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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와 계급사회

수저계급론이 화제다. 재벌가 자식들에 대해 비난과 부러움을 섞어 금수저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수저가 이제 우리사회의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이 됐다. 수저론의 시작은 유럽이다. 유럽의 부유한 집안에서는 자식을 낳으면 유모의 젖을 은수저로 떠먹였다. 은수저는 부유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수저는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나뉜다.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되고 있는데 자산 2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원 이상은 ‘금수저’, 자산 10억원 또는 가구 연 수입 1억원 이상은 ‘은수저’, 자산 5억원 이상 또는 가구 연 수입 5500만원 이상은 ‘동수저’, 자산 5000만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원 미만일 경우 ‘흙수저’라는 식이다.

인터넷에서는 흙수저 빙고게임도 돌아다닌다. TV와 승용차의 유무 같은 구체적인 가정환경을 기준으로 자신의 수저등급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수저계급론은 주로 2030세대라 불리는 청년들 사이에 유행이다. 청년들의 사회풍자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사회를 진단하는 청년들의 불만과 우려가 담겨있다. 최근 김낙연 동국대 교수는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한국사회 부의 분포도를 추정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자산 상위 10%가 우리나라 전체 자산의 66.4%를 보유했다. 이에 반해 하위 50%의 자산비율은 전체 자산의 1.9%에 불과했다. 특히 상위 10%의 자산비율은 매년 높아지는 반면 하위 50%의 자산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수저계급론이라는 풍자를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불가능한 지옥 같은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좋은 부모를 만나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면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명문대에 진학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동수저, 혹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들은 시작부터 나락이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도 학비를 벌기 위해 학업 대신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한다. 공정한 기회와 경쟁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라지만 우리사회는 세습자본에 의한 기회 불공정이 일상화돼 버렸다.

사실 우리사회는 야생의 동물들이 사는 정글보다 더욱 험악한 사회다. 세계적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동물의 세계는 꼴찌만 아니면 살아남는 세계라고 말했다.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쌓아놓지도 않는다. 1등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세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최 원장은 나무와 곤충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적으로 성공한 식물과 수적으로 성공한 곤충의 성공이면에는 식물과 곤충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우리 자본주의 모델인 미국의 유력한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최근 기업의 초과이익을 노동자와 나누자는 포괄적 자본주의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소비자인 중산층이 무너지면 결국 기업도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에 이제는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대기업에 대한 편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자식들에게 흙수저를 물려준 불쌍한 아버지들의 직장을 빼앗아 그 자식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 김형규 부장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 인도사회의 비인도적인 신분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의 부를 통한 계급의 세습은 공개적인 인도의 신분제보다 더욱 고약스런 측면이 있다. 내용적으로 계급이 고착되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평등을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놓고 때리는 것보다 은밀한 왕따가 때로는 더 비열하고 잔인한 폭력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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