문들이 사실과 사뭇 다름도 밝혀낼 수 있었다. 개혁의 대상이었던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군처럼 간주되고 있었으며, 사실 여부를 떠나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개혁은 구습과 독재에 대한 저항이자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또한 개혁에 종결형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항상 진행형이어야 한다. 그 방법이 거센 함성이 될 수 있겠지만 종종 자비와 포용이 돼야 할 때도 있다. 개혁이 정당했다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들도 이제는 돌아봐야 한다. 1994년 개혁 당시 다소 징계가 과했던 사람도 있고, 그에 따라 비승비속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 권오영 기자
그동안 여러 종정 스님과 총무원장, 그리고 원로의원 스님들이 수차례 사면을 간곡히 요청했던 것도 자비와 포용을 강조한 당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정치적” “개혁정신 부정”이라고 몰아 부친다면 이는 매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제 분노와 비난을 넘어 가장 불교적 해법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봐야 할 때다. 그것이 곧 새로운 개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302호 / 2015년 7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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