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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과거심~미래심불가득

기자명 서광 스님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허상

“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은 무아이기에 잡지 못해
생멸심은 잡지 않고 보는 것
따뜻이 바라보면 ‘자애명상’
생멸 자리서 지혜·자비 발견

‘금강경’의 대가였던 덕산 스님이 길을 가는 도중에 떡을 팔고 있는 노파에게 점심으로 떡을 사려고 하는데 노파가 자기 질문에 대답을 하면 공짜로 주고 대답을 못하면 떡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노파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 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느냐고 물었고, 덕산 스님은 뜻밖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서 답을 못해서 점심을 굶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위의 구절은 ‘금강경’을 공부한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익숙한 구절이다. 그러나 왜 과거의 마음, 미래의 마음, 현재의 마음을 얻을 수 없는지 그 뜻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흔히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얻을 수가 없고, 현재는 잡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또 현재는 주객의 분별이 끊어진 직관의 상태이므로, 진짜 현재 순간은 얻는 주체와 얻는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얻을 수가 없다고 이해해 왔다.

그런데 그러한 이해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떠나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과연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이익이 있을까?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가? 설마하니 부처님께서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을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이 구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그 안에 담겨진 부처님의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마음은 ‘무아’이고 무상하기 때문에 잡을 수 없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닌 허상이고 신기루며 고통이다. 생멸하는 마음은 보는 것이지 잡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붙잡는 순간, 마음은 더 이상 마음이 아니고 고정관념, 편견, 고집, 착각, 오해로 변질된다. 그리고 그렇게 변질된 마음은 갈등과 고통을 낳고, 미움, 슬픔, 우울 등을 낳는다. 그러니까 마음을 잡지 말고, 그냥 보라는 뜻이 아닐까 여겨진다.

흔히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집착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공감은 가지만, 감동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맥락의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의 말에는 아주 다른 느낌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는 것은 오게 하라. 가는 것은 가게 하라. 그리고 남아있는 것을 보라.”

생(生)하는 마음을 억압하거나 부정, 회피하지 않고, 멸(滅)하는 마음을 붙잡지 않고, 그냥 생멸하는 마음을 지켜본다면, 과연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을까? 따지지 말고, 판단, 평가하지 않고 그냥 따뜻하고 친절하게 바라봐 주면, 그것이 자애명상이 된다. 또 그렇게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고통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연민명상이 된다. 내 마음의 생멸심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생멸심도 그렇게 바라봐 줄 수 있으면(無常觀)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인간유형도,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마음수행을 하고, 또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일종의 포용력 훈련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멸하는 그 자리에는 고요함, 맑음, 평화, 연민심, 지혜와 같은 정신적 특질들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라기보다는 마음이 생멸하는 그 자리에서 지혜와 자비를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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