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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준 ‘랩퍼 도끼’의 도끼 같은 경책

  • 기자칼럼
  • 입력 2015.09.14 13:08
  • 수정 2016.02.03 10:50
  • 댓글 0

며칠 전 포털사이트에 오른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래퍼 도끼, 불교신자라 술·담배·욕 안 해’, ‘도끼의 악플 대처법…불교라서 화 안내’라는 제목이었다. 마우스를 움직이면서도 속으로는 ‘이거 또 낚시질(자극적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사 게재 방식에 대한 속어)에 걸리는 거려니’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공중파 방송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이자 랩퍼 ‘도끼(예명. 본명 이준경)’에 관한 기사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이 불교신자임을 밝히며 “화를 내지 않는다. 불경에 나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의 말에 다른 출연자들은 식당에서 불친절하거나, 여자 친구가 바람을 폈거나, 밤거리에서 취객과 시비가 붙는다면 등의 사례를 들며 거듭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대답이 걸작이다. “(불친절 같은) 그런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는다.” “여자 친구가 바람 피운 것은 내 잘못도 있다.” “밤에 안 걸어 다닌다.” 그의 대답에 출연자들은 당황하거나 폭소를 터트렸다. 도끼는 몇 달 전에도 한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악플에 대해 화 내지 않는다”며 “불심으로 극복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방청객에선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불자이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다는 말이 옳은가. 아니, 그보다는 이 말이 웃기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기사를 읽는 내내 머릿속이 좀 복잡했지만 끝에 남는 뒷맛은 ‘웃픈’ 현실이었다. 불교에 대한 몇 가지 선입견과 우울한 현실이 이 짧은 기사 안에서 켜켜이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일단은 랩이라는 장르의 서양음악을 하며 ‘도끼’라는 다소 반항적 예명을 쓰는 젊은 래퍼가 ‘안 어울리게’ 불교신자라는 점에 대한 대중의 놀라움이다. 심지어 일부 기사에는 ‘기독교신자 아니었네’라는 제목까지 등장했다. 불교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고리타분한 종교라는 인식이 그 반응의 이면에서 느껴졌다. 그 선입견을 확 뒤집은 듯 해 후련하면서도 불교가 당면해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털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불자라서 술, 담배, 욕 안 한다는 말을 낯설게 여기고 그것을 유머나 ‘웃기는 일’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모습은 이 기사의 뒷맛을 더욱 씁쓸케했다. “교회 다녀서 술 안 먹습니다”라고 말하는 연예인과 그 말에 고개 끄덕이는 모습들은 많이 봤는데 불자가 술 안 먹는다는 말은 왜 이렇게 뉴스가 돼야 하는지.

▲ 남수연 부장
그의 말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최신 유행음악에 문외한이나 다를 바 없는 까닭에 그가 어떤 연예인인지도 솔직히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불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산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해 본적, 하려고 노력해 본 적 있는가. 그의 말이 도끼같은 경책으로 들렸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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