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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어 있는가? 목마른가?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9.21 10:57
  • 수정 2015.10.20 18:10
  • 댓글 0

‘불법(佛法)’이라는 마음공부는 세간의 일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세간에서는 공부를 잘 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재능이나 소질이 있거나, 학벌이 좋거나, 건강하거나, 그런 특별히 남들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뭐든지 더 잘 이루어내고, 성공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불법 공부는 머리가 똑똑한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고, 특별한 자질이나 재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간에서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면 꼭 필요했던 그 모든 것들이 이 공부에서는 전혀 필요치 않다. 그렇기에 세간에서는 공부를 잘 해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고, 일을 잘 해야 진급도 하지만, 이 공부에서는 그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조건을 갖추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공부는
특별한 능력 갖추지 않아도
갈증 나면 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가능

그렇다. 누구나! 바로 당신 말이다. 여기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깨달음을 근기가 수승한 수행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왔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공부에 대한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다. 결가부좌를 오래해야 하거나, 장자불와 수행이 필수인 것도 아니고,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것도 아니며, 3000배, 1만 배 절 수행을 능숙하게 잘 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전생부터 닦은 것이 있는 사람이 더 유리한 것도 아니다. 그 어떤 재능이나 능력, 치열한 수행력이나 극기, 높은 근기나 업장소멸 따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공부에는 그 어떤 자격도 필요치 않다.

왜 그럴까? 우리는 진리에서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이라는 세계가 저 높은 곳에 따로 있어서 열심히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수행하며 노력해야지만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음’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바로 깨달음이다. 내가 나를 찾고 있는 것일 뿐이다. 불이법이기에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다. 색즉시공이란 말에서 보듯이 여기가 바로 거기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어디를 갈 것인가? 갈 필요가 없다면 가기 위한 노력이나 방법도 필요치 않다. 그렇다, 이 공부는 특별한 방법이나 특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은 공덕을 갖춘 뒤에, 준비가 된 뒤에 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지금, 이 글과 마주한 바로 당신이야말로 지금 이 주어진 생에서 이 공부를 시작하고 끝마칠 바로 그 사람, 참사람이다. 지금 눈앞의 바로 이 글자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보고 듣고 느껴 알 수 있는 정도의 당연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자라면, 그 삶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누구나 조건은 완벽한 것이다. 이 공부는 반드시 깨닫겠다는 간절한 보리심, 알고 싶지만 알지 못함에서 오는 답답함, 반드시 이 본성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목마름,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마음공부이기 때문이다.

우린 누구나 갈증이 심해지면 간절히 물을 찾는다. 물을 찾고자하는 마음 이것이 보리심이요 발심이다. 물은 누가 찾을까? 목마른 사람이 찾는다. 물을 찾는 것에는 특별한 노력이나 자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목마름만이 필요할 뿐이다. 말 그대로 일체유심조,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공부도 이와 같아서 깨달음에 대한 간절한 발심, 보리심만 있다면 깨달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은 충족된 것이다. 이 공부는 길 없는 길이다. 특정한 정해진 깨달음의 방법이나 수행은 없다. 물론 역사 속에서 다양한 수행과 방편이 무수히 설해지긴 했지만 그 모든 방편은 목마른 사람을 물가까지 오게 하는 것일 수는 있을지언정 결정적으로 물을 들이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발보리심이 가능케 하는 것이다.

▲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마음만 간절하면 이 우주법계가 알아서 이끌어준다. 그래서 깨달음은 내가 깨달음으로 가는 게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진리 쪽에서 먼저 찾아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절인연이다. 발보리심, 깨닫겠다고 하는 간절한 목마름, 그것이 시절인연을 불러온다. 그러니 깨닫기를 기다릴 것도 없다. 다만 갈증과 답답함과 꽉 막힌 의심 속으로 뛰어들어 그 막막한 벽에 갇혀 있는 채로 버틸 뿐이다.

당신은 준비된 자인가? 목이 마른가?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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