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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영주 부석사 안양루

기자명 신대현

길 위에 비스듬히 걸쳐진 ‘틀어짐’의 미학…섬세한 자태 압권

▲ 조선후기 조성된 영주 부석사 안양루 모습. 사방이 탁 트인 그림같은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사찰의 영역을 뜻하는 사역(寺域)을 나타내기 위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는 당간지주를 세워 그 입구를 표시했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그 역할을 일주문이나 불이문 등이 대신했다. 사역은 넓은 의미의 사찰 전체 구역을 뜻하는 말이고, 경내(境內)라고 할 때는 특히 금당과 법당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한정해서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평지 가람의 경우 사천왕문 등을 들어서면 경내에 들어서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지 가람은 산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문 대신에 대개 누(樓)를 통해 경내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누는 곧 절의 얼굴이기도 한 것 같다.

산지가람 경내 출입 건축물 ‘누’
사찰 얼굴이자 풍수 의미 담겨
문·벽 없이 지은 2층 건물 의미

조선 후기 조성된 부석사 안양루
높다란 석축 위 팔작지붕 눈길
‘안양’서방정토 상징하는 이름

누는 가람 공간의 한 축으로서 경내의 출입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또 주산(主山)에서 흘러내려온 기운이 가람에 가득 담긴 채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한다는 풍수의 의미도 간직한다. 산사의 누가 늘 웅장하고 기운차 보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흔히 ‘누각(樓閣)’이라고 해서 누와 각을 한 단어처럼 쓰지만, 엄밀하게 보면 누는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2층집’이고, 각은 ‘절·궁궐·객사 같은데 두며 사방 혹은 일부를 벽으로 막은 작은 단층 건물’로 서로 성격이 조금 다른 건축물이다. 이 누와 각은 둘 다 우리 사찰 공간을 더욱 풍취 있고 멋있게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백미 같은 존재다.

▲ 누 아래로 난 계단은 무량수전 앞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 아름답고 멋들어진 누 건물은 참 많다. 그래도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먼저 떠오르는 게 영주 부석사 안양루가 아닐까 싶다. 부석사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무량수전과 조사당 등 우리 불교미술에 있어 기념비적인 중요 건축들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고려 후기에 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건축물 중 하나이고,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의 명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이 숱하게 회자될 정도로 정서적, 문화적으로도 국민의 사랑을 받던 명품 건축이다.

▲ 부석사 경내서 바라본 안양루 전경.

그런데 그 못잖게 멋진 건축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안양루(安養樓)다. 사역 입구에서 출발해 완만하게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왼쪽에 자리한 당간지주를 살펴본 다음 다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길을 걸어올라 삼층석탑 앞에서 한숨 돌린 뒤 경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높다란 축대 위에 예쁘게 들어선 이 안양루가 두 눈 가득히 들어온다. 조선 후기에 지었고 앞면 3칸, 옆면 2칸의 이층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2단으로 쌓은 높고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다. 누 밑으로 난 계단으로 무량수전 앞 경내로 들어서므로 일종의 누문(樓門)이기도 하다. 누의 기본대로 위 아래층 모두 기둥만 세우고 그 사이에 벽체를 두지 않고 사방이 탁 트이게 해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깥에서 안양루를 향해 올라가다가 바라보면 안양루가 길에서 일직선이 아니라 45도 틀어진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직선이 어울릴 법한 구조에서 이런 극심한 곡선이 선뜻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조상들은 획일성을 싫어해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보다는 구불구불 틀어진 길에서 세상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풀이하기도 하고, “의상 스님의 ‘화엄법계도’에 의거해 의도적 굴곡을 둔 것으로 이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바르게도 보이고 휘어져도 보이는 화장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는 교학적 입장의 해석도 있다. 여하튼 비스듬히 걸쳐 있어서 안양루는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평면적 시각보다 약간 틀어짐으로 해서 오히려 입체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안양루는 멀리서보면 그림 속 풍광같은 그 멋진 모습에 감탄하게 되고, 또 바짝 앞에 다가서서 봐도 그 섬세한 자태에 빠져들게 된다. 누 바로 아래에 와 서서 고개 들어보면 높다랗고 커다란 기둥들 사이로 난 좁은 시각 너머로 마당에 놓인 석등이 바라다 보이는데 이 모습도 일품이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의 고풍스러운 풍광을 보는 것 같다. 누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선이다.

부석사를 비롯해서 의상 스님이 지은 이른바 화엄 십찰은 모두 산을 깎아 석축을 쌓아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옛 시인의 글을 인용해 부석사 안양루를 ‘바람 난간’이란 멋진 이름이라고 붙여주었던 권중서는, 부석사 안양문이 이러한 높다란 석축 위에 지어진 이유에 대해 “어렵게 사찰을 만나도록 하는 건축 방법은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는 힘겨운 구법 여정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은 공부도 스스로 하고, 부처도 스스로 되는 것을 알려 주는 멋진 가르침이다”라고 그 숨은 의미를 찾아냈다(‘사찰의 문과 다리’, 2010).

