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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지옥, 동물원

친구들하고 흙바닥에서 노는 것 외에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던 어린 시절, 동물원은 환상적인 놀이터였다. 책이나 TV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그야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러나 흥분 속에서도 시멘트 바닥과 좁은 철창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들은 나의 들뜬 마음도 모른 채 한구석에 웅크리고 누워있거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당시에는 그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신기한 구경거리에 동물들을 향한 불쌍한 마음도 이내 잊혔다.

유럽 제국주의 시대의 유물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전시
동물, 감정·아픔 느끼는 생명
야만적 동물원 폐지 바람직

그러나 동물원은 아이들을 데려갈 만큼 교육적인 공간은 아니다. 동물들의 거대한 감옥이며 사람이 생명을 이용해 탐욕을 채우는 비인도적인 공간이다. 동물원은 태생부터가 평화롭지 못하다. 총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침략했던 18~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로 전락한 지역의 동물과 식물, 사람까지도 약탈해 자국에 전시하게 된 것이 동물원의 시작이었다. 한때는 유럽인들이 인종적인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사람까지도 관람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람에게 감옥에 갇히는 것이 최고의 형벌이듯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던 동물에게 기후와 환경이 전혀 다른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동물원의 코끼리는 실제 서식지보다 1000배나 작은 공간에 갇혀 지낸다. 북극곰은 영상 5도만 돼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동물들이 끊임없이 머리를 흔들고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은 고통스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생기는 ‘정형행동’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공연에 동원되는 동물들도 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그들의 공연은 얻어맞고 굶주리는,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특히 사람들로 인한 소음은 죽기 전까지 겪어야 하는 지독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코스타리카 정부와 국민들의 동물원 폐지 운동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코스타리카 정부는 10년 내에 모든 동물원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동물원 운영권을 쥐고 있는 기업의 저항으로 치열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가세하면서 세계 동물보호단체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불교에서는 생명에 있어 사람과 동물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산티데바는 ‘입보리행론’에서 다른 존재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과 전혀 다르지 않다며 자신의 기쁨을 다른 존재의 고통과 기꺼이 맞바꾸라고 가르치고 있다.

동물들이 사람과 존재방식에 있어 큰 차이가 없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동물도 생각을 하고 교감을 느끼고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로 확인된 바 있다. 미 하버드 대학의 마크 하우저 교수에 따르면 붉은털원숭이에게 손잡이를 당기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 뒤 손잡이를 당기면 먹이가 나오지만 옆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만들었다. 동료 원숭이의 고통을 본 붉은털원숭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더 이상 손잡이를 잡아당기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동물의 복지를 뜻하는 동물권의 개념이 낯설지 않다. 최근 국회차원에서 신약과 화장품 개발에 이용되는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한 토론회가 준비되고 있다. 서울시는 동물 쇼에 대한 반대 여론에 따라 2013년 서울대공원의 동물쇼를 폐지하고 동물쇼에 동원했던 고래들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동물원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동물을 통한 이윤추구를 더 이상 방관할 것이 아니라 폐지하거나 생태계 보전의 터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 김형규 부장
코스타리카 국민들은 동물원 폐쇄를 위한 거리행진 때 이렇게 외쳤다.

“99년이나 가뒀으면 충분해. 시몬 볼리바르 감옥을 폐쇄하라.”

배고픔보다 동료의 아픔을 더욱 고통스럽게 느꼈던 붉은털원숭이를 좁은 우리 안에 가두는 것은 야만이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씀을 이제는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6호 / 2015년 10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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