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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석보원(釋普圓)

기자명 성재헌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툼과 고통, 번민과 혼란의 근원은 탐욕이다. 부처님을 비롯한 수많은 성자들께서 예외 없이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에 진심으로 동의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그래, 바로 저거야. 저것을 가지면 넌 행복할거야’라고 늘 속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사람을, 재산을, 권력을,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치다 생을 마감하는 것이 대개의 인간사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오욕의 대상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갈증을 멈추고, 나의 것이라며 움켜쥐었던 손아귀에서 힘을 빼기 위해 노력한다. 풀끝에 맺힌 이슬처럼, 산마루에 이는 뭉게구름처럼, 잠시 머물다 가뭇없이 사라질 것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음식은 물론 법까지
원하면 보시한 스님
시험코자 손 원하자
망설임 없이 잘라줘

탐욕을 없애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보시이다.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보살들은 성자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나아가 축생이나 심지어는 산천초목의 이익을 위해 귀한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것마저 주저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탐욕을 없애야 번민과 고통이 사라지고 평온한 행복이 비로소 찾아든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목숨마저 기꺼이 내어놓는 길, 갈퀴진 손아귀가 익숙한 범부들에겐 실로 쉽지 않은 길이다.

북주(北周) 시절에 보원(普圓)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그는 오랜 세월 ‘화엄경’을 독송해 그 방대한 경전 전체를 외웠지만 남들에게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화엄경’을 통해 온 우주가 하나의 법계임을 깊이 깨달은 보원은 정처 없이 세상을 편력하며 보현보살행을 실천했다. 구걸한 음식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헐벗은 이를 만나면 입었던 옷까지 벗어주며, 불법에 대해 묻는 이가 있으면 밤새워 깨우쳐주면서 싫증내는 법이 없었다.

그의 자비행에 감동한 사람들이 앞 다투어 머물 처소를 제공했지만 보원은 늘 외진 숲이나 묘지에서 살았다. 귀신이 출몰하는 곳이라며 사람들이 한사코 말리는 곳에서도 보원은 작은 침상에 앉아 며칠씩 깊은 선정에 잠기고는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은 곧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발길이 닿는 마을마다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성인으로 받들며 환영하고 존경하고 공양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꼴사납게 보고 뒤돌아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성인은 무슨 놈의 성인.”

결국 흉악한 한 사내가 일을 내고 말았다. 어느 날 보원이 묘지에서 선정에 잠겨있을 때였다. 한밤중에 부엉이 울음이 갑자기 멈추더니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험상궂은 그 사내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선정에서 깨어난 보원은 아무 말 없이 사내를 쳐다보았다. 또렷한 그 눈길엔 한 점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보원을 비아냥거리며 사내가 말했다.

“스님, 겁나지 않습니까?”
“두려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인연 따라 모였다가 인연 따라 흩어질 뿐, 나라고 할 만한 것도 내 것이라 할 만한 것도 본래 없습니다.”
사내가 칼을 뽑아 보원에게 던졌다.

“그럼, 스님 목을 베어 저에게 주실 수도 있겠군요.”
“이 몸은 뼈다귀로 외곽을 쌓고 피와 살로 속을 채운 성과 같습니다. 뭐 대단한 것이라고 아까워하겠습니까?”

보원이 곧장 칼로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머뭇거림 없는 보원의 행동에 도리어 사내가 덜컹 겁이 났다.

“목은 됐고, 눈이나 하나 뽑아주십시오.”

보원이 자신의 눈을 찌르려 하자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눈은 됐고, 손이나 하나 잘라주십시오.”

보원은 곧장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팔뚝을 집어 사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놀란 사내는 그 팔을 땅에 던져버리고 도망쳤다. 며칠 후 보원은 결국 사망했고, 마을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수습해 탑을 세웠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04호 / 2015년 7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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