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실크로드
1. 아! 실크로드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5.09.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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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승과 카라반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동서양 문명교역로

▲ 사막을 건너는 고독한 카라반에 대한 상상은 실크로드의 이미지를 신비롭고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이룩된 역사적 실체이자 불법을 좇는 구도자들의 길이었다. 사진은 명사산(鳴沙山) 전경.

밤하늘 수놓은 별빛을 벗 삼아 광막한 모래사막을 가르는 카라반(대상, 隊商)의 행렬. 낯선 침묵과도 같은 사막의 고요 속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모래바람과 약탈꾼들의 위협. 금은보화 그득한 짐을 등에 진 낙타와 터번 두른 상인들의 고단한 걸음 앞에 샘솟은 오아시스. 신비로움과 낭만이 덧대어진 실크로드의 이미지는 잘 보존된 박물관 유물처럼 세상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가 유통되면서 실크로드는 한낱 박제된 껍질로서 사람들에게 소비된 지 오래다.

한 무제 시대 서역 정벌로
본격적인 문명 교류 시작
장안에서 로마까지 이어져

오아시스 도시들 중심으로
천산북로 등 세 가지 루트
천축국 향하는 구법승들의
주요한 이동경로가 되기도


하지만 실크로드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이룩된 역사적 실체이자 동서양이 2000년 동안 서로에게 문명의 손길을 내밀었던 교역로다. 무엇보다 법현, 현장, 의정, 혜초 스님 등이 진리의 시원(始原)에 닿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구도자의 길이었다. 이들 스님이 있었기에 황량한 사막과 광활한 중국대륙을 가로질러 뻗어나간 불법의 가지가 마침내 한반도에 이르러 신심의 꽃을 활짝 피워낼 수 있었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이 9월4~11일 진행한 ‘혜총 스님과 함께하는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는 이들 스님이 남긴 구도의 흔적들을 되짚어보는 여정이었다. 전 포교원장이자 순례 지도법사인 혜총, 교육부장 진각 스님과 인보, 법성, 각륜, 탄공, 성전 스님 등 48명 스님은 실크로드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구법승들의 흔적을 찬탄하며 신심을 아로새겼다.

9월4일 순례단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중국 서안(西安)으로 향했다. 비행시간은 고작 3시간 남짓. 여느 때라면 당연하게 여겼을 시간과 거리지만 본격적인 순례를 앞둔 터라 이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그 상념은 인류가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 올라 타 안락함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될 수 없는 현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됐다. 서안이 아니라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천축을 향한 구도의 길 실크로드는 어떤 의미를 건네고 있는 걸까.

▲ 맥적산 석굴 앞에서 예불을 올리는 순례단.

문명은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급격히 변화시켰다. 시간은 초단위로 쪼개지고 공간은 우주의 크기를 논할 정도니 한반도와 서안 사이에 가로놓인 3시간은 특별할 리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건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류가 시공간에 불어 넣었던 숨결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현장 스님은 629년 서안을 출발해 천축으로 들어간 뒤 645년 불경 600권을 가지고 돌아왔다. 끝없는 사막과 눈 덮인 산, 얼어붙은 강을 건너 천축에 당도했을 때 현장 스님이 느꼈을 감정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부처님 말씀이 담긴 불경을 품고 험난했던 길을 또다시 거슬러가야 했던 현장 스님의 숙명 역시 헤아리기 어렵다.

16년이라는 시간과 불경 600권, 그리고 현장 스님은 당시 사람들의 신심은 물론 시공간에 대한 인식, 나아가 당대의 세계관을 응축시킨 상징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접점에 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날 구법승, 카라반, 실크로드의 박제된 이야기에는 신심, 용기, 환희의 감정들로 장엄됐던 길의 기억들이 배제돼 있다. 개별적인 존재들이 모여 일궈낸 실크로드 역사의 찬란했던 숨결도 마찬가지다. 순례단이 이번 여정에서 복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꿈틀거렸던 그들의 목소리요 인류의 위대한 숨결이다.

▲ 중국에서 가장 긴 G30 고속도로. 고비 사막 위에 건설됐다.

