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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국민행복

과거의 기억은 세월이 가면 추억이 된다. 아프고 슬픈 기억이라도 시간의 연금술을 거치면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한편의 추억이 된다. 기억이 추억으로 바뀌면 기억은 흘러간 세월의 향이 배어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격언이 있다. 시련을 극복하고 난 뒤 깊어진 삶만큼이나 훗날 그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주변에서 추억이 사라지고 있다. 기억이 추억으로 전환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11년째 OECD자살 1위 불명예
5년 자살자 이라크 희생자 2배
공정분배·정의 사라진 것 원인
정치투쟁 몰두하는 정부 한심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전쟁터보다 더욱 험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 국내 자살자수가 7만3995명이다. 매년 1만5000명, 하루 평균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는 이라크 전쟁 희생자의 2배, 아프가니스탄 전쟁 희생자의 5배를 넘는 수치다. 한국이 폭탄테러와 총격이 난무하는 전쟁터보다 더 위험한 지역인 셈이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한국은 지구촌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11년째 유지하고 있다. OECD평균 자살률의 2배가 넘는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청년들의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2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특히 2013년에 비해 2014년에 20대는 4.2%, 30대는 0.5%가 증가했다. 청년들은 미래를 책임질 주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의 자살은 우리 미래의 자살이다.

사람들이 자살에 내몰리는 주요 원인은 현재에 처한 경제적 어려움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좌절감 때문이다. 극단적인 양극화로 중산층이 몰락하고 사람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고 있는데도 이들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 사회로부터 배운 것이 경쟁인데 자라고 나니 경쟁을 해서라도 들어갈 일자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런데도 엄청난 부를 쌓아 놓은 재벌들은 편법으로 부를 세습하고 있다. OECD회원국에서 우리나라만이 유독 자살률이 높은 것은 공정한 부의 분배와 사회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틈틈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수년째 매일 40명이 자살하는 자살공화국에서 행복을 외치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정부도 언제부터인가 자살예방사업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예산이라는 것이 1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내년에 소요될 자살예방사업 예산마저 일부 삭감됐다. 일본이 매년 3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쓰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은 없다. 사회적 타살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살이라는 것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재벌개혁을 통한 행복한 일자리 창출이나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한 안전한 미래를 추구하는 대신 ‘좌파친북’ 운운하며 편을 가르는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가 어느 때보다 높다.

▲ 김형규 부장
세계 행복지수 1위를 기록했던 부탄은 국민총생산이라는 경제성장 대신 국민총행복지수라는 독특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행복이 경제성장보다 우선한다는 정책이 행복한 나라 1위 부탄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국민이 불행하면 나라도 불행하다. 나라가 불행한데 정부인들  행복할리 없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정치투쟁에 몰두하기보다 국민을 자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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