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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소림원 ‘리더’ 정혜영 보살

회장·회원 직함 없어도 ‘도반의 힘’으로 전국을 순례하다

▲ 지도법사도, 재적사찰도 없는 3년차 신생 모임 소림원을 꾸려가는 정혜영 보살은 회장도 아니고 정회원도 없지만 300여 명의 도반들을 이끄는 진정한 리더다.

지난 5월9~10일 울산 태화강 둔치에서 열린 공업도시 울산의 연등축제 규모는 상당했다. 수십 사찰이 각각 주제가 있는 체험의 장을 열었고 불자들이 직접 만든 먹거리의 풍성함에 출출할 틈도 없었다. 팔도 특산품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장엄등은 저마다 화려함을 겨루듯 위풍당당했다. 그 풍경을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발길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찰 소속 아니고 사무실도 없어
누구나 동참해 순례·기도·봉사
‘회장’ 명함 대신 ‘리더’ 자칭

‘문자’ 수 백통으로 순례 공지
회계 4명 뿐 ‘자율 참가’ 원칙
계획에서 준비까지 직접 챙겨

해인사 대중공양 동참 첫 인연
초기엔 모임 이름도 없이 시작
‘울산 선방 공양 불자들’로 불려

“좋아서 하는 일…도반이 원동력”
지난해부터는 장학금 200만원도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부스가 있었다. ‘소림원’이라는 이름이 적힌 이곳에서는 옷가지를 비롯해 각양각색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아나바다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평균 가격이 1000원일 정도로 저렴했다. 빛깔 고운 합장주를 고르며 한 불자에게 물었다. “소림원이 어디에 있는 절인가요?” 판매를 하는 이들 사이에서 미소가 오고갔다. 사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신행단체? 정회원은 없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주로 하는 일도 선방 공양, 기도, 봉사, 성지순례 등 끝이 없었다. 질문을 거듭하다가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명찰에 눈길이 갔다. 친절히 답을 주던 그가 번호의 주인공이었다. 소림원 리더 정혜영(보리화, 49) 보살이다.

▲ 법흥사 순례 기도에서 목탁 집전을 맡은 정 보살.

울산 연등축제가 끝난 지 세 달 만에 정 보살을 다시 만났다. 솔직하게 소림원은 지도법사도, 재적사찰도 없는 3년차 신생 모임이라고 했다. 회장이라는 표현도 불편해 ‘리더’라고 칭했다. 하지만 단 이틀 아나바다 장터에서 1000원짜리 물건을 팔고 팔아 네팔 지진피해 돕기 기금 250만 원을 울산봉축위원회에 전달할 만큼 추진력 있는 모임, 울산 봉축위가 내걸은 시내 연등 가운데 700여 개의 등이 소림원 이름으로 달릴 정도로 넓은 인맥을 가진 단체임은 분명했다. 무엇보다 지난 세 달 사이 해인사, 법흥사, 보리암 등 국내 수십 사찰을 참배했고 서유럽 여행도 한 차례 다녀왔다. 단순하게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 계획을 짜고 도반들을 모으고 일정 공지는 물론 목탁 집전, 후기 작성까지 모두 스스로 해내는 재주꾼이 바로 그였다.
“모든 건 제가 즐겁기 때문이지요. 지금 모집 중인 기도회만도 일곱 가지가 넘습니다. 9월12일에는 법흥사 3년 기도를 회향하는 템플스테이가 있을 예정이고 하반기에 떠날 미얀마 성지순례 참가자도 모집하거든요. 여기에 부산 문수선원 무비 스님 강의, 합천 해인사 49일 천도법회처럼 안내 없이 같은 시간, 장소에서 출발하는 일정까지 포함하면 10가지가 넘습니다.”

▲ 용문사 템플스테이 동참 도반들과의 기념사진.

이 많은 순례는 오직 정 보살이 300여 명에게 문자메시지로 안내하고 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각의 순례 회계를 맡고 있는 4명의 총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문자메시지를 받는 300여 명은 별도의 회비가 없기 때문에 소림원 회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 보살이 모집하는 모든 순례는 그가 진행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율 참가라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봉사를, 어떤 이는 공양을 올리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단다. 그래서일까. 그는 적자가 나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자신감과 원력의 원천에 울산불교여성회가 있었다.

“20대 중반에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정신없이 20대를 보냈어요. 누구나 그렇듯 그저 처음에는 제 아이들에게 맑은 심성을 키워주고 싶은 단순한 부모의 마음으로 1998년 울산 정토사에서 연꽃어린이법회 어머니 모임 회장을 하게 됐지요. 이 인연으로 울산불교여성회를 알게 됐고 문수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알면 알수록 자녀들이 아니라 제 자신이 주부의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불자의 삶으로 바뀌게 된 것이지요.”

