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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위의 진보주의자들

기자명 고용석

인도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면 쌍어문양을 발견한다. 쌍어는 변하는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컵의 물이나 대양의 물은 다르지 않다. 단지 컵, 즉 몸과 마음이란 조건이 무한의식을 제한할 뿐이다. 고대 탄트라체계에 따르면 쌍어는 무한의식과 합일하는 내면의 에너지 통로를 말한다. 그 통로를 통해 생명에 의한, 생명을 위한, 생명의 약동이 솟구쳐 오른다.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매 이슈마다 보수 진보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 적이 있을까 싶다. 사람은 비슷한데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가늠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나라마다 한 이슈가 진보라면  동일한 이슈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인 경우도 허다하다. 진보는 꼭 거창한 정치적 방식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진보란 여럿에서 하나를 보는 마음이고 그 하나가 드러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란 항상 새로움이다.

19세기 미국의 르네상스를 열고 정신적 독립을 가져온 진보적 지식인들이 있다.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은 그들에게서 시작된다. 그 대표적 인물이 에머슨과 소로다. 그들에 따르면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서로 보상하기 때문이다. 예로 새로운 기술을 얻은 대신 오래된 야성을 잃는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 표면의 파도 심연에는 우주적 생명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존재고 진정한 진보란 생명의 자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상징이다. 그들은 자연이 비추는 거울 속에서 신성, 우주적 생명을 발견한다. 시민불복종도 생태주의도 이들에겐 우주적 생명의 노래고 그 과정일 뿐이다.

간디는 비폭력이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그에게 진리는 신이고 우주적 생명이다. 죽는 순간까지 모든 존재를 섬기며 모든 존재 속에서 신을 발견하려 한다. 심지어 자신을 저격한 사람을 바라보고도 평온하게 신의 이름을 부르고 죽는다. 한 생명을 해하는 것은 모든 생명을 해하는 것이다. 간디는 비폭력이 인간 사회 정치 등 모든 관계의 기초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진리파지 운동을 전개한다. 그에게 진보는 몸과 사회의 일치뿐만 아니라 우주적 공공성까지 담보한다.

슈바이처는 세계대전을 통해 문화란 결국 세계관임을 통찰한다. 서구사회가 세계와 삶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몰락한 것은 외부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근본적 사고가 없는 세계관은 결코 내면화되고 윤리적으로 실천되지 못한다. 그 문화는 아류일 수밖에 없다. 생명외경은 그 자체가 윤리적 세계 긍정이고 삶의 긍정이다. 슈바이처는 생명외경에 기초한 문화재건을 노래한다. 상대의 생명의지 속에서 자신의 생명의지를 체험하고 행동을 통해 무한한 생명의지에 내맡기게 된다. 그에게 진보란 우리의 삶과 세계에서 마주치는 생명의지를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까지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시대언어로 번역된다. 이들은 생명체에 대한 연민에 기초한  긍정적 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한 진보적 선구자들이다. 동시에 음식과 관련한 우리의 태도와 관습에 주의를 강조한 밥상위의 진보주의자들이다. 만약 오늘 이 순간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탐사한다면 가장 중대하고 인상적인 사건을 무엇이라 볼까?

하루 수십억의 동물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꼽을 것이다. 매초 1200평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10억 명은 배고파 굶어죽고 10억 명은 배불러 아파죽는 등 그 파괴적 후유증은 인간사회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전반에 걸쳐있다. 그것도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의 이름으로 제도적으로 자행된다.

이것이 과연 매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테러리즘이나 정치적 이슈보다 덜 중요한 일일까. 지금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하는 일상의 고민이다. 현대의 비건(완전채식)운동은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심과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마음살피기에 기초한다. 외적으로 비건이라 부르지만 사실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의 표현일 뿐이다.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 실천협회 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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