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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거사 축구동호회 ‘축구사랑’

“11명 마음 하나로 모이는 순간 환희가 피어납니다.”

▲ 축구마니아 스님들과 거사들이 뭉친 ‘축구사랑’은 매니저와 의료담당까지 갖춘 어엿한 불교 축구동호회다. 승속을 떠나 필드에서 뛰는 선수 11명과 벤치의 마음이 모아질 때 비로소 팀이된다.

일요일 오후 3시. 내리쬐던 햇살이 살짝 고비를 넘겼다. 적당히 뜨겁다는 표현이 좋으리라. 경남 양산의 한 공원.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은 주민들의 풍경이 퍽 자연스럽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애매하고 약속을 잡기도 어중간한 시간이다. 그냥저냥 해가 기울고 저녁이 되어 공양하고 나면 하루가 훌쩍 끝나버릴 것만 같다.

미타선원 하림 스님 주도로 결성
2014년 3월 출범…회원 30여명

너른 잔디마당 있는 홍법사에서
축구마니아 스님·거사들 한 자리
스님 고려해 일요일 오후에 연습
타 축구동호회원 포교에도 도움

▲ 포지션 배치와 작전구상은 경기 전 필수.

이 시각, 공원의 축구장에 스님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화에 정강이 보호대까지 탄탄하게 무장했다. 등에는 법명과 번호까지 새겨져 있다. 속속 같은 유니폼을 입은 거사들도 나타났다. 어깨 딱 벌어진 20대 청년부터 적당히 머리 희끗한 중년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들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쉴 틈도 없이 포지션을 짜기 시작했다. 모든 룰은 일반 축구경기와 똑같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합장 인사다. 서로 부딪히는 상황에서도, 상대방 선수에게 양해를 구할 때도,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합장하는 축구팀. 바로 ‘축구사랑’이다.

▲ 합장인사는 기본 매너가 됐다.

“부산 미타선원 주지 하림 스님이 축구광이라는 사실은 조계종에서 다 아는 사실이지요. 저도 평소 축구를 좋아해서 친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산에 포교당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함께 축구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아마 여기 모인 스님들 대부분이 그렇게 인연이 되었을 거여요. 처음에는 홍법사 거사님들과 함께 한 팀을 만들어서 축구사랑이라고 이름을 짓고 소박하게 발족을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회원 수가 30명을 넘었어요.”

부산 기장 감인선원 주지 보연 스님이 자랑스럽게 축구사랑을 소개했다. 스님에 따르면 축구사랑은 스님과 재가자 모두 환영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은 ‘불자’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 축구사랑 회원들의 몸놀림을 보니 저마다 예사롭지 않다. 거사들 중에는 낯익은 이들도 있다. 류상영, 박상언, 전진호 거사 등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 회장단 출신이다. 이들은 축구사랑 출범 소식에 일찌감치 합류했단다. 알고 보니 축구마니아다.

류 거사는 “축구사랑 인연으로 불교에 첫 발을 디딘 초심자부터 각 사찰에서 중요 소임을 맡고 있는 베테랑 불자까지 여기 모인 거사들의 불교 인연은 다양하지만 신심을 갖고 신행생활을 이어온 분들이라는 사실은 한 결 같다. 무엇보다 스님들도 도심포교에 적극적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 일상과 수행에도 소홀함이 없는 모임”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축구사랑의 축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처음에는 부끄러웠어요. 공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다보니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매월 두 차례씩 꾸준히 모임을 가진 덕분에 이제는 같은 연령대의 축구동호회와 맞붙어도 팽팽한 경기가 될 만큼 실력이 향상됐어요. 팀워크 만큼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최고입니다.”

