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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김희겸, ‘적성래귀’

기자명 조정육

이론 없는 실천은 위험하고 실천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

▲ 김희겸, ‘적성래귀’, 1754년, 종이에 연한 색, 29.5×37.2cm, 간송미술관.

당신이 부처다. 이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환희심에 겨워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겠는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치겠는가? 지금 이대로의 내가 부처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어쩌면 너무 자주 들어 별 감동이 없는 지도 모른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셨고 수많은 조사들이 거듭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부처라는 사실을 믿기는 쉽지 않다. 왜 믿을 수가 없을까. 사대가 뭉쳐 이루어진 이 육신만을 보기 때문이다. 육신이 아니면 뭐가 부처일까. 이에 대해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은 ‘수심결(修心訣)’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교 일치에 헌신한 지눌
은둔하며 ‘정혜결사’ 전개
‘수심결’ 등 다채로운 저술
지금까지도 큰 영향 미쳐

소박한 삶 그린 ‘적성래귀’
소잔등에 앉은 아이 표현
소 길들이려면 선정·지혜
두 가지 다 갖춰야 가능

“부처란 바로 이 마음이다.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을 것인가? 이 몸을 떠나지 않는다. 이 육신은 헛것으로서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지마는,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익숙하게 들어온 말이다. ‘마음이 곧 부처다’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동북아시아 선종의 핵심 명제다.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을 거쳐 수많은 선승들이 일관되게 가르쳐 온 진리다. 죽으면 지수화풍으로 흩어져버릴 육신이 아니라 마음이 부처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느끼는 이 마음, 슬프면 울고 싶다고 느끼는 이 마음, 뜨겁고 춥고 아프고 즐겁다고 느끼는 이 마음이 부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혹해 ‘제 마음이 바로 참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제 성품이 바로 참 법임을 알지 못하여 법을 구하려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구하려 하면서도 제 마음을 관하지 못한다.’ 여기서의 성품은 불성(佛性)이고 법성(法性)이고 자성(自性)이고 본성(本性)이다. 그런데 마음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니 내 안의 불성을 외면하고 자꾸 바깥에 있는 신을 찾아 복을 구한다. 영험한 곳에 가서 기도하면 ‘반드시 소원 하나는 들어 준다’는 소문 따라 만사 제쳐두고 기도터로 향한다. 부처님께서 최후로 남긴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유훈은 잊은 지 오래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고 신을 찾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외도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마음 밖의 대상을 찾고 구하는 기복 불교를 지향한다. 이런 폐단에 대해 지눌대사는 단호하게 말한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 하고 성(性) 밖에 법이 있다 하여 이 소견을 고집하면서 부처의 도를 구하려 한다면, 티끌처럼 많은 겁을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깨뜨려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언제나 앉아 눕지 않으며, 하루에 밥은 묘시에 한 번만 먹으며, 나아가서는 대장경 전부를 다 읽고 갖가지 고행을 닦더라도 그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수고를 더 끼칠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선지식을 만나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스스로의 본성을 보게 된다. 이 본성에는 부처님과 똑같이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스스로 구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단박의 깨달음인 ‘돈오(頓悟)’라고 한다. 돈오는 번뇌가 없고 한량없는 지혜의 성품이 구족되어 있고 그것이 부처와 중생이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지눌은 이렇게 깨달았어도 점진적으로 닦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점수(漸修)’다. 왜 점수가 필요한가. 비록 본래의 성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어도 오랜 세월 익혀온 습기(習氣)는 갑자기 버리기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해 차츰 닦아 나가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배인 습관은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는다. 습기는 단순히 익숙한 습관 정도가 아니라 지독한 중독(holic)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서만 물든 습관이 아니라 다겁생에 걸쳐 익힌 고질병이다. 어찌 단 한 번의 깨달음만으로 고질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수행자는 단박에 깨달은 돈오에 의지해 지속적으로 점수를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돈오점수다.

지눌은 ‘수심결’에서 깨달음 이후의 수행인 돈오점수를 목우행(牧牛行)이라 표현했다. 목우행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고 깨닫기 이전의 수행은 진정한 수행이 아니라고 했다. 왜 그럴까. 목우행이야말로 무명을 타파할 수 있는 반야(般若)에 의지한 수행이기 때문이다. 깨닫기만 하고 지속적인 수행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수행은 유지되기 힘들다. 무명이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타파될 수 있을 만큼 허술한 번뇌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겠는가. 번뇌가 많지 않은 상근기의 수행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목우행이 필요하다.