안양루에 놓인 편액은 위쪽과 아래쪽이 달라서,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다. 건축적으로 보면 하나의 건물에 누와 문이라는 이중 기능을 부여한 것이지만 이것은 결국 ‘안양’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양이라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안양은 ‘광홍명집’에 “서쪽에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 이름을 안양이라 한다. 길은 멀고도 아득한데 항사(恒沙)를 넘는다”라고 나온다. 요컨대 서방정토 곧 극락이 안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양루는 이 누문을 넘어서면 극락을 참배할 수 있다는 대중의 소망도 담고 있다. 안양루 너머에 무량수전이 있고 여기에 서방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으니 이 이름이 참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사실 절마다 누의 이름이 다른데, 그것은 그 절의 특성과 의미 또는 주변 산세를 고려해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 이름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주로 많이 사용된 이름만 봐도 대충 50가지가 넘는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들어 소개하려 하는데, 이름에 들어 있는 의미를 알고 누를 바라보면 모습이 좀 더 달라 보일 것 같아서다.

먼저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으로는 아마도 만세루(萬歲樓)가 가장 으뜸일 것 같다. 부처님의 법이 만세토록 밝게 이어진다는 뜻으로, 고창 선운사·파주 보광사·청도 운문사 등 아주 많은 절에서 이 만세루 편액을 볼 수 있다. 또 보제루(普濟樓)도 그 못잖게 애용되던 이름이다. ‘보제’는 이 세상의 중생을 널리 구제하겠다는 뜻이니 사찰 건축의 이름으로 이만큼 상징적인 게 없다. 화엄사·범어사·금산사·태안사·선국사·태안사 외에도 여러 사찰 누에 이 이름이 붙었다. 백수의 왕 사자의 용맹함을 부처님의 법에 비견한 사자루(獅子樓, 원효암), 불어오는 맑은 바람을 맞이한다는 뜻의 청풍루(淸風樓)도 봉선사, 신둔사 등 여러 누에 즐겨 사용된 이름이다.

도교와 관련된 이름도 많은데, 특히 고고함의 상징인 학을 누 이름에 붙인 예를 자주 볼 수 있다. 고운사의 구름을 타고 앉아 있듯이 높고 맑은 자리라는 뜻의 가운루(駕雲樓)를 비롯해서 학을 타고 있는 듯이 맑은 기운이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가학루(駕鶴樓, 대전사), 학을 벗 삼아 노닐만한 자리라는 반학루(伴鶴樓, 예천 용문사), 구름과 학이 노닐 만한 산 깊고 맑은 곳이라는 운학루(雲鶴樓, 장곡사) 등이 모두 학을 소재로 한 이름이다. 같은 도교적 의미로 신선을 주제로 한 것도 많다. 학이 있으면 봉황도 있듯이, 봉황이 내려앉은 누라는 뜻의 봉황루(鳳凰樓)라는 이름도 많다. 봉황은 상서로움을 담고 있어 여수 흥국사 등 여러 절의 누 이름으로 많이 쓰였고, 또한 남해 용문사처럼 용의 기운을 조화시키는 풍수적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남덕루(覽德樓)도 봉황과 관련된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보면 ‘덕을 바라본다’는 뜻인데, 이 말은 곧 덕을 닦아 태평성세가 되면 봉황이 인간세계에 깃든다는 도교의 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안동 봉황사 누각이 바로 그곳이다.

연꽃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보화루(寶華樓)라는 이름도 참 많다. 누에 앉아 보화, 곧 극락세계의 아름다운 연꽃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니 이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운 이름도 또 없을 것 같다. 영천 은해사와 백흥암 등에서 이런 이름의 누를 만날 수 있다. 그 밖에 부처님의 극락세계로부터 이 세상에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雨花樓)도 연꽃을 주제로 한 이름으로 봉정사, 숭림사 누각에 올라서면 이 꽃비를 맞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중기의 저명한 학자이자 시인인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안양루에 오른 감회를 이슬처럼 맑고 섬세한 감수성을 담아 이렇게 시로 담아냈다.

‘아침에 신선처럼 샘에서 목욕하고(神泉朝浴罷) / 저녁나절 봉황산 누에 올랐다(試上鳳棲山) / 해와 달은 처마 위에서 뜨고 지고(日月軒楹下) / 들창 너머엔 하늘과 땅 아득하여라(乾坤戶牖間) / 세월 흐르면 흙먼지 되어 사라질 인생(消磨千古後) / 고개 한번 주억거리면 이 세상 편하지 않은가(俛仰此生閑) / 신선은 누에 머무르길 좋아한다니(仙侶樓居好) / 나 또한 난간에 기대어 돌아가지 않으리(憑欄擬不還)’


아름답고 멋진 누에 올라, 나지막한 난간에 기대서 멀리 탁 트인 산과 하늘을 바라보는 이 맛을 다른 어느 곳에서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를 찾아가 그 이름에 깃든 깊은 뜻도 음미하고 안에 올라가 세상 시름도 내려놓으며 마음을 쉬어보면 세상이 좀 더 살만하지 않을까.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연구위원  buam0915@hanmail.net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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