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15. 자비의 포용(1)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7.21 16:20
  • 수정 2016.01.05 16:08
  • 댓글 0

밥 먹고 물 마실 때에도 자비심 갖고 중생 떠올려야

 
집을 지을 때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야 그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가 튼튼할수록 더욱 견고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높은 경지,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면 반드시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 튼튼해야 높은 집 짓듯
깨달음 성취에도 기초 중요
수행의 기초는 견고한 발심

‘무상’은 인생의 짧음 의미
머리에 불 붙은 듯 매진해야

천당은 날아 가는 곳 아닌
사람 정신 세계의 창조물
고통·질병의 근본도 정신

우리 수행자 중에는 십여 년 수행한 분도 있고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매일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수행을 계속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수행에 정진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도우며 법력과 능력을 사용해야만 수행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부족하면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고 수행에 정진해야 계속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림권법을 배우는 사람도 기본동작을 익힌 사람은 무술을 못하는 것과 같아 다른 사람을 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섣불리 대결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왜 같은 초식인데 무예 고수들은 강한 에너지가 있을까요? 수련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열심히 연마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심으로 발원하였겠지요.

대부분 사람은 스승이 옆에 없을 때 열심히 수행할까요? 보통은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위선적으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몇 번 수행했는지 물으면 10년 동안 한 번 했다고 대답할 거잖아요. 안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절 화나게 하려고 작정한 거지요?

 
진정으로 발심 수행해야 합니다. 스승이 눈앞에 없어도 곁에 있는 것처럼 급박한 마음으로 다잡아 수행해야 합니다. 어떤 대사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치를 알았으면 수행은 머리카락에 붙은 불을 끄듯이 급박하게 서둘러 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인생은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고정된 형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20세든 50세든 내년에도 이 세상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구든 예상할 수 없습니다.

방금 어떤 대사님의 말을 빌려 이야기했지만, 수행이든 무술이든 특히 깨달음을 얻는 불법은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서둘러야 합니다. 이 말의 출처는 ‘인생무상태人生無常態’입니다. 이 ‘태’는 내가 추가한 것인데 불교에서는 보통 ‘인생무상’이라고 합니다. ‘무상’은 내일 바로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인생은 짧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덧 저의 나이도 50세입니다. 여전히 30대인 것 같은데 벌써 50세입니다. 지구의 시간이 어릴 적 집에 걸려 있던 벽시계처럼 잘못되었나 봅니다. 분명히 3시인데 시계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듯이 항상 빨리 돌아갑니다. 인생은 무상하고 짧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처럼 탄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60대가 되었습니까? 일도 마음껏 하지 못했는데 벌써 70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퇴직도 3번이나 했습니다.

어릴 때는 시간도 안 가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25세가 지나면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자신은 점점 늙습니다. 이렇게 시간과 나이를 아쉬워하다가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생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늘 병마에 시달리고 하찮은 일에 매여 분주하게 살게 됩니다. 집 문제로 고민하고, 집을 살 능력이 없거나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노심초사하다 결국 죽을 때까지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떤 시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고부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여 서로 영원히 싸워 이길 수 없는 원수로 됩니다. 인생에는 죽을 때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때가 늘 생깁니다. 심지어 많은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자신도 많이 늙었고 자식도 40~50대지만,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외출하면 옷을 챙겼는지, 먹을 것은 챙겼는지, 빵을 샀는지, 떡 두 개 구워줄게… 하면서 죽을 나이가 되어도 늘 자식 걱정만 합니다.

아주 작은 일도 7~8세 아이한테 당부하듯이 50~60세를 바라보는 자녀에게 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지나친 걱정은 고통입니다. 행복이 작으면 고통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에서 넘어설 수 없는 고통이 많고, 자그마한 일로 삶이 발칵 뒤집혀 복잡하고 번잡한 일들이 매일 생겨납니다.
나는 왜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까요? 내 수업을 자주 듣는 사람은 내가 늘 신체건강, 삶의 번뇌와 질병, 정신적 상태나 경지를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내가 천만년 동안 연구해본 결과 조상이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병 외의 번뇌나 질병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만들어냈습니다.

나는 마음이 머리를 가리키는지 심장을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서양의학에서는 뇌가 생각을 주도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심장은 생각이 있을까요? 심장이 보조역할을 하고 머리가 생각을 주도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 즉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앓는 암이나 종양도 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화내는 것은 정서입니다. 정서가 액체나 기체로 변해 배출되지 못하고 어떤 장기에 장기간 누적되면 결국 종양이 됩니다.

