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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석도선(釋道仙)

기자명 성재헌

사람 목숨보다 돈이 귀한 시대다. 돈에 얽힌 치정과 폭력을 아침저녁 뉴스를 통해 목격하고는 “돈 몇 푼에 저럴 수 있냐”며 다들 분노한다. 하지만 정도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돈에 목을 매고 살기는 피차일반이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눈과 귀가 온통 돈에만 쏠려있다. 친척이 모여도 친구를 만나도 돈 번 이야기, 돈 잃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를 평가할 때도 그가 가진 재산정도가 기준의 첫째를 차지한다.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 우르르 몰려가는 모양새가 가히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방불케 한다.

악착같이 모아 거상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
애착버려야 평화롭단 말에
모든 것 버리고 출가 단행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소유욕이 인간사회를 굴리는 원동력이었던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스러운 짓이다. 하물며 애써 모았던 돈을 자진해서 버리는 것, 그건 삶을 포기하는 것만큼 두려운 행동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불교가 위험천만하고 불교도는 바보스럽기 짝이 없다. 그 좋은 돈을 가지지 말라 하고, 모으지 말라 하고, 심지어 주머니에 있던 것마저 버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런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온전히 실천할 사람이 있을까? 실로 드문 일이다.

수나라 때 도선(道仙)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강거국(康居國) 출신이었던 그는 본래 상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이 싫어 맨주먹에 보따리 하나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 시절 그의 목표는 하루에 세끼를 챙겨먹는 것이었다. 검소함에 운까지 좋았던 그는 오(吳)와 촉(蜀) 사이의 험난한 길을 왕래하고 강과 바다를 오가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어느덧 상단의 주인이 되었고, 그가 이끄는 상선 가운데 두 척은 그의 재물만 실어야 할 정도였다. 한 척에는 진주와 금이 가득했고, 다른 한 척에는 옥과 보석이 가득했다. 그는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았고, 앞으로도 배곯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었던 그의 소원은 어느새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부자가 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화들짝 놀랐다. 어려서는 가난 때문에 나날이 고단했다. 그 고단함을 떨쳐보겠다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행복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늘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생각만큼 재산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재주(梓州)의 우두산으로 장사를 갔다가 승달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살림살이라고는 낡은 옷에 지팡이 하나뿐이었지만 그분의 표정은 더 없이 화창하고 움직임은 쾌활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상인은 평소 남에게 보이지 않던 속내를 드러냈다.

“스님, 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재산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항상 무겁고 우울합니다. 이 답답함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까?”

“기나긴 고통의 윤회가 모두 애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애착을 버리지 않으면 평온함은 찾아들지 않습니다. 버리십시오. 이 몸조차도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재물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상인은 화들짝 놀랐다. 이익을 위해 자신을 벼랑의 끝에 세우고 또 남을 짓밟으며 살아왔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알 수 없는 희열과 용기가 그의 가슴에서 용솟음쳤다. 상인은 당장 자신의 배로 돌아가 돛을 올렸다. 그리고 보물이 가득한 그 배를 강 한가운데에서 침몰시켰다. 나머지 한 척마저 침몰시키려고 하자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말렸다.

“가지기 싫으면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왜 버립니까? 좋은 곳에 쓰면 복 받을 텐데,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합니까?”

그러자 상인이 말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디밀고 싸웁니다. 재물이란 결국 다툼거리이고,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원흉입니다.”

상인은 나머지 한 척마저 침몰시키고, 곧장 승달 선사를 찾아갔다. 그렇게 머리를 깎고 도선(道仙)이란 법명을 받은 그는 평생 산을 내려오지 않고 선정을 닦으며 살았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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