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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틱쾅둑(釋廣德)

기자명 성재헌

여행경비를 대주겠다는 친구의 호의를 덥석 받아들여 베트남을 다녀왔다.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 불미의 사건을 염려하며 가이드가 잔뜩 겁을 주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민낯이 너무 궁금해 몰래 밤거리로 나섰다. 경계심을 품고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 길가 허름한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에 외국인이 찾아온 적이 없었던지 주인도 손님도 놀라는 눈치였다. 당황스럽긴 피차일반이다. 그들의 말은 ‘꽁깡꽁깡~’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고, 우리 역시 짧은 영어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정권의 종교·약자탄압에
소신공양으로 폭압 항거
반정부시위·투쟁 기폭제
베트남에서 외세 몰아내

그래도 젊은 사람이 낫겠다 싶었던지 주인은 국수를 먹던 처녀를 앞세웠다. 갑작스레 통역의 짐을 지게 된 처녀가 수줍은 얼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녀 역시 아는 영어라고는 ‘원·투·쓰리’에 ‘암~’ 뿐이었다. 결국 손짓발짓을 동원해 처녀가 먹던 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종이에 연필까지 달라하여 가격을 확인하였다. 처녀는 종이에 3달러를 적었다. 이국에서의 설렘에 시장기까지 더해서인지 진한 육수에 향채가 그득한 뿐짜는 최고의 맛이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주인 아들에게 6달러를 내밀었다. 그러자 통역을 자임했던 처녀가 손을 저으며 ‘NO~’를 외쳤다. 그리고 처녀는 주인모자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베트남 환율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달러를 쥐고 있던 청년은 처녀의 설명을 듣더니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3달러를 내밀었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를 세웠다. 분짜 두 그릇에 3달러였던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베트남의 밤거리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조용하지만 강인하고, 겸손하지만 당당하고, 가난하지만 정직한 그들의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다. 1·2차에 걸친 기나긴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끝내 승리한 베트남인의 강인함이 지금도 여전했다. 문득 디엠정권의 폭압에 항거하며 분신했던 틱쾅둑(釋廣德) 스님이 떠올랐다.

1963년 6월11일, 사이공 시내 미국대사관 근처에 수십 명의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스님이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안쾅사원의 고승 틱쾅둑이었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제자 하나가 스승에게 휘발유를 뿌렸다. 잠시 후 성냥불이 그어지고 화염이 치솟았다. 치솟는 불길에 까맣게 살이 타들어갔지만 가부좌한 스님의 자세는 미동조차 없었다.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이 스님을 향해 절을 올리며 울부짖었다. 그렇게 스님은 숯 덩어리가 되어 쓰러졌다.

이 장면은 AP통신 베트남특파원 말콤 브라운과 뉴욕타임스 베트남특파원 데이비드 핼버스탬 등에 의해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유엔에서 확인된 스님의 분신 이유는 고 딘 디엠(吳廷琰) 정권의 폭압에 대한 항거였다.

고 딘 디엠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다. 집권과정에서 토지개혁을 약속했던 디엠은 대부분 지주층이었던 가톨릭세력의 지지를 결집하기 위해 토지개혁을 중단했다. 그리고 소작인들과 불교도들을 탄압했다. 디엠은 베트콩을 몰아낸다는 구실로 소작인마을과 사찰들을 폭파하고 철거했다. 또 많은 불교도들과 승려들을 베트콩과 연계된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하고 처형했다. 그리고 1963년 5월, 디엠의 형이었던 쿠양빈 지역 가톨릭 대주교가 석가탄신일 봉축행사를 금지시켰다. 이에 틱쾅둑 스님이 약자에 대한 핍박을 중지할 것을 호소하며 소신공양을 단행했던 것이다.

목숨을 바친 간곡한 호소에도 강자들은 냉소적이었다. 디엠의 제수로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쩐레수언(陳麗春)은 스님의 소신공양을 두고 “땡중의 바베큐 쇼”라며 비웃었고, “다른 승려가 분신을 하겠다면 내가 휘발유를 공급하겠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스님들의 분신은 이어졌고, 디엠 정권은 사이공의 싸로이 사찰을 습격해 30여명을 사살하고 1500여명의 승려와 시민을 체포하는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학생과 농민들의 반정부 시위와 게릴라 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10여년의 투쟁을 거쳐 결국 가톨릭세력과 미국이 베트남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분신사건 뒤, 틱쾅둑 스님의 유해는 수습되어 다시 화장되었다. 두 번의 화장에도 스님의 심장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중생의 아픔을 대변했던 스님의 심장이 불길보다 더 뜨거웠나보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13호 / 2015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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