지눌의 호는 목우자(牧牛子)다. 그는 선교(禪敎) 일치를 위해 헌신한 고승으로 20대에 승과에 합격한 후 명리를 취하지 않고 산림에 은둔하며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펼쳤다. 당시 불교계는 선종과 교종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의천과 지눌은 원효대사처럼 선종과 교종을 통합한 회통불교를 지향했다. 그러나 의천이 교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흡수한 천태종을 개창했다면 지눌은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흡수하고자 했다. 즉 지눌은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했으나 선정이 먼저였다. 이것은 의천이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주장했으나 교를 윗자리에 둔 가르침과는 상반된다. 그는 쉰 세 살의 나이에 입적할 때까지 조계산 송광사에서 선교일치운동을 펼치며 중생구제에 진력했다. 그가 지은 ‘수심결’과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진심직설(眞心直說)’은 교와 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달이 떴다. 보름달이 떴다. 하늘에도 물속에도 맑은 달이 온전하게 떠 있다. 귀갓길에 오른 선비는 물속의 달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발길을 멈춘다. 만상이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고요 속에 잠긴 시간. 해 넘어간 뒤 황혼은 어둠을 걸치고 온 평안과 휴식에게 낮의 자리를 내어준다. 어둠이 깔린 나뭇잎 사이로 저녁 안개가 스며든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노라고 다독이듯 내려앉는다. 세상에 남겨둔 사소한 분별마저 흐릿해질 즈음 저 멀리서 호젓한 피리소리가 들린다. 소를 탄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주인이 길을 잡아주지 않아도 저절로 집을 찾아가는 소의 걸음걸이는 오랜 세월 길들여온 목우(牧牛)의 결과다.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김희겸(金喜謙,1710년대~1763년 이후)이 그린 ‘적성래귀(?聲來歸)’는 ‘피리 불며 돌아오다’라는 뜻이다. 원래 구절은 ‘소잔등에서 피리 불며 짝지어 돌아올 때면(牛背?聲 兩兩來歸) 달빛은 앞 시내에 뚜렷이 떠오르네(而月印前溪矣)’다. 이 문장은 남송(南宋)의 유학자 나대경(羅大經,1196~1242)이 지은 수필집 ‘학림옥로(鶴林玉露)’의 ‘산거(山居)’편에 들어 있다. ‘학림옥로’는 나대경의 호 학림(鶴林)을 따서 지은 책으로 모두 18권이다. 주희(朱熹),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의 문인과 학자들의 어록, 시문에 관한 논평이 적혀 있다. 그 중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산거’는 중국과 조선의 문인들에게 인기가 많아 여러 작가들이 다투어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김희겸 역시 ‘산거’를 6폭으로 그렸는데 ‘적성래귀’는 마지막 6폭 째 그림이다. 나머지 다섯 폭의 그림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폭은 ‘산정일장(山靜日長):산은 고요하고 해는 길다’, 2폭은 ‘산가독서(山家讀書):산속 집에서 책을 읽다’, 3폭은 ‘좌롱유천(坐弄流泉):흐르는 시냇가에 앉다’, 4폭은 ‘산처치자(山妻稚子):촌티 나는 아내와 자식’, 5폭은 ‘수루작서(水樓作書):물가의 누각에서 글을 짓다’이다. 제목만 훑어봐도 작가가 소박하게 사는 삶을 지향했음을 느낄 수 있다. 김희겸은 화원화가로 자는 중익(仲益), 호는 불염자(不染子), 불염재(不染齋)다. 희성(喜誠)이란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아들 후신(厚臣)도 화가였다. 그는 1748년(영조 24) 어진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인물화에 능했다. 지팡이를 짚은 선비의 뒷모습과 소등에 탄 동자의 율동감 넘치는 동작에서 그의 인물화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산거’에 묘사된 삶은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다.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느리게 더 느리게’ 사는 삶이다. 어떤 삶이 느리게 사는 것일까. 조바심을 내려놓고 마음에 여유를 담고 사는 삶이다. 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긴데 깊은 산 속에 있는 집에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다. 하루 온 종일이 나의 시간. 게으름을 피우고 늦장을 부려도 누가 뭐라 나무랄 사람이 없다. 늦은 아침을 먹고 새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잔다. 샘물을 길어다 차를 끓여 마신다. 책을 읽다 지치면 한가로이 시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배고프면 돌아와 촌티 나는 아내가 차린 보리밥을 먹는다. 창가에 앉아 글씨를 쓰고 시를 짓는다. 책을 뒤적거리다 심심하면 다시 쓴 차를 달여 마시고 밖으로 나가 시냇가를 거닌다. 밭둑의 노인이나 냇가의 벗들과 만나 벼농사에 대해 얘기하다 석양에 집으로 돌아온다. 지팡이에 기대어 사립문 아래 서면 서산에 걸린 석양이 만 가지 형상으로 변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아이들이 소잔등에서 피리 불며 돌아올 때면 어느새 달빛은 하늘과 시내에 뚜렷하게 떠 있다. 무탈하게 보낸 하루가 소리 없이 어둠에 잠긴다. 넉넉한 하루였다.

‘산거’는 느긋한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떠오른다. 시인은 갈 봄 여름 없이 저만치 혼자서 피고 지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산다. ‘산거’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글의 내용은 이러한데 작가는 이 글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렸을까. ‘적성래귀’를 확인했으니 나머지 그림도 찾아보시기 바란다. 내가 상상한 그림과 작가가 그린 그림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확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성래귀’가 6폭의 마지막인 까닭에 그림을 그린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다. ‘갑술년(1754) 늦봄(3월)에 초진 임소에서 그리다. 불염자’(甲戌暮春, 在椒鎭任所寫, 不染子)라고 되어 있다.

‘적성래귀’는 그저 산에 사는 즐거움을 그린 그림일 뿐 목우도(牧牛圖)는 아니다. 목우도는 소를 길들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선종(禪宗)에서 선의 수행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다. 수행단계를 10단계로 나누어 그려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고, 소를 찾는다는 뜻에서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한다. 여기서 소는 우리 자신의 번뇌이고 마음이다. 소를 찾아 산속을 헤매던 동자가 결국에는 소도 잊고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수행자가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빗대어 그린 그림이다. 본성을 찾는 것은 견성(見性)으로 돈오와 같다. 소를 잘 길들이기 위해서는 선정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론과 실천은 항상 함께 가야 한다. 이론만 강조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을 때 공허하다. 실천만 강조하고 이론을 무시할 때 위험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자세보다 더 나쁜 것은 이론도 실천도 모두 망각하는 자세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돌아볼 때다. 소 등에서 구멍 없는 피리를 불기는커녕 소의 고삐에 끌려가느라 헉헉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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