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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오늘이 빛나고 있다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7.13 15:24
  • 수정 2015.10.20 18:11
  • 댓글 0

지금 이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라. 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이 낱낱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햇살은 반짝이며 빛나고 밤하늘의 별빛은 총총하게 떠 있다. 아침나절 두 뺨 위로 간질거리는 햇살이며, 저녁 산책 시간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마치 영혼까지 일깨워 주는 듯하다. 나무와 꽃과 산자락 풍경에 시선이 머물 때면 마치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그윽한 종소리가 울려오는 듯도 하다. 새들은 지저귀고 풀벌레는 노래한다. 부드러운 숨은 들어오고 나가며 생명을 연주한다. 매일 밤 건강한 두 발로 산책의 숲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스스로 더 높은 가치 정하고
망상분별을 하기에 고통 생겨
자신을 가두는 틀서 벗어나면
지금자리서 행복 찾을 수 있어

내가 억지로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이 산하의 대자연은 매일 매일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계를 어김없이 선물해 준다. 내일 아침 해가 뜨게 하기 위해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한 숨 들이쉬지 못하면 죽고 마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들숨으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를 어떻게든 사수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이렇게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이대로 놀랍게 주어져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지금 이대로 완벽하다. 신비라는 표현을 써도 좋다면, 이토록 신비로운 삶을 우리는 매 순간 느끼고 누리고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두 손으로 물건을 집어들 수 있는 것도 신비이고, 바람이 불어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몇 종류의 새소리가 끊이지 않고 귓가 언저리까지 찾아와 연주를 해 주고 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나 사귀어 두었던 들고양이는 하루에 몇 번씩이고 내 방 창문 앞에 서서 정겹게 ‘야옹 야옹’ 거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놀랍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 저절로 살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적 같지 않은가? 바람이 불어올 때면 나는 마치 부처님의 법신을 친견한 듯 감동 받곤 한다. 이 평범한 일상 이것을 놔두고 또 어디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에 물음표를 붙여 보자.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두 눈은 놀라운 기적이다. 사실 지금 우리 앞에 놀라운 기적이 매 순간 펼쳐지고 있지만, 그 기적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정도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너무 거만한 발상인 것은 아닐까?

물론 그렇게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 어떤 판단이나 비교 분별도 필요 없이, 지금 이대로 모든 것은 완전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천상세계와도 같은 눈부신 하루가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이토록 완전하게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다만, 이 주어진 것들을 진하게 느끼고, 감사해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렇게 주어진 이대로가 온전한 실상이며,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라고 한다. 그러니 사실은 깨달음으로 나아갈 것도 없다. 이미 깨달아 있기 때문이다.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이지만, 스스로 망상분별을 하고, 둘로 나누어 높고 낮음,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착각 속에서의 괴로움이 생겨난 것일 뿐이다.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더 높은 가치를 정해 놓은 뒤 ‘지금은 너무 부족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얼마만큼의 연봉은 받아야 해, 아들은 어느 대학 이상은 가야 해, 남편은 반드시 진급해야 해, 너는 나를 존중해 줘야 해, 아들은 부모 말을 따라야 해, 내 몸은 건강해야 해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궤범을 정해 놓고 스스로 거기에 얽매이기 시작한다. 스스로 남들과 비교, 경쟁, 질투하면서 ‘저렇게’, ‘저만큼’,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규정짓게 되면 스스로 정한 만큼 되지 않았을 때 괴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이처럼, 나답게 사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은 바로 그런 생각, 비교분별만 없다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스스로 자기 자신을 특정한 틀에 끼워 맞추려고 궤범을 만들지 말라. 그 틀만 깨고 나올 수 있다면, 그 스스로 만든 포승줄만 끊고 나올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이미 드러나 있는 삶의 완전성과 행복을 당장에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302호 / 2015년 7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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