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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상징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기자명 고용석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보면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를 발견한다. 배가 고파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은 이 이미지는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신이나 부처를 예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도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아야 하는 엄정한 현실을 의식하는 인간의 마음이 크게 불편하고 두려웠나 보다. 현대의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이 모든 신화의 기본구조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고민이 집단적으로 사라져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첫째, 단일경작은 자연과 종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오늘날 3000개의 종 가운데 단지  쌀, 밀, 콩, 옥수수 4종만이 주작물이다. 대량생산된 곡물은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양식을 확장한다. 곡물과 마찬가지로 양식 물고기 역시 사람보다는 가축의 먹이로 대부분 투입된다. 생산된 곡물과 고기는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가공식품산업을 확장한다. 식품구조의 악순환은 비만을 포함, 환경파괴, 경제왜곡과 자원고갈 같은 재앙을 가져왔다. 공장식 사육, 단일경작, 유전자조작, 정크푸드 등 생명이 조작되고 상품화되는 현실과 비교할 때 신화 속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순수하고 우주적이다. 둘째, 불교를 비롯해 영적 전통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음식의 경건함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의식적으로 먹으며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을 일치시키도록 해야 한다. 매일의 식사가 생명을 축소하고 상품화하는 훈련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햄이나 치즈를 먹으면서 ‘이 돼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소는 어땠을까?’ 묻는다면 과연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일까. 그리고 음식은 내면의 부처께 드리는 것이지 내가 먹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깨어나는 약으로 삼으라는 불교의 오관게와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음식은 우주가 주는 선물이고 음식을 먹는 것은 우주적 생명에 접속하는 일종의 명상행위이다.

셋째, 음식공양을 통해 업장을 나누는 백중의 유래에서 보듯 음식은 모든 것을 연결한다. 실타래처럼 세상이 복잡해도 음식을 따라가면 전체적 윤곽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마음과 치유의 근원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음식의 잠재력이다. 음식은 공동체와 인격을 디자인하는 출발점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문명이 이 잠재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후변화 환경파괴로 사라져갔고 현대문명도 그 기로에 서있다. 어느 문명도 이 음식의 잠재력을 건설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요동과 격변의 와중에서 얼마나 방심 않고 최소한 준비되어야 하는가를 시사한다. 우발성은 피할 수 없고 밤이 되어야 올빼미가 울듯 원인분석은 항상 사태를 겪고 나서야 가능한 법이다.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잘못된 상황판단, 직업윤리의 상실, 관료주의 공공성 부족 등을 애기한다. 물론 정파적 비난도 난무하다. 복잡계 물리학은 사태의 특정 원인 보다는 사태를 발생케 하는 배경 즉, 사회 뒤로 숨어있는 조직화와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패턴은 집단적 성질을 띠고 임계상태에서는 모래알 하나조차 큰 변화를 촉발한다. 터질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임금이 가뭄이나 재난에 자신의 부덕을 성찰하듯 우리 모두 스스로의 태도, 행동, 생각을 새롭게 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현재 인류는 새로운 차원의 패턴과 인식을 모색해가고 있다.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 된다는 인식이다.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 특히 밥상에서의 생명존중은 이러한 인식을 심화하고 확대하며 널리 전파하는 강력한 진원지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신화와 상징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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