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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17. 자비의 포용(3)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8.18 15:50
  • 수정 2016.01.05 16:08
  • 댓글 0

자신만의 장점 찾아내면 아름다운 인생, 멋진 삶

 
정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정신적으로 느끼는 희로애락이 참이든 거짓이든, 옳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결국은 번뇌와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심각한 번뇌는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데 아주 빨리 암에 걸리고 발견된 후 100일 이내에 세상 뜬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본 가장 빠른 예는 간암 말기환자인데 확진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심각한 심장질환, 당뇨병 합병증도 마찬가지인데 당뇨병은 그나마 진행이 비교적 느린 편입니다. 우리의 정서가 유발하는 건강문제, 정신문제는 아주 중요합니다.

말썽꾸러기로 보이는 아이에게
어떤 미래 펼쳐질까 안다면
부모는 노심초사할 필요 없어

빠르면 빠른대로 영리하고
느리면 느린대로 지혜로운 법

인생을 더 멀리 내다 보며 
넓은 마음으로 주변 대해야

공부도 못하고 말도 잘 안 듣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개구쟁이여서 선생님에게 매일 야단맞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선생님에게 자주 불려 다녔고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10년간 늘 신경 썼습니다.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대학도 가지 못하고 일자리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할 것 같아 항상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부정적인 스트레스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부모는 아이 때문에 노심초사하다가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면역력이 약한 것도 이유이지만, 걱정과 스트레스가 간 질환이나 심장질환을 유발하여 일찍 세상을 떴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억세게 살아가지만,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서 실제 나이보다 20살은 늙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20년 후 아이는 그 학교에서 배출한 졸업생 중에서 전례 없는, 세계 일류 과학자, 발명가라는 걸출한 인재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유명인이 되자 어머니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전문가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아들이 어렸을 때 말썽꾸러기였던 이유가 특별히 총명했기 때문이고, 한번 들으면 알기 때문에 숙제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내 아들은 어렸을 적에 말도 잘 안 들었습니다.”고 하자 전문가들은 아이의 지혜가 뛰어나 말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시험성적은 항상 낙제점수를 받았다고 하자 그의 답이 이미 선생님의 답을 넘어섰는데 시험에 합격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결과적으로 부모가 틀렸다는 것과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속수무책 골칫덩어리 썩은 돌인 줄 알았던 아들이 72가지 변신술을 하는 대단한 손오공이라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으니, ‘어쩌다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이 멋진 아들을 낳았을까.’ 어머니는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런 아들인줄도 모르고 속을 썩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버지는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 일을 분석해 봅시다. 부모님이 만약 아이가 지금은 비록 말썽꾸러기이고, 시험점수는 늘 낙제이지만 앞으로 반드시 크게 출세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이 때문에 노심초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근심걱정이 없었다면 60대의 아버지는 건강하고 멋지게 20대 같은 삶을 살고 자녀와 나란히 섰을 때 형제 같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정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인생에 대한 견해
캐나다에 이름을 물으면 “나, 나, 나, 나는 이(李)가입니다”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아이였는데 한 특수학교 교장은 아이가 굉장히 총명하다고 했습니다. “뛰어나게 총명한 아이가 말을 더듬나요?”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에게 질문할 때 떠오르는 답이 100개는 되기 때문에 그중에 어떤 답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더듬는 거라고 하더군요. 이러한 이론도 있으니 말을 더듬는 사람은 머리가 아주 좋아 나중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니 절대 놀리지 마십시오. 말을 더듬는 사람 중에는 이름을 물으면 “나, 나, 나, 아빠, 내 이름이 뭐야?”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머리가 좋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말하는 속도가 늦은 것뿐입니다.

한 번은 수행자들과 농담하며 한바탕 웃고 난 후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한 수행자가 큰소리로 웃더군요. 이미 2~3분이 지났는데 왜 웃느냐고 물었더니, 방금 그 우스개가 너무 재미있다고 합니다. 방금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는 왜 웃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그때는 이해를 못했다더군요. 어쩔 수 없습니다. 동물세계를 보면 쫓는 개나 도망가는 토끼나 둘 다 속도가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거북이는 아주 느립니다. 그래도 거북이는 아주 오래 삽니다. 남이야 뛰든지 말든지 느릿느릿 자기만의 속셈이 있습니다. 빠르면 빠른 만큼 영리하고 느리면 느린 대로 지혜가 있어 각기 모두 장점이 있습니다. 말을 느리게 하거나 반응이 늦다하여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는데 빠르다고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손해 보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으면 아름다운 인생, 멋진 삶이 될 것입니다.

