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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찰의 자연유산1-들머리 솔숲

사찰의 수행환경 완성과 불심전파의 매개체

▲ 통도사의 들머리 솔숲.

사찰의 옛 풍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해인사 홍류동의 솔숲은 고운 최치원이 거닐던 그 당시에도 울창했을까? 통도사의 들머리 솔숲(무풍한송)은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은 조선시대 문사들의 문집이나 화원들의 그림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조선 문집이나 화원 그림에
사찰 솔숲 글·그림으로 담겨

활엽수 주로 채취 농경문화
소나무 위주 문화경관 창조

40년 전 60%나 되던 솔숲
현재는 24%미만으로 줄어

크고 화려한 불사 못지않게
전통경관 보존에 관심 필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유록(四遊錄)’ 유호남록(遊湖南錄)의 ‘송경(松逕)’에는 송광사를 찾아가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로 ‘임립(林立)한 소나무를 보며 산문에 들어서’는 내용이다. 이 기록으로 15세기 송광사 주변은 솔숲이 무성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의 경우 조헌(1544∼1592)의 석문운(石門韻) ‘중봉집(重峰集)’에 실린 ‘차쌍계사(次雙溪寺)’에 솔숲이 등장한다. 300년의 세월이 지난 뒤 강위(1820∼1884) 역시 ‘쌍계방장(雙溪方丈)’에 무성한 솔숲을 언급하고 있어서 쌍계사의 솔숲이 수백 년 동안 지속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인사의 경우, 정구(1543∼1620)가 남긴 ‘한강집(寒江集)’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에는 솔숲에 대한 시가 수록되어 있어서 몇백 년 전에도 해인사 일대가 소나무로 뒤덮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 미상의 조선시대 화가의 ‘통도사도’에는 그 당시에도 통도사의 들머리 솔숲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문집을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옛 문사들이 사찰을 방문하고 남긴 다양한 유람기에 소나무 숲을 언급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조선시대의 사찰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무성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사찰 주변에 솔숲이 조선시대에도 무성했을 것이란 추정은 1920년대에 출판된 ‘조선고적도보’와 ‘조선사찰31본산’에 수록된 사진으로도 확인된다. 이 두 종류의 사진집에는 사찰별 소나무 숲의 면적이나 임령(林齡)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 당시 소나무 숲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찰의 풍광이 흑백사진으로 담겨 있다.

사진집을 분석하니 몇몇 사찰을 제외한 대부분 사찰은 주변에 솔숲을 거느리고 있었다. 단기간에 생성되거나 소멸할 수 없는 숲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조선시대 사찰 소나무 숲에 대한 옛 기록을 참고할 때, 사찰의 소나무 숲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 사찰 주변에 왜 소나무가 무성했을까? 먼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한 우리 조상들의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지속한 농경문화는 우리 국토에 소나무 숲이란 독특한 생태적 흔적을 남겼다. 생태적 흔적이란 인가 주변에 형성된 소나무 단순림은 농경사회에서 지력(地力) 유지에 필요한 퇴비를 생산하고자 활엽수와 임상유기물을 지속해서 채취한 인간의 간섭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극상상태의 숲이기 때문이다. 인위적 극상 상태로 유지된 특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소나무 단순림을 농경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경관이라고 해석하며 더 나아가 전통문화경관이나 자연유산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의 기반 위에서 영위된다. ‘경작하다’, ‘재배하다’란 어원에서 유래된 ‘문화(culture)’란 결국 인간의 자연개조를 뜻한다. 그래서 문화경관이란 조상들의 삶이 녹아 있는 풍광을 의미한다. 산업주의와 현대문명의 위세는 어느 나라나 유사한 대도시의 풍광을 만든다. 고층 건물과 자동차로 가득 찬 도로와 비슷비슷한 공원의 모습이 그렇다. 풍광의 전 지구적 동조화 현상이 가속될수록 특정한 나라만이 간직한 고유한 전통문화경관에 세계는 주목한다. 민족 고유의 전통과 풍습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만든 결과물이자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소나무 단순림을 보전해야 할 소중한 전통문화경관이라 일컫는 이유다.

