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식-하
35. 식-하
  • 이진경 교수
  • 승인 2015.10.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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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신체는 거대한 유전정보인 ‘식’의 집적체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식의 개념을 이처럼 분자적인 수준으로까지 밀고 내려가면 개념의 의미나 작용은 물론 위상에서 또 한 번의 근본적 변환이 발생한다. 세포의 핵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아니 핵산들의 식의 작용은 세포별로 고유한 단백질을 만든다. 그것들로 신체의 조직(tissue)과 기관들이 만들어진다. 생명체의 신체는 모두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다. 분자적인 식의 작용으로 인해 생명체의 신체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체가 진화해 나가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려는 식의 결과
유전자는 식이 저장된 결과물
‘식’ 없는 신체는 존재 불가능

“오직 식이 있을 뿐이며,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여기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통상 그것은 식에 따라 우리가 대면한 대상이 달라짐을 뜻하는 ‘인식론적’ 명제로 해석되어 왔다. 감지할 수 있는 빛의 파장에 따라 대상이 달라지고, 안식의 양상이 달라짐에 따라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면 그거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사실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라고 했던 버클리의 소박한 관념론이나, 사물 자체 같은 것은 알 수 없기에 있는지 없는지 그게 무언지는 괄호 쳐두고,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들리는(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만 말하자고 하는 칸트나 후설의 신중한 관념론 철학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반복해서 주장되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전자 이하의 분자적인 식의 작용을 안다면, 식의 작용은 단지 우리가 마주한 대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것에 머물지 않음에 생각이 미칠 것이다. 그것은 생명체의 신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신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활동하는지를 결정한다. 생명체라는 존재방식은 물론 그 존재 자체가 유전자나 그 이하 수준에서 진행되는 식의 작용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식의 작용은 단지 인식론의 영역이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해야 한다. 미시적인 식의 작용은 생명체의 존재를 특정한 양상으로 구성하고 그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일차적인 성분인 것이다. 분자적 식의 개념을 통해 이제 우리는 미시적 식의 존재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식의 집적이 신체를 만들어내는 것과 반대되는 방향의 과정 또한 이러한 식의 존재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생명체의 현행적인 활동이 미시적인 식의 형태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과정. 가령 진화라고 불리는 생명의 장기 지속적 과정이 그것이다.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선 빛의 변화, 온도의 변화, 물의 유무, 공기의 상태 등에 대해 ‘알고’ 판단해야 한다. 이는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 미생물조차 다르지 않다. 살려는 의지가 있다면, 환경에 대해, 인근에 있는 것에 대해 알고 판단하는 식의 작용이 발생하게 마련이며, 그 결과 얻은 식들이 기억되고 저장되게 마련이다. 유전자는 그러한 작용의 결과 가운데 최소치가 저장되고 기록된 것이다. 물론 환경에 적응한 것이 직접 유전자를 바꾸고 거기에 기록되지는 않는다. 적응한 것들이 살아남아 번식하고 적응하지 못한 것은 죽고 도태되는 과정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가 보존되는 방식으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것이다.

이를 불교적인 어법에선 ‘행(行)’이라고 명명되는, 생명체의 의지 내지 성향이,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활동이나 작용을 만들어내고, 그런 행이 다양한 층위에서 ‘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식이 유전자정보의 형태로 저장되고 집적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12연기 중 하나인 “행을 조건으로 하여 식이 존재하게 된다”는 명제는, 무지로 인한 인간의 충동이 분별을 만들어내는 과정만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으로 이런 생물학적 과정 일반에 대한 것으로 이해되어도 좋지 않을까?

유전자는 그 자체로 이중적 의미의 식 개념을 함축한다. 아미노산을 모아 단백질을 만들고 세포와 신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능산적인 개념으로서의 식의 작용이다. 이를 유식학의 어법으로 바꾸어 말하면, 유전자라는 종자에 집적된 식이 생명체의 신체로 현행화되는 것(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이라고 할 것이고,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유전자 형태로 집적된 잠재성이 발생적 조건에 따라 현행화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동시에 유전자는 소산적인 개념으로서의 식이다. 흔히 사용되는 ‘유전자정보’라는 말이 그렇듯이, 유전자는 거대한 정보의 집적체다. 즉 거대한 미시적 식들의 집적체다. 이는 박테리아로부터 시작된 수십억 년 진화의 과정을 통해 ‘기억’된 정보들의 집적된 것이다. 이는 매우 완만한 속도로지만 현행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유전자로 저장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다시 유식학의 어법으로 말하면, 생명체의 현행적인 활동이 종자의 형태로 훈습되는 것(현행훈종자, 現行熏種子)이라고 할 것이고, 들뢰즈 식으로 말하면 현행성이 잠재성의 변화로 소급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더불어 유전자들이 전사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와 변이가 발생함을 안다면, 그리고 생식을 통해 유전자들이 섞이는 방식으로 유전자들의 다양한 변화가 발생함을 안다면, 유전자들이 다른 유전자로 변형되는 과정이 그 사이에 존재함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유식학에서 종자가 변화된 다른 종자를 만들어낸다(종자생종자, 種子生種子)라고 했던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제 유전자로부터 다시 우리의 신체로 올라갈 수 있다. 생명체의 신체는 모두 거대한 유전정보라는 식의 집적체이고, 그 식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신체일 뿐 아니라, 일상적인 습관이나 기억 등이 새겨지고 그것에 의해 작동하는 신체란 점에서 식의 집적체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이 만나고 접하는 조건이나 환경에 대응하여 유전적 코드나 습관에 의해, 혹은 기억이나 6근의 지각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신체다. 활동할 때뿐 아니라 쉬거나 자고 있을 때조차 세포적인 식과 분자적인 식의 흐름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식의 작동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분자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수준에서도, 신체는 식에 의해 구성되어 있으며, 식 없는 신체는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현행훈종자’에서 ‘종자생종자’를 거쳐 ‘종자생현행’으로, 그리고 그게 다시 ‘현행훈종자’로 이어지면서 순환하며 반복되는 생명의 과정이란 분자적인 수준으로 ‘내려간’ 미시적 식의 작동을 통해 생명체의 존재가 만들어지고 변화되며 지속하는 과정임을 뜻한다. 유전자는 물론 유기체의 기관이나 신체, 나아가 유기체들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집합체 모두가 이러한 식을 통해 작동한다. 이를 안다면, 오직 식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말을 상투적 관념론으로 간주하는 것만큼 커다란 오해도 없음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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