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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석도휴(釋道休)

기자명 성재헌

얼마 전 서울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거사님이 내려와 잠시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이 고기를 먹는지 물어보며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다.

생명 귀히 여기는 게
불제자로서 도리라며
실 한 올, 쌀 한 톨도
허투루 받지않은 선현

“제가 유명 닭고기 생산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암놈이 알도 낳고 육질도 좋기에 암놈만 키운다더군요. 병아리가 부화하자마자 감별사들의 손을 거쳐 수놈들은 폐기처분됩니다. 그 장면이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감별사들마다 커다란 쓰레기통을 옆에 두고 있더군요. 그게 뭐냐면 수놈 버리는 통이었습니다. 그 통에서 수놈들은 차곡차곡 쌓여 아래에서부터 압사당하고 있었습니다. 수놈은 그냥 쓰레기였습니다. 그 업체의 부도덕만 탓할 수는 없었습니다. 육식을 당연시하는 현 사회의 풍조가 결국 무자비한 살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끄러웠다. 나 역시도 무자비한 살육의 동조자 중 하나였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의 첫째 항목은 불살생(不殺生)이다. 생명은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평가되고 이용되고 처분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생명을 먹잇감이나 놀잇감으로 여긴다면 그것이 폭력이다. 생명에 대한 무자비함은 병아리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폭력이 한 인간을 병들게 하고, 한 집단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지적한 분이 부처님이시다.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불교인들이 요즘 육식불감증에 걸렸다. 육식불감증은 도덕불감증으로 이어질 것이고, 폭력불감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자기 생명이 손상되는 것마저 감수하고 불살생의 가르침을 실천한 선현들이 더욱 존경스럽다.

당나라 때 옹주(雍州) 신풍(新豊)에 도휴(道休)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여산 깊은 골짜기에 풀을 엮어 암자를 만들고는 그곳에서 좌선하며 지내셨다. 그분의 살림살이는 입고 있는 옷과 발우 하나와 지팡이 하나가 전부였다. 스님은 한번 선정에 들면 7일이 지나야 삼매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선정에서 깨어나면 발우를 손에 들고 산에서 나와 집집마다 돌며 걸식하였다. 그리고 밥이 발우에 가득차면 아무 곳에나 앉아 먹고, 다시 암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자 7일마다 마을로 찾아오는 스님을 마을사람들이 먼저 찾아 나섰다. 스님은 산으로 찾아온 마을사람들을 반겼다. 정해진 날이 되면 산 입구로 나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며 먼저 말을 건넸고, 자신을 낮추어 안부를 물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었고, 세월이 지나자 산 입구에서는 일주일마다 온 마을사람이 모이는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계율과 좌선을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의 스님에 대한 존경심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 존경심을 어떤 이는 기름진 음식으로 표현했다. 스님은 아무런 말없이 받은 음식에서 고기를 가려내 숲속 모퉁이에 버렸다. 까닭을 묻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똑 같습니다.”

또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음식을 들고 찾아가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곡식 한 알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노고를 아는데 어찌 남용할 수 있겠습니까. 일주일에 한 끼면 이 몸을 지탱하기에 족합니다.” 또 스님의 단벌 누더기는 베옷이었다. 게다가 낡고 해졌기에 보는 사람마다 딱하게 여겼다. 엄동설한이 닥치자 마을의 부자가 나섰다. 그가 비단으로 만든 도톰한 외투를 올리자 스님은 웃으며 거절하였다.
“추위를 견디는 저만의 방법이 있답니다. 옷을 벗었다가 한참 후 다시 입으면 얼마나 따뜻한지 모릅니다.”
“옷이 없으면 모를까, 있는데 굳이 그러실 것 있겠습니까?”
“비단을 만들자면 누에고치를 삶아야 합니다. 이 옷 한 벌 만들자고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겠습니까? 그 고통을 외면하고 따뜻함을 즐긴다면 부처님의 제자라 할 수 없겠지요.”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일주일이 지나도 스님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마을사람들이 스님의 암자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고요히 선정에 든 채 입적한 도휴 스님이 계셨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려 몸은 깡말랐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고도 온화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마을 사람들은 사당을 짓고 스님의 육신을 모셨는데, 세월이 지나도 그 시신은 썩지 않았다고 한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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