동화사승가대학 졸업과 동시에 축구와는 멀어졌다는 부산 연화사 주지 경소 스님은 “공차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라며 축구사랑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스님은 “공을 차고 나면 개운하다. 몸도 훨씬 건강해졌다. 앞으로 스님 회원도 더 많아져서 한 팀이 구성되길 바란다. 서로 좋은 정보도 교류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팀이고 싶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부산 능가사 주지 과진 스님은 “포교에도 큰 힘이 된다”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웠다. 스님은 “축구사랑은 불자와 스님들로 구성되지만 함께 경기하는 대부분의 축구동호회 회원들은 불자가 아닌 분들이 많다”며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를 하며 상대팀의 선수들이 스님들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스님이라는 거리감을 털어버리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정을 쌓은 덕분”이라고 밝혔다.

마치 스님의 말을 멀리서 듣고 있었다는 듯 상대팀 선수들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스님들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자연스럽게 합장 인사를 따라하며 허리를 깍듯이 숙이는 그들의 표정이 밝고 편안해 보였다.

▲ 팀을 결성하는데 애를 쓴 하림 스님.

무엇보다 축구사랑의 출범과 운영에는 부산 미타선원 주지 하림 스님의 공이 컸다. 하림 스님은 불국정사 주지 범천 스님, 원오사 주지 정관 스님, 감인선원 주지 보연 스님 등 자칭 ‘축구하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스님’들을 찾아내 불교 축구팀 결성을 무려 3년에 걸쳐 제안했다. 너른 잔디마당을 가진 홍법사는 축구경기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 한 달에 2번 일요일 오후에 연습을 한다.

홍법사 거사들의 호응을 더해 지난해 3월 홍법사에서 정식으로 축구사랑을 출범했다. 아침 시간을 바삐 보내는 스님들의 일과를 고려해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 오후에 정기연습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축구동호회가 아침 시간에 모임을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기가 끝난 뒤 ‘곡차’로 이어지는 회식도 전혀 없다. 대신 모일 때마다 해가 기울어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습한다. 다들 지치고 다리가 풀려서 이제 그만하자고 누군가 외치기 전에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축구를 수행으로 본다면 삼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쉬는 시간마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스님과 불자들은 “다음 연습에도 꼭 나오자”며 서로를 독려했다. 출범 초기부터 아마추어 축구팀 경력이 있는 미타선원 신도 김정수 거사를 코치로 영입한 데 이어 “초청하는 입장에서 실력은 기본이어야 한다”며 최근에는 지역 축구동호회에서 자주 만남을 가졌던 하민철 거사를 감독으로 섭외했다. 물론 모두 불자다. 여기에 미타선원 홍순하 보살은 팀 매니저를, 감인선원 김종순 보살은 의료담당을 맡아 축구사랑의 보이지 않는 손발이 되어온 덕분에 나날이 회원들의 모임 참여도 역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이 같은 축구사랑의 열정 덕분에 지난 3월29일에는 부산불교연합회장배 제1회 친선축구대회도 열렸다. 사회복지법인 불국토, 부산 삼광사,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가 팀으로 출전해 열띤 경기를 펼쳤다. 올 가을에는 금정총림 범어사배 전국 불교 축구대회도 추진한다. 서울을 비롯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불교 축구단을 초청해 제법 규모 있는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란다. 축구사랑이 없다면 애초부터 생각지도 못했을 불사다.

“축구하면 빠질 수 없는 승가대학 스님들은 물론 전국 곳곳의 불교 축구단을 수소문하고 있다. 올 가을 꼭 부산의 잔디구장에서 함께 만나길 바란다”는 하림 스님에게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을 물었다.

“축구는 여러 사람이 하는 운동입니다. 운동장에서 11명의 실력은 다 다르지만 마음을 모으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실력이 있는 팀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축구의 묘미입니다. 축구사랑을 통해 나도 건강해지고 주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운동의 즐거움과 화합의 기쁨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 연습이 끝나면 둘러앉아 서로를 격려한다.

벌써 해가 저만치 기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경기는 골든골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어디선가 불어온 청량한 바람 한 자락이 축구사랑의 땀방울을 맑게 식혀 주고 있었다.

양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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