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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만 없으면 아무 일도 없다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8.31 11:40
  • 수정 2015.10.20 18:10
  • 댓글 0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다. 이런 저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난다고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괴로운 일이 진짜로 실체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내가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스스로 붙잡아 괴로운 일을 만들어 냈고, 거기에 얽매여 있는 것일 뿐이다.

커피·담배에 중독되는 것은
특정물의 집착이 만든 결과
본래 마음은 텅 비어 있기에
분별 버리면 좋고 싫음 없어

커피, 술, 마약, 담배 같은 것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이 이것을 끊으려고 하면 너무나도 힘이 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런데 거기에 전혀 중독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혼자서 좋아하면서 중독되고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좀 우습게 보이기도 한다.

사실 모든 중독자는 애초에 중독자가 아니었다. 갓난아이들은 커피든, 술이든, 마약이며 담배든 그런 데 중독되어 있지 않다. 어느 순간 내 스스로 거기에 집착해서 붙잡아 놓고는 그것 없으면 못 살겠다고 얽매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고 피우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담배를 안 피우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담배는 단순한 선택사항이지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스스로 담배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 독특한 것에 매료되어 헤어 나오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정말 이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커피나 술, 담배 같은 것은 그것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다. 우리를 꼼짝 옭아맬 그 어떤 힘이나 기술도 없다. 그런데도 한번 중독되어 버리면 그것을 떨쳐 버리기가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힘은 내가 집착했기 때문에 내 쪽에서 준 것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힘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전부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모든 대상들이 사실은 이와 비슷하다. 내 스스로 어떤 한 가지 대상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애착, 집착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것 없으면 못 살 것이라고 스스로를 그 대상에 구속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없으면 죽을 것 같고, 그 사람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여기기도 하지 않는가.

어떤 한 사람은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그저 중립적인 한 존재일 뿐이지만, 내가 그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애착하고 집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나에게 있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구속이 시작된 것이다. 괴로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좋아하고 싫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세상에는 심각하고 복잡한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집착과 구속, 고통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싫어하는 대상이 많은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이 세상은, 근원에서 바라본다면 텅 비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하고 싫어하기 이전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 세상에는 이런 저런 일이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분별심과 상을 일으키지 않으면 본바탕은 허공처럼 밝은 것이다. 본바탕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하나같이 여여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이를 전심법요에서는 “이 마음은 맑고 밝아서 허공과 같아 한 점의 모양도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없으나,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키면 곧 법의 본체와 어긋나고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자체가 바로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다. 생각으로 좋다 싫다는 상에 집착할 때 법의 본체와 어긋난다. 전심법요에서는 그래서 “본래 모양에 집착한 부처는 없다”고 했다.

우리가 집착을 시작하면서부터, 어떤 한 가지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스스로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냈을 뿐인 것이다. 단순하다. 집착하기 이전, 분별심과 상을 내기 이전,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는 아무런 일도 없다. 본래불이다.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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