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를 멈추고, 문득 날아올라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1.02 13:50
  • 수정 2015.11.02 13:51
  • 댓글 0

오래 전 군종병으로 전역한 한 법우는 전역 후 원하는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몇 년 동안 거의 100여 곳 이상 원서를 쓰고 떨어지면서 해외연수 등 다양한 스펙을 쌓으며 노력한 끝에 결국 유망한 건설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꿈꿔왔던 대기업 생활은 생각처럼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던가 보다. 쉬는 날도 잘 없고, 야근도 밥 먹듯 하고, 주말부부로 살 수밖에 없고, 그야말로 끊임없이 일만 해야 한다고 하소연을 한다. 급기야 차라리 연봉을 적게 받더라도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개인생활도 좀 가지고,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절에도 다니면서 일과 휴식이 조화된 삶을 살고 싶어 직장을 알아보러 다닌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잘 사는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들이 계속된다고 한다. 그렇게 원하던 대기업을 얻었지만 거기에는 정작 본인이 원하는 것은 없었던 것이다.

명문대·대기업을 목표로
무작정 남들처럼 살지만
얻는다 해도 행복은 없어
진정한 나를 찾는 게 우선

우리는 너도나도 명문대와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초등학생 때부터 공부 경쟁을 시작한다. 그동안 맹목적으로 명문대, 대기업 등을 향해 마치 그것이 성공의 공식인 양 너도나도 할 거 없이 달려왔지만, 왜 그 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보지는 않았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진지하게 사유해 보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다 그 길로 뛰어가니까 그저 따라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환경운동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한 애벌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 호랑애벌레는 나뭇잎을 먹고 몸이 자꾸만 커진다. 하는 일이라고는 먹는 것 밖에 없다. 어느 날 생각한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해.’ 호랑애벌레는 이상을 찾아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가 애벌레 기둥을 만난다. 많은 애벌레들이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가니까 다들 따라 오르느라 정신이 없다. 그 꼭대기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경쟁하며, 서로 떠밀고 채이고 밟혀가면서도 끊임없이 올라간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하는 꼭대기를 향한 경쟁 속에 더 이상 친구는 없다.

호랑애벌레도 결국 고생 끝에 꼭대기에 오르지만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망한 마음을 안고 다시 기둥을 내려왔을 때 옛 연인이었던 노랑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로 변해 있었다. 노랑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를 만나 나비가 되려면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하고, 그것은 애벌레로 살아가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 결국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나비가 된 것이다.

호랑애벌레는 꼭대기에 오르려면 남들과 경쟁하며 싸워 이겨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대로 남들을 뒤따르며 맹목적으로 살던 삶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해야 나비로 태어나 날 수 있음을 알았다.

어떤가? 우리도 호랑애벌레처럼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호랑애벌레처럼 잠시 멈춰 서 보라.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그것이 정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져 보자.

어쩌면 우리도 꼭대기를 향해 경쟁하며 기어오를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문득 날아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경쟁의 끝,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몰록 날아올라 돈오(頓悟)라고 불리는 정신적인

▲ 법상 스님
도약을 통해서만 이 모든 삶의 투쟁이 끝날지도 모른다. 몰록 날아올라 깨치려면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하고, 그것은 애벌레로 살아가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방식을 기꺼이 포기한 채, 근원이라는 자신의 진실에 닿기 위해 문득 날아오르려는 간절한 발원이 있어야 한다. 달콤하던 중생으로 살아가는 습을 포기할 만큼 간절해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몰록 깨달음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고,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애벌레와 나비는 둘이 아니다. 다만 정신이 날아올라 자유로운 해탈의 나비가 되지 못하면 영원히 땅 위에서 애벌레인 중생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끊임없이 꼭대기를 향해 경쟁하면서.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