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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극락의 의보

기자명 이제열

아미타불 눈으로 보면 사바와 정토가 한 세계

▲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아미타삼존내영도’.

“사리불이여, 또 저 불국토에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연주되고, 대지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밤낮으로 천상의 만다라 꽃비가 내린다. 그 불국토의 중생들은 이른 아침마다 바구니에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꽂을 담아 가지고 다른 세계로 다니면서 십만억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반 전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산책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와 같은 공덕장엄으로 이루어졌느니라. 또 그 불국토에는 아름답고 기묘한 여러 빛깔을 가진 백학·공작·앵무새·사리조·가릉빈가·공명조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화평하고 맑은 소리로 노래한다. 그들이 노래하면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보리분(七普提分)과 팔정도(八正道)를 설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나라 중생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문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사리불이여, 이 새들이 죄업으로 생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 불국토에는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옥이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떻게 실제로 그런 것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새들은 법문을 설하기 위해 모두 아미타불께서 화현으로 만든 것이다. 그 불국토에서 미풍이 불면 보석으로 장식된 가로수와 나망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마치 백천 가지 악기가 합주되는 듯하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문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할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와 같은 공덕장엄으로 이루어졌느니라.”

중생의 망령된 분별에 의해
이 세계와 저 세계 나뉘어
극락세계서 이뤄지는 일이
곧 사바세계 일임을 알아야

극락세계의 의보장엄(依報莊嚴)의 말씀은 계속된다. 의보는 중생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국토와 세상을 말한다.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만 안주하며 살지 않고 수많은 다른 부처님의 국토도 왕래하며 그 부처님들을 위해 공양을 올린다. 극락세계의 중생들이 수십억 부처님 국토에 왕래하는 시간은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이는 아미타불의 위신력이 중생들에게 고루 미치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타방의 정토들과 부처님들을 보게 하고 순식간에 그 곳에 당도해서 공양을 올리게 하는 위신력을 발휘한다. 불국토의 중생들이 다른 불국토에 들어가서 그곳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거나 그 부처님으로부터 설법을 듣는 광경은 대승불교에서는 흔히 나오는 내용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세상은 중생의 유위세계건 부처의 무위세계건 결국은 하나만 있을 뿐 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광대무변한 우주에 한량없는 세계들이 펼쳐져 있어도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중생들의 망령된 분별에 의해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있고 이 국토와 저 국토가 있지 부처의 눈으로 보면 세계는 하나의 모습만이 존재한다. 일진법계(一眞法界)인 것이다. 일진법계의 도리는 부처님의 경지로 국토만이 한 국토가 아니라 부처님들이 한 몸 한 마음이며 중생들이 한 몸 한 마음이다. 일진법계에서는 중생과 국토와 부처가 조금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마냥 평등한 하나가 된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아미타불의 극락이라 해서 결코 다른 불국토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상에 있어 서방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동방 약사여래의 유리광세계이기도 하고 북방 아촉불의 묘희국토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 중생들이 사는 이 국토이기도 하다. 아미타불은 모든 부처님이며 모든 불국토이고 일체중생의 본래 모습인 것이다. 경전의 내용에는 비록 극락정토의 중생들이 타방의 불국토에 들어가 그곳의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고 하였으나 실은 피안과 차안이 없고 오고 감이 없으며 공양을 올리는 자와 공양을 받는 자가 따로 없다. 진정한 정토는 마음의 불성에서 펼쳐낸 일진법계이다. 이 일진법계를 아미타경에서는 서방극락이라 했고 불성을 아미타라 했다. 그러므로 중생이 극락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아미타불의 힘에 의존한 삶이 영위될 수밖에 없다. 일진법계를 깨달은 중생이 불성의 발현에 의한 삶이 주어지는 것을 아미타경에서는 이렇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중생들이 미혹을 떨쳐내고 깨달음을 얻어 불성을 발현하면 서방 극락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펼쳐진다.

극락세계에는 온갖 법음을 내는 새들이 날아다닌다. 백학·앵무·공작·가릉빈가·사리조·공명조 등 사바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새들이다. 가릉빈가는 부처님 세상에 사는 새라하여 극락조라고도 부르고 묘한 소리를 낸다하여 묘음조라고도 부른다. 선녀 얼굴에 새의 몸을 지니고 있다. 사리조는 눈이 보석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운 새로 히말라야산에 산다는 새이다. 공명조 역시 전설에 나오는 새로 꿩처럼 생겼는데 머리가 둘이라고 한다. 하나의 머리가 죽으면 따라서 죽는다하여 공명조라 이름 한다. 이 새들은 모두 울음 속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토해낸다. 오근(五根)·오력(五力)·칠보리분(七菩提分) 같은 미묘 법문들을 부처님을 대신해 설법한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 모두 부처님의 경계인지라 스스로 성불의 과정에 들게 된다. 이는 일진법계의 도리를 상징적으로 말씀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불성을 발현시키면 일체의 모습과 소리는 부처님의 모습이 되고 부처님의 설법이 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래 한 알도 모두 청정한 부처로 나타나며 시끄럽고 고통어린 소리도 중생들을 깨우쳐 주는 설법으로 들린다. 불성에서는 일체의 좋고 나쁜 모습과 소리들이 그대로 불경계이며 불음이다. 눈여겨 볼 내용은 극락세계의 새들은 모두 축생이 아니라 아미타불의 화신이라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을 정보(定報)라 부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중생들 치고 업과 죄를 수반하지 않은 중생은 없다. 그러나 극락세계의 모든 것들은 업보와 죄보가 아닌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 성취한 변화신들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 있어 중생의 미혹으로 보면 이 세상은 모두 업과 죄보로 이루어져 있지만 불성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의 화현들이다. 중생계가 그대로 불계이며 중생이 그대로 부처님인 것이다. 아미타불이 보면 중생계의 축생이 아미타불의 화현이지만 중생이 보면 극락세계의 화현이 축생으로 보인다. 극락의 일이 극락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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