실크로드. 말 그대로 비단이 이동한 길을 뜻하는 이 용어는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고대 무역로를 발견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실크로드가 교역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한무제(BC 156~87) 시대 때였다. 변경을 위협하던 흉노를 제압하기 위해 대월지(大月氏), 오손(烏孫)과 손을 잡으려 했던 한 무제는 장건(張騫)을 사절로 파견했다. 장건은 흉노에 붙잡혀 억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년 만에 대월지에 도착했지만 동맹을 성사시키진 못했다.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대신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요 도시들과 지역 정세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귀국했다. 이는 중국인들의 세계 인식을 확장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무제는 대월지와 오손 등을 흡수해 한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다. 페르가나국을 정벌해 왕을 죽이는 한편 당시 사막 무역로에서 중요한 지점이었던 누란(樓蘭)도 정복했다. 이로써 진정한 의미의 실크로드가 열리게 됐고 중국의 비단은 로마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인류의 숨결이 깃들기 시작한 실크로드는 크게 세 가지 루트로 나뉘어 전개됐다. 일단 장안(長安, 서안)에서 출발해 하서주랑(河西柱廊)의 양주(凉州, 무위), 감주(甘州, 장액), 숙주(肅州, 주천), 과주(瓜州, 안서)를 거쳐 사주(沙州, 돈황)까지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 간선으로서 공통적인 교통로였다. 황하(黃河)를 건너는 시점부터 모래와 바위의 황무지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오아시스에 세워진 이들 다섯 도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세 가지 루트는 바로 사주에서 출발한다. 천산산맥을 경계로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天山南路)로 구분되며 천산남로는 다시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의 서역북로, 남쪽의 서역남로로 나뉜다. 천산북로는 천산산맥 북쪽 기슭에 있는 하미, 투루판, 우루무치 등의 오아시스를 동서로 연결한다.

서역북로는 투루판, 카라샤르, 쿠차, 카슈가르에 닿은 후 파미르 고원을 넘는 길이다. ‘반야경’ ‘법화경’ ‘유마경’ 등을 번역한 구마라집(鳩摩羅什) 스님과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혜초 스님은 물론 현장 스님도 이 길을 통과했다. 서역북로에는 아스타나 고분군, 베제크릭 석굴, 키질 석굴 등 대표적인 실크로드 유적들이 밀집돼 있기도 하다. 서안에서 출발하는 순례단은 천산북로와 서역북로가 나뉘는 투루판까지 올라간 뒤 천산북로를 따라 우루무치로 향할 예정이다. 서역남로는 돈황에서 누란, 체르첸, 니야, 케리야, 호탄, 야르칸드를 지나 카슈가르에 당도하는 길이다. 초기불교의 사원건축이 많이 남아 있어 실크로드를 통한 불교 전래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투르판 시내를 흐르는 물줄기. 천산산맥 만년설이 녹은 물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동서로 길게 누워 있다. 게다가 북쪽의 천산산맥과 서쪽의 파미르 고원, 남쪽의 곤륜산맥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도무지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이 지역이 실크로드의 핵심적인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험난한 지형인 것이다. 하지만 산맥은 봉우리에서 만년설의 녹은 물을 사막으로 흘려보냈고, 그것이 고이는 산기슭에 오아시스를 형성시켰다. 인류는 오아시스에 모여들어 도시와 국가를 건설해나갔다. 점으로만 존재하던 사막의 도시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선으로 이어지며 장구한 역사를 완성했다.

▲ 돈황 막고굴은 실크로드가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이러한 실크로드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세기 초의 일이다.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문명교류가 실크로드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류라기보다 차라리 침탈이었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 스웨덴의 스벤 헤딘, 프랑스의 폴 펠리오 등이 실크로드 유적들을 찢고 뜯어 본국으로 가져갔다. 특히 돈황 막고굴(莫高窟)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고문서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진 사건은 실크로드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중국인들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있지만 말이다. 순례단은 이번 여정을 통해 구법승과 카라반의 흔적뿐 아니라 침탈의 잔재들까지 더듬게 될 것이다.

다시 비행기 창문에 기대 풍경을 바라본다. 구름 위를 날던 비행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착륙을 준비하고 있다. 구름 아래 세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자욱한 먹구름이 한바탕 비를 뿌릴 것처럼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른다. 대지 위에는 빌딩, 도로, 교량, 자동차들이 그득하게 들어찼다. 그 모습이 마치 카라반 낙타 등에 올린 금은보화 같다. 저들의 실크로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곧 서안공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시계를 보니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고 채 3시간이 되지 않았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협찬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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