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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보조국사의 비명 (1) 선교의 대립

기자명 인경 스님

전하지 않음으로 전했고, 닦지 않음으로 닦았다

보조국사의 생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김군수(金君綏)가 찬한 ‘조계산수선사 불일보조국사비명(曹溪山修禪社佛日普照國師碑銘)’이다. 이 비문은 스님이 입적하고 제자 혜심국사의 주도아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선나는 마음의 고요함 의미
가섭 의해 마음으로 전해져
불설은 아난에 의해 계승돼
고려후기 중요쟁점으로 부각

“선나의 근원은 가섭에게서 나왔고 달마는 그것을 중국에 전하였다. 그것을 전하는 이는 전하지 않음으로써 전하였고, 그것을 닦는 이는 닦지 않음으로써 닦았다. 잎에서 잎으로 전하여 지고 등에서 등으로 함께 빛나니, 어찌 경이롭지 않는가!”

선나(禪那)는 ‘Jhana’나 ‘Dhyana’의 음역으로, 의역으로는 정례(靜慮), 사유수(思惟修) 등으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마음의 고요함을 뜻하는 선정을 의미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선정뿐 아니라 지혜의 작용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었고, 간화선에서는 진정한 자기를 참구한다는 의미에서 참선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비문에서 선나의 의미를 ‘전하지 않음으로써 전하고, 닦지 않음으로써 닦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풀이한 것이다. 언어적인 형상이나 어떤 세속적인 성취에 가치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심원한 근원적 가치를 말한다. 이것은 침묵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질뿐이다.

이것을 잘 보여준 인물이 가섭(迦葉)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이 어느 날 꽃을 들자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정법안장을 가섭존자에게 부촉하였다[拈花微笑]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말로써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구체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반면에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阿難)존자에 의해 계승되었다. 우리는 조석으로 그 말씀을 독송하면서 전승하여 왔다. 부처님 말씀이 결국은 언어에 의해 계승되는 교학적 성격을 가진다면, 부처님의 마음은 선나로서 대별되는 관점이다. 이런 선교대립은 고려후기에 드러난 매우 중요한 쟁점의 일부였다. 비문의 다음 구절을 보면 이점은 더욱 분명해 진다.

“성인께서 가신지 오래되어, 법도가 느슨해 지고 배우는 이는 진부한 말만을 고수한다. 은밀한 뜻은 모르고 근본은 저버리고 지엽만 좇는다. 관찰하여 깨닫는 길은 막히고, 문자로 희론하는데 벌떼처럼 일어나 정법안장은 땅에 떨어졌다.”

여기서 성인은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되었고, 법도는 느슨하여 졌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실천은 없고 성인의 말만을 좇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곧 선교의 대립된 사정을 말한 것이다.

이런 대립을 어떤 이들은 ‘가섭을 살리고 아난을 죽이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의 가치를 과소평가한다는 말이다. 옳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보조국사는 교학중심의 불교계에 선종의 가치를 도입한 인물이다. 보조국사 이후 고려중기의 교종에서 고려후기의 선종으로 분위기가 넘어온 것이다. 교종에서 선종으로 흘러가는 역사적 흐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보조국사이다.

오늘날 이런 갈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곳곳에서 어떤 이들은 실질적인 실천이 있어야 한다 하고, 어떤 이들은 교학적인 이론이 부족하다고 난리친다. 어떤 이들은 문헌적인 연구가 부족하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현장연구가 전혀 없다고 불평을 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갈등할 이유는 없다. 이론이 없으면 실천하는 것이 어긋나고, 반대로 실천이 없는 이론은 공허해진다. 이들은 늘 유기적으로 함께 존재할 때 서로에게 빛을 던진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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