사찰 소나무 숲의 존재 의미는 선종의 관점에서도 고찰할 수 있다. 임제 의현의 ‘임제록’에는 황벽 스님이 “깊은 산 속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무엇하려는가?”라고 물으니, 임제 스님은 “첫째는 선원의 주변 환경을 잘 만들고, 둘째는 후인들에게 표방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청허 휴정은 “소나무를 심으며, 수목초화를 좋아해서가 아닌 색즉시공을 알리기 위해 심는다”고 하였다. 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사찰 주변의 솔숲은 ‘사찰 수행 환경의 완성과 불심 전파의 매개체’로 본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다.

▲ 활엽수에 의해 도태되고 있는 법주사의 5리 솔숲.

사찰 주변에 소나무들이 무성했던 또 다른 이유는 조선왕조의 왕목으로 자리 잡은 소나무의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다. 조선 왕조는 왕족의 능역을 길지로 만들고, 또 생기를 불어넣고자 능역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 왕릉을 지키는 능사와 함께 임금의 태를 모신 태실주변과 태실을 수호하는 원당 주변에 소나무를 심은 이유도 소나무의 상징적 기능을 활용하여 왕조의 무궁한 번영을 추구하고자 원했기 때문이다. 태실과 태봉산을 수호했던 은해사(인종 태실), 법주사(순조의 태실), 직지사(정종 태실)에 오늘날까지 다양한 형태의 소나무 숲이 남아 있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바로 왕조의 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소나무를 이용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상징하는 생명과 장생의 의미를 이들 신성한 장소에 함께 부여하는 한편, 소나무에 가람수호의 소임도 맡겼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 대표적 흔적은 가람수호신을 모셔둔 산신각의 산신탱에서 찾을 수 있다. 산신탱의 대표적 구성요소는 산신과 호랑이와 함께 그려진 소나무이다. 이들 세 요소는 모두 가람을 수호하는 외호신으로 인식되어 이들을 모신 산신각은 예로부터 사찰의 중요한 구성요소였다.

산업문명의 속성에 따라 국토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겐 과연 어떤 전통 문화경관이 있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경관은 어떤 모습일까?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전통 문화경관이 우리에겐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아파트가 들어선 농촌과 현대식 위락시설이 자리 잡은 산과 바닷가의 모습이 우리들의 전통 문화경관일까?

안타깝게도 지난 수백 년 동안 농경문화가 일구어낸 우리의 전통 문화경관은 지난 50여년 사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속하게 전환됨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국성(韓國性)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경관으로 인식되고 있는 소나무 단순림도 마찬가지다. 그 단적인 사례는 40여년 전 전체 산림의 60%나 되던 솔숲의 면적이 오늘날에는 24%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소나무 단순림의 구조도 소나무·활엽수 혼효림으로 바뀐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여파로 자연의 복원력에 따라 활엽수 혼효림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소나무 숲의 면적이 줄어들거나 숲의 형태가 활엽수 혼효림으로 변해가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옳은 방향의 천이라서 긍정적이지만, 경관적 관점에서는 고래의 우리 전통 문화경관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 땅의 몇몇 사찰들이 소나무 단순림의 옛 모습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는 통도사와 운문사와 은해사의 들머리 솔숲 보전활동이다. 관심 가져 주는 이 없어도 전통 문화경관을 지켜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들 사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활엽수와 힘겹게 생육경쟁을 벌리고 있는 표충사의 솔숲.

그러나 전통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사찰은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 사찰은 전통문화경관의 구성요소로서 소나무 숲의 의미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관심조차 없다. 그래서 사찰 대부분은 솔숲이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다. 옛 문헌에 기록되었던 법주사, 불영사, 표충사의 들머리 솔숲은 근래 활엽수에 잠식되어 원래 숲의 형태를 쉬 찾을 수 없는 지경이고, 가장 우량한 소나무로 명성이 자자하던 법흥사의 솔숲이 활엽수에 잠식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사찰의 소나무 숲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성속의 차폐공간, 임산연료의 제공처, 전란과 화재발생 시 필요한 비상용 목재 비축기지의 기능을 담당했지만, 오늘날은 이 땅의 고유한 전통경관을 지키고 있는 귀중한 자연유산으로 대두하고 있다.

경제력만 충족되면 단기간에 도로를 내고, 불전을 세우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숲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 낼 수 없다. 장구한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숲은 더더욱 그렇다. 눈앞에 보이는 거창하고 현란한 불사 못지않게 사찰 풍광을 구성하는 숲을 지키고 가꾸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상들의 삶이 응축된 귀중한 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1309호 / 2015년 9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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