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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리는 왜 마음을 알 수 없는가?

기자명 서광 스님

마음 흐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마음에 장악

“수보리야! 여래가 저 항하강의 모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느냐?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항하강의 모래에 대해서 언급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저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의 항하강이 있고, 그 모래 수만큼의 부처님세계가 있다면 심히 많다고 하겠느냐? 예,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많은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알고 있다.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진여심은 순수하고 맑지만
생멸심은 상황·조건에 오염
감정은 잠시 방문하는 손님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아야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는 한 순간도 동일한 심리상태를 경험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관념, 생각이 동일하다고 믿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마음의 순간들도 알고 보면 두 종류에 불과하다. 탐욕과 화, 어리석음의 독성에 중독된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다. 전자는 오염된 마음(染心)이고, 후자는 깨끗한 마음(淨心)이다. 그 가운데서도 탐욕과 화의 독성에 오염된 것(煩惱障)은 심리학 용어로 정서장애, 어리석음의 독성에 오염된 것(所知障)은 인지장애라 한다.

대승불교의 개론서, 또는 교과서라 불리는 ‘대승기신론’은 우리의 마음을 진여심(眞如心)과 생멸심(生滅心)으로 나눈다. 진여심은 우리 모두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깨달은 마음이다. 생멸심은 탐진치에 오염된 마음이다. 전자는 상황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불생불멸의 고요한 마음이고, 후자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생멸하는 마음의 파도다. 그러니까 중생의 마음이 아무리 셀 수 없이 많다고 해도 크게 보면 본래부터 깨달아 있는 진여심(本覺)이든가, 아니면 어리석음에 물들어서 순간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미움, 화, 질투, 사랑 등의 생멸심인 두 종류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숫자와는 상관없이 중생의 마음을 다 아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의 마음을 다 아는데 정작 우리는 왜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마음이 변덕스럽게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아니면 이런 저런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알아차리기 전에, 너무나 빨리 우리의 마음에 납치당하고 장악당하기 때문이다. ‘무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연결해서 ‘내면가족체계(Internal Family System)라 불리는 심리치료 체계를 개발한 슈워츠(Schwartz)는 우리가 말하거나 행동할 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마음이 되어서 말하거나 행동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보통 “나는 화가 난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라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화와 나’ 또는 ‘죄책감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화, 죄책감, 우울 등과 관련된 감정이나 생각은 분명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몸을 순간순간 방문하는 손님들일 뿐이다. 그렇게 잠깐씩 왔다가 사라지는 생멸심인데 우리는 손님을 우리 자신으로 착각하고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도 부처님처럼 우리의 마음을 알 수가 있는가? 일단 손님과의 동일시를 벗어나야 한다(탈동일시). 손님이 찾아오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자각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감정과 생각이 우리를 장악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 그들을 ‘나’라고 동일시하지 말고 수시로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으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한 손님맞이 과정이 바로 마음수행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을 규봉 종밀선사는 회망귀진(會妄歸眞, 허상을 알고 실체로 돌아간다), 유식은 전식득지(轉識得智, 분별망상을 돌이켜서 지혜를 얻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또 ‘대승기신론’은 생멸심을 통해서 진여심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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