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과학-하
기로에 선 과학-하
  •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 승인 2015.07.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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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놀라운 업적이지만 그 업적엔 자비가 없습니다”

▲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면 인간의 개발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을 것이다. 중국 칭하이성 시닝과 티베트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열차, 과연 필요했을까 의문이 든다.

"순전히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의 개발은 진실로 놀라운 업적입니다. 하지만 이 개발은 상상할 수 없는 살인과 파괴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파괴적’이라고 간주합니다. "

주의 집중과 감정의 통제를 위한 정신 수련과 관련해 특정 기법의 효과가 시간의 민감성을 갖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기법은 나이와 건강 그리고, 다른 여러 요소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변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가 요구됩니다. 불교와 신경과학처럼 뿌리가 서로 다른 두 갈래의 탐구적 전통이 학제간 대화를 위해 함께할 경우 그것은 특정 문화와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는 교류에서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문제들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명상 과학’에 대해 말할 때 그 표현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명상’과 같은 중요 용어가 여러 전통적 맥락에서는 함축적인 의미가 서로 다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일예로 전통적으로 ‘명상’이란 용어는 산스크리트어로는 ‘bhavana’, 티베트어로는 ‘gom’에 해당됩니다. 산스크리트 용어는 ‘기르다’라는 개념, 즉 특정한 습관 또는 존재 방식을 기른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반면 티베트 용어 ‘gom’은 ‘익숙해지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략히 말하면 불교의 전통적 맥락에서 ‘명상’은 특별히 선택된 어떤 대상, 사실, 주제, 습관, 관점 또는 존재 방식 등 그 무엇과 익숙해져서 합일되도록 하는 의도된 정신 활동을 지칭합니다.

대체로 명상수행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마음을 고요하게 함에, 다른 하나는 이해의 인지적 과정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각각 안정화 명상(stabilizing meditation, 止寂, samatha), 추론적 명상(discursive meditation, 觀, vipassana)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경우 명상은 여러가지 형태를 띨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무아적 속성에 대해 명상을 하는 경우처럼 어떤 것을 인지의 대상으로 취하는 형태가 있습니다. 또는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심어린 이타주의적 갈망(願)을 개발함으로써 자비심과 같은 특정 마음상태를 함양하는 형태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심상(心象)은 정신적 행복을 기르는데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용될 수 있는데, 그 심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인간의 잠재능력을 탐구하면서 명상은 형상화의 형태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 연구를 수행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명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 대상인 명상 수행의 복잡성이 과학적 연구의 정교성에 상응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불교적 사유 및 명상 수련에서 나타나는 실증적 측면을 이 명상 수행과 관련된 철학적, 형이상학적 가정들로부터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접근에 있어서 이론적 추정, 실험을 통한 경험적 관찰 그리고, 이에 대한 후속적 해석을 구분해내야 하듯이 마찬가지로 불교에 있어서도 이론적 가정, 경험으로 검증 가능한 특정 심리상태의 특질, 후속의 철학적 해석을 구분해 내는 것은 결정적 중요성을 갖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한 분야의 구조적 틀을 다른 분야에 강제로 적용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대화에 참여한 양 당사자는 실증적이고 관찰 가능한, 인간 정신에 대한 팩트(facts)라는 공통 영역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철학적 추정과 후속의 개념적 해석은 이 두 가지 탐구적 분야에서 서로 다르겠지만 경험적 팩트에 관한 한 이를 묘사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할지라도 팩트(facts)는 ‘팩트’로 남아야만 합니다. 의식(意識)의 궁극적 속성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든지, 비록 그것이 최종적으로 단순한 물리적 과정으로 환언될 지라도, 지각과 사유 그리고, 감정의 여러 측면에 대한 경험적 팩트에 대해서는 공유된 이해가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예방적 고려 사항과 함께 위의 두 가지 탐구적 분야의 긴밀한 협력은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내부의 주관적 경험’의 복잡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진실로 기여할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 작업의 혜택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비 보고에 따르면 ‘규칙적인 마음챙김 수행’ 또는 불교계에서 발달된 ‘자비심의 의도적 함양’ 등과 같은 마음수련의 효과는 측정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 상태와 연관해서 인간의 뇌는 식별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신경과학계의 최근 발견에서 뇌의 선천적 가소성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입증됐습니다. 자발적인 육체 운동 및 강화 환경과 같은 외부적인 자극에 노출된 결과 신경세포의 접합부인 ‘시냅스’는 연결되었고 새로운 신경세포가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명상 전통은 신경 가소성과 관련될 수 있는 정신 수련의 여러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이 분야의 과학연구 확대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불교 전통이 시사해왔듯이, 정신 수련이 뇌에서 식별 가능한 ‘시냅스’와 신경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이것은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함축성을 갖습니다. 그런 연구의 파급효과는 단순히 인간 심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는 것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교육 및 정신 건강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유사하게 만약 불교계에서 주장하듯이 자비심의 의도적 함양이 개인의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타인에 대해 더 크게 동정(同情)하게 되면 이는 사회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신경과학과 불교명상 전통의 공동연구는 윤리와 과학의 접점에 대한 지극히 중요한 질문에 대해 재조명하게 합니다. 윤리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개인들의 이해가 어떠하건 상관없이, 실제에 있어서 과학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중립과 가치 중립적인 입장에서 실증적 학문으로써 발달해 왔습니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경험적 세계와 자연에 내재된 법칙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제공하는 연구의 방식으로써 이해되어 왔습니다. 순전히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핵무기의 개발은 진실로 놀라운 업적입니다. 하지만 이 개발은 상상할 수 없는 살인과 파괴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파괴적’이라고 간주합니다.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윤리 도덕적인 평가입니다. 최근까지 인류의 도덕적인 사고는 인간의 지식 축적과 더불어 진전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윤리와 과학을 분리하는 접근방식은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20세기 말 신경과학 그리고, 특히 유전학에서 이룩된 근본적인 진보는 인류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인간 두뇌와 신체에 대한 세포 및 유전자 수준의 지식은, 그에 따르는 유전자 조작을 위해 제시된 기술적 가능성과 함께 더불어 엄청난 윤리적 도전을 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사고는 전적으로 지식과 기술력 습득의 급격한 진보를 따라가지 못해왔다는 사실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새로운 발견과 이의 응용이 가져오는 파급 영향은 매우 광범위 했고 그것들은 이제 인간 본성 그 자체 및 인류 종족의 보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책임은 단순히 과학 지식을 증진하고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며 이런 지식과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개개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관점을 수용하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다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과학 발달의 방향 설정에 인본주의적 윤리적 측면이 고려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기본적인 윤리 규범을 끌어 들여 종교적 윤리와 과학적 탐구의 결합을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명명한 ‘세속적 윤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 관용, 보살핌, 타인의 배려, 지식과 기술의 책임 있는 사용 등과 같은 주요 윤리규범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종교 신앙자와 비종교인 사이의 벽을 뛰어넘고 서로 다른 종교의 추종자 사이의 벽을 넘어 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학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활동을 ‘손바닥의 개별 손가락’으로 상상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각각의 손가락이 ‘근본적인 인간의 동정심과 이타주의의 손바닥’과 연결된다면 그것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경제, 전자매체, 국제관광 그리고, 환경문제 등 그 모두는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가를 매일매일 일깨워 줍니다. 이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에서 과학계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건 간에 오늘날 과학자들은 사회 내에서 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저의 분야인 철학과 종교보다 훨씬 더 그렇습니다. 저는 과학자들에게 인간 존재로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근본적인 윤리 규범적 요구를 자신들의 연구 활동에 도입하도록 호소합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302호 / 2015년 7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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