무엇보다 당시 그는 울산불교여성회 회원들의 해인사 정기 법회 동참 진행을 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해인사에서 49일 천도법회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개인적으로 이 법회에 참여하겠다는 발원을 가진 것이 소림원의 뿌리가 됐다. “혼자였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도반들과 한 약속이기에 꼭 지키고 싶었다”고 밝힌 그는 함께하는 도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울산에서 출발해 사찰을 향하는 몇 시간 동안 항상 기도를 했다. 다녀오면 장부를 점검하고 후기를 썼다. 항상 5분 뒤를 생각하는 버릇도 이 때부터 생겼다. 정 보살의 열정 덕분에 도반들도 신심의 싹을 틔웠다. 처음에는 9인승 자가용 한 대를 채우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버스 한 대로 늘어났고 요즘은 버스 두 대가 움직이게 됐다. 천도법회 뿐만 아니라 해인사의 참법 기도, 법화경 법회, 팔만대장경강설법회 그리고 최근 홍제암 철야정진법회로 기도회의 인연이 이어졌다. 각 법회를 회향할 때마다 해인사 선방에 대중공양을 했다. 처음에는 모임의 명칭도 없이 “울산에서 해인사 선방 공양 가는 불자들”로 불리게 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기도를 거듭하면서 출가에 대한 고민이 찾아왔다. 2005년의 일이었다. 두 아이의 부모, 남편의 아내인 그는 “당시 답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오직 수행에만 집중”했다. 하루 사분 정근, 수행이라는 수행은 다 해봤다. 매일 다라니 600독을 했고 법화경 9편을 사경했다. 그렇게 그는 1년간의 기도를 마치면서야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고 세상 어떤 일도 자신만만해진 확신은 오히려 장애가 됐다. “이상하게 법당에서 삼배도 하기 싫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밝힌 그는 겨우겨우 법당으로 들어가 억지로 몸을 엎드리다시피 할 때도 많았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때 몸으로 느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불교 공부가 다시 하고 싶어졌고 법당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실 되게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 해인사 선방 공양에 동참한 도반들.

울산불교여성회 소임을 회향한 것은 3년 전이다. 여성회를 떠난 아픔을 쓴 약으로 삼고 새로운 출발과 함께 모임의 이름도 받았다. 전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이 해인사 선방의 옛 명칭을 따서 ‘소림원(少林院)’ 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덕분이었다. “이름을 받던 날 지금의 해인사 선방인 ‘심사굴(深蛇窟)’ 앞에서 도반들과 함께 사진 찍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는 그는 2013년 소림원의 출발에 앞서 새로운 기도를 시작했다. 평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적멸보궁 법흥사를 찾아가는 기도회였다.

“3년 동안 매월 둘째 주 토요일마다 법흥사에서 법화경 기도를 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항상 사찰이나 명소를 들렸어요. 어느덧 오는 9월이면 3년 수행을 회향합니다. 1년 회향 때마다 템플스테이를 했는데 이번에는 법흥사에서 1박2일을 지내며 삼보일배를 할 예정입니다.”

▲ 울산 연등축제에 소림원이 마련한 ‘아나바다장터’.

회향과 함께 새로운 기도처도 정했다. 남해 보리암이다. 보리암에는 일찌감치 요청서를 보내 3년 기도를 확정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소림원이 사찰 기도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울산대, 울산과학대에 매년 2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화쟁코리아의 전국 도보순례 당시 울산구간 순례에 동참하기도 했다. 울산 연등축제 때 네팔 지진피해 돕기를 위해 아나바다 장터를 연 것도 자발적인 기획이었다. 소림원의 활동은 이처럼 제한이 없고 한번 결정된 사항은 즉각적으로 진행된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정 보살은 그 답을 ‘도반’에게서 찾았다.

“‘어디를 도와주면 좋겠다’, ‘어느 마을에 절이 있더라’, ‘이 법회에 가보고 싶다’ 등 항상 도반들의 제안에 귀를 기울입니다. 제 카카오스토리를 소림원의 기록 공간으로 활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도반들 누구나 볼 수 있고 가장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잠들기 5분 전 항상 자비관을 통해 감사와 참회의 기도를 한다는 정 보살. 그가 바라는 소림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바른 길로 나아가길 서원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전체를 위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해요. 혼자라도 나서야 할 길인데 함께하는 도반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금처럼 변함없이 단 한 사람의 도반을 위해서라도 진실한 순례의 길을 나서고 싶습니다.”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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