질병도 대부분 이렇게 생깁니다. 유전된 것 이외의 질병은 모두 자신의 정신적인 것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내고 생겨납니다. 모두 이 이치를 알기 바랍니다.

더 높은 경지의 세계관과 사고방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대해야 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에는 날아서 천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천당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가사’ 책에서 말한 인간세상의 천당은 사람의 정신세계가 창조한 것이며, 인간세상의 지옥 또한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만들어 낼까요? 여러분, 다음의 법칙을 기억해두세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서라면 이미 지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 그럼 함께 되받는 말을 만들어 볼까요? 어떻게 말하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대중을 위한 것이 바로 천당입니다. 듣기에 따라 우리의 삶과 모순될 수도 있습니다. 대중을 위한답시고 땀 흘려 번 돈을 모두에게 나누어주면 가족은 굶고 있지 않을까? 자신도 굶어 죽을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도 당장 다음 달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데 매달 모든 월급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도 굶어 죽을 겁니다. 그럼 무슨 말일까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질병의 근본 원인은 우리의 정신세계입니다. 모든 생각은 마음에서 비롯되며, 모든 일도 마음이 결정합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자신의 마음 즉 정신세계에서 비롯됩니다. 현대 사회에는 질병, 정신질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것도 정서와 주거환경, 종합적인 스트레스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심과 개인의 손익에 대한 집착도 좋지 않은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움을 통해 이러한 경지를 넘어서야 합니다.

어릴 적 불법 공부를 할 때 내 스승님은 밥을 먹기 전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이 생기길 축원하고 먹으라 했습니다. 수행단계가 높아지자 형태를 갖추거나 갖추지 못한 모든 중생이 배부르기를 축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회를 할 때는 항상 먼저 음식을 보시합니다. 나뭇가지에 물을 묻혀 뿌리거나 손으로 물을 뿌리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를 먼지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중생에게 물을 주어 갈증을 없애 주고, 굶주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부처님께 그들을 도와 모든 악업을 없애고, 천국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영혼이 정처 없이 떠돌지 않고 돼지든 양이든 먼저 환생해야 합니다. 누구나 어둠 속에서는 공포를 느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귀신을 만나면 두려워하지만 사실 귀신은 우리를 더 무서워합니다. 가끔 사람 몸에 붙어 있는 귀신이 있는데 그건 용기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을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자비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중생을 떠올리고 그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마음속의 생각은 행위일까요? 지금 필요한 것은 철학적 개념의 승화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행위일까요? 마음의 움직임도 행위입니다. 그래서 심동(心動. 마음의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심리적인 행위입니다. 알다시피 언어행위를 포함한 90%의 외적인 행위는 우리의 정신체계를 통해 명령을 사지와 언어행위에 전달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정신적인 의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마음이 움직인 것이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면 좋아하거나 사랑할 때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를 싫어하면 마찬가지로 배척이나 외면하기, 인상 쓰기 등 싫어할 때 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우리는 경쾌함과 즐거움, 기쁨을 느끼고 기분이 좋을 때는 일을 많이 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고민이 많을 때는 일을 조금만 해도 피곤합니다. 심지어 일하기 싫어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 피곤하지 않고 즐겁습니다. 세계 각지의 법당에서 일하는 보리선수 수행자들을 보면 발심하여 월급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돈을 내면서 일합니다. 자신이 봉사에 사용한 모든 비용을 법당에 청구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기부하고, 노동력을 기부하며, 법당을 기부하고, 불상을 조성하며, 책을 인쇄하는 등 많은 일을 합니다. 자신의 재력, 물력, 능력을 봉헌하면서도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반면에 만약 누군가에 의해 강압적으로 감시받으며 일을 한다면 똑같은 일을 해도 10배의 피곤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하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은 것만으로도 피곤함을 느낍니다. 특히 이혼하거나 실연당하거나 가족을 잃으면 일을 하지 않아도 극심한 피로를 느낍니다. 슬픔 이외에 종합적인 분위기 자체만으로 피곤합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심리는 인체의 모든 외적인 행위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의 발생은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통제합니다.

2012년 4월 28일 부산 / 번역 : 정금주
제공 : 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