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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박노해의‘행복은 비교를 모른다’

기자명 김형중

생사 넘어 해탈노래한 한 편 오도송

사노맹 사건으로 검거돼
무기징역 선고 후 쓴 시
이데올로기에 걸림 없는
자유 해탈인의 소망 담아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
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

남보다 내가 앞섰다고
미소 지을 때
불행은 등 뒤에서
검은 미소를 지으니

이 아득한 우주에 하나뿐인 나는
오직 하나의 비교만이 있을 뿐

어제의 나보다 좋아지고 있는가
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

나의 행복은 하나뿐인 잣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나의 불행은 세상의 칭찬과 비난에 울고 웃는 것

 박노해(1957~)는 1984년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어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당시 이 땅의 젊은 청년들이 이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100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우면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고, 노동자 문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박노해의 시 ‘행복은 비교를 모른다’는 그가 1991년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으로 검거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난 후에 쓴 새로운 시이다. 그 이전과는 시의 내용이 전혀 다른 시이다.

시인이 사형선고를 받고 쓴 시 ‘성호를 긋는다’에서 “사형, 사형이다 이렇게 올 것이 온 것이다. … 아, 나는 지금 외로운 것이다 나는 지금 붙들고 싶은 것이다 이 운명을 피해보고 싶은 것이다”라고 읊고 있다. 그가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을 담아 쓴 시가 ‘행복은 비교를 모른다’이다.

죽었다가 살아 난 사람의 눈에는 세상이나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가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인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행복을 원한다. 시인은 행복하게 사는 길을 시로 읊었다. 깨달음을 노래한 한 편의 오도송이다.

선가(禪家)에는 고통의 근원은 비교하고 차별하는 일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상대방과 비교하고 분별함과 동시에 좋고 나쁨이 생기고, 잘 하고 못 하는 경쟁심과 시기심이 발동하여 마음은 일순간에 풍파가 일어나서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의 행복은 비교를 모르는 것, 나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남보다 앞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고, 나는 승자가 되기 위해서 무한 경쟁의 대열에 끼어드는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승찬(僧璨)대사는 ‘신심명’에서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없으면 그대로 걸림이 없는 자유의 마음이다”고 하였다. 상대방을 칭찬하고 비난하는 마음 때문에 불행과 고통이 따라 다닌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주에 하나뿐인 내가 어제보다 좋아지고 있는가, 어제의 나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어제보다 더 깊어지고 성숙하고 있는가”처럼 오직 자신만을 비교와 변화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노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비교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시인은 이데올로기로부터 걸림이 없는 자유 해탈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과 현실은 시인의 생각과 사상에 대하여 처참했고 냉혹했다.

마침내 시인은 살아남기 위하여 분별사량을 접고, 펜 대신 문자와 소리가 없는 사진기를 들고 세상의 어둠과 아픔을 노래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목청이 좋은 새가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의 시의 특징은 노동 현장의 체험을 솔직하게 읊은 시로서 멋진 비유나 기교가 없다. 그래서 시가 더욱 진솔하고 깔끔하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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