눈앞의 손익을 담담하게 대하라
요즘 도시에서는 창문이 공원, 바다, 교외, 들판을 향해 있을 때 집값은 비쌉니다. 그렇지요?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교외에 집이 있으므로 가격이 더 저렴하답니다. 나라면 교외의 막힘없이 펼쳐진 자연경치를 볼 수 있는 집을 살 것입니다. 창문을 열면 사면이 담장으로 막혀있거나 옆집 창문이 바로 붙어 있는 집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물론 옆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웃 층에서 무엇을 하는지 엿보는 것은 쉬워질 것입니다. 엿보는 취미가 챙기는 것 외에 좋은 점이 있을까요?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우물에 갇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걸립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 특히 작은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은 병에 더 잘 걸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광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처럼 드넓다면 기분이 아주 유쾌할 것입니다. 마음도 아주 넓어집니다. 초원에 사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주 멀리 높이 울려 퍼지고, 그들이 귓속말하는 소리는 우리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큽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 소리가 작으면 들리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넓고 탁 트여있습니다. 마음이 넓으면 통도 큽니다.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더 소심합니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한번은 상하이의 수행자 집에 갔습니다. 미안하지만 상하이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주 훌륭한 상하이 사람 집에 갔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눈치가 없어서 12시가 넘어 그 수행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집에 들어갔더니 마침 밥솥을 열고 있었어요.

“밥 냄새가 아주 구수하군요.”
“스승님, 식사하셨어요?”
나는 솔직한 사람입니다.
“안 먹었는데, 배가 고프네요.”
“그렇군요. 큰 그릇에 드세요.”

큰 그릇이라고 하는데 그릇이 찻잔만 했습니다.

“큰 그릇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릇 바꿔요!”라고 했더니 큰 그릇을 가져왔더군요.

“같이 식사합시다”라고 했더니 “없습니다”라고 하더군요.

부부에 아이 한 명,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5인 가족인데 나 한 사람이 먹을 정도의 밥만 했더군요.

“요즘 실직했어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니요. 네 식구가 출근합니다.”
“네 식구가 일하는데 밥을 한 그릇만 지었어요?”
“우리 집 식사량이 그만큼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인색하지, 북방 사람의 호방함이 없군요. 밥을 이렇게 조금 지을 정도로 위가 작으면 심장은 호두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야 어떻게 큰일을 하겠습니까?”

그 집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더군요.

“스승님, 큰일을 하는 이유가 식사량이 많은 것 때문이군요.”

그래서 “상관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이든 크게 보면 시야가 넓고 생각도 큽니다. 큰 장사를 하고, 큰 인물이 되고, 크게 착한 사람이 되고, 경지가 높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할아버지는 무엇 하시는 분입니까?”
“조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번 맞춰 볼게요. 도장 파는 분이시죠?”
“그렇습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집에서 쓰는 밥그릇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일로 그 집에서 밥을 한 그릇 먹고 몇 년을 미움 받았습니다. 상하이에서 사방에 스승의 식사량이 많다고 소문냈습니다. 스승의 마음이 넓다는 말은 하지 않고요. 마음이 넓은지 좁은지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크고 드넓은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사물을 생각할 때는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제 어머니 말처럼 우리는 장애인을 도와야 하며,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또는 다른 장애를 타고 태어났거나 후에 장애인이 된 사람을 놀리면 안 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절름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의 흉내를 내면 안 된다고 일러주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따라 하면 재앙이 오며, 좋은 일이 아니고 죄업이 됩니다. 상처를 입어 이미 아주 고통스러운데 그런 사람을 왜 흉내 냅니까? 오히려 도움을 주고 구원해야 합니다. 큰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커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 하나 있는 떡을 굶은 사람에게 절반을 나눠 준다고 자기가 굶어 죽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떡을 반만 먹는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큰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려 눈에서 불이 나는데 혼자 커다란 떡 하나를 먹고 있다면 편안할 수 있을까요? 생명이 위협당할 수도 있습니다. 굶주린 옆 사람은 늑대보다 더 흉악합니다. 당신이 떡을 먹어버리면 그들이 당신의 살점을 뜯어 먹을 수도 있으니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복은 나누는 것이 아주 합리적이고 아주 안전한 행위입니다.

거지들 천지인 빈민가에 한 집만 기름지게 부유하다면 집 밖을 나설 수 있을까요? 나서지 못합니다. 지하도를 이용해 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위에 틀림없이 하수구가 있을 것이고, 그곳을 이용해 장을 보러 다닙니다. 사람이 나다니는 것은 보이지 않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면 지하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옆집 사람에게 곤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빈민가에 홀로 부자인 집의 울타리는 특색을 띱니다. 그렇지요? 높고 튼튼하게 쌓은 담에 전선이나 경보기, 칼날, 유리조각 등을 심어 놓았다면 그 집은 부잣집입니다. 모두 눈여겨보세요.

마음이 넓으면 생각하는 일도 크며, 눈앞의 사물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부부의 아이가 어릴 적에는 말썽 피우고 노력하지 않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커서는 세계에서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을 때 아이 때문에 걱정한 것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잘 살았을 텐데요. 그러니까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눈앞의 손익을 담담하게 대해야 우리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원이 작은 실수를 했더라도 사장으로서 쉽게 해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일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창의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어서 업무 설계나 관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당신의 업무나 회사가 더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2년 4월 28일 부산 / 번역 : 정금주
제공 : 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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