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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기자명 이미령

세상에서 가장 낮은 소리로 재구성한 역사의 현장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소련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과 그야말로 나라의 운을 걸고 한판 전쟁을 벌였습니다. 역사책에서는 이 전쟁을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독소(獨蘇)전쟁, 또는 승리한 소련의 입장에서는 대조국전쟁(大祖國戰爭, the Great Patriotic War)이라고 부릅니다.

전후세대 작가의 전쟁 이야기
영웅 무용담·인물 위주 증언은
남자들이 말하는 남자의 시각

수많은 여성들 만나 증언 기록
여성의 시각·목소리로 재구성

죽음과 참상 속 다시 본 전쟁은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의 회고록
“인간 역사 읽는 새로운 방식”

승리를 거둔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적게는 천만 명이요, 많게는 2천만 명 혹은 거의 3천만 명이나 된다고 추정할 정도로 사상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증언입니다. 지구 전체가 전쟁터였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나라가 소련이라는 사실은, 그 나라에 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말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에 태어났으므로 전후세대입니다. 하지만 작가에게 전쟁은 먼 옛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직계가족들이 이 전쟁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전사했고, 친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병에 걸려 숨졌고, 삼촌 두 사람이 전쟁터에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작가의 아버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먼 일가친척들 중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아이들과 산 채로 독일군에게 불태워졌습니다.

작가는 늘 전쟁에 대해서 조금 더 실제로 알고 싶었습니다.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또 무엇이 될지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생생한 목격담도 있고, 그리고 전쟁을 기록한 책과 문서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증언들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영웅들의 무훈담뿐입니다. 전쟁은 분명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치루는 일이지만 후대 사람들의 기억 속 전쟁은 몇 명의 뛰어난 장군이나 혹은 교활하게 수를 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적군의 사령관들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쟁의 전부는 아닐 테지요. 알렉시예비치는 그런 증언들을 가리켜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로 들려준 것’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이라고 알렉시예비치는 말합니다.

작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분명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여성입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스탈린 치하에서 조국 사랑을 세뇌 당한 소비에트 연방 사람들은 조국이 바람 앞에 등불이 되자 너도나도 나섰습니다. 남자들이 모조리 징집되자, 노인과 여자들은 자원해서 입대했습니다. 간호병으로, 취사나 세탁담당으로, 연락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수많은 여성들이 저격수가 되거나 전차나 전투기를 몰거나 지뢰를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고, 마을에서 빨치산이 되어 독일군에 저항했습니다. 히틀러는 이런 정황을 두고서 “러시아가 규칙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전한 여성들이 약 백만 명입니다. 열네 살 소녀에서부터 스물을 갓 넘긴 여성들까지…. 그런데 그 백만 명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참으로 기묘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들을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전쟁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듣겠다고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처음에는 거부했고, 망설였고, 눈치를 보았고, 그리고 더듬더듬 진술하다 멈추곤 했습니다. 하지만 말문이 트이자 저들 중에 많은 여성들이 세세하게 증언했고, 그렇게 해서 2백 명이나 되는 여성들을 일일이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녹음했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 책이 바로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입니다.

여성들의 증언에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것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서 털어놓는 여성들의 전쟁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요?

“전쟁이 끝나고 나는 백발이 돼서 집으로 돌아왔어. 겨우 스물한 살에 노파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 버린 거야.” -독일군을 몇 명이나 죽였어요? “일흔다섯 명.(중략) 마음이 너무 아파.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저격수로 참전했던 클라브디야의 증언입니다.

“어느 날 백병전이 시작됐어… 뭐가 기억나느냐고? ‘오도독오도독’소리. 그 소리가 기억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방에서 오도독오도독하는데, 사람들 연골이 으스러지고 뼈마디가 뚝뚝 부러져나가는 소리였지. 그리고 짐승의 울음 같은 처절한 비명들…(중략) 남자들이 서로를 찔러 죽이고, 숨통을 끊어놓고, 뼈를 부러뜨렸어. 총검으로 입이고 눈이고 닥치는 대로 찔렀지… 그런데 그걸 … 어떻게 말로 설명해? 나는 못해… 표현을 못하겠어… 한마디로,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몰라.”

보병중대 위생사관이었던 니나의 증언입니다.

“어린 아가씨가 남자들 소대를 지휘하는데다 지뢰까지 직접 제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센세이션이 일었지. 전쟁이 끝났지만 우리는 꼬박 1년을 더 지뢰를 제거해야 했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열이 나더라고. 뺨이 부어오르고 입도 벌릴 수가 없고, 사랑니가 나고 있었어.”

공병지뢰소대 지휘관이었던 압폴리나의 증언입니다.

“트럭을 타고 가다보면 사람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게 보였어. 짧게 깎은 머리가 파르스름한 게 꼭 햇빛에 돋아난 감자싹 같았지. 그렇게 감자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었어… 도망치다 넘어진 모습 그대로 갈아엎은 들판에 죽어 누워 있었어 … 꼭 감자처럼 ….”

위생사관 예카테리나의 기억입니다.

“무엇이 기억나느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정적이야. 중상자들이 입원해 있던 중환자실의 그 죽음 같은 고요함이 가장 기억에 남아.”

어떤 간호병의 증언입니다.

“마지막까지 나를 두렵게 한 건 딱 하나였어. 흉측한 꼴로 죽어 누워 있는 것. 그건 여자이기에 갖는 공포였지… 제발 포탄에 맞아 갈가리 찢기는 일만 없기를 바랐어.”

위생사관 소피야의 증언입니다.

“아픈 말을 들었어… 독을 품은… 돌처럼 차가운 말을… 전쟁하러 가는 건 남자들의 욕망이라나. 그런데 여자가 사람을 죽여? 그런 여자들은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 결함이 있는 여자들일 뿐이라고… 아니! 천만 번 아니야! 그건 인간의 욕망이었어.”

고사포 병사 클라라의 증언입니다.

“부대에 합류하자 엄마가 며칠 후에 게슈타포에게 붙잡혀갔어. 한마디로 인간방패였지… 놈들은 그렇게 우리 엄마를 2년이나 끌고 다녔어. 매복하고 있으면 엄마가 가는 게 보였어. 엄마는 늘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있었어. (중략) 퇴각하기 바로 직전 파시스트들이 우리 엄마를 죽였어. 총으로 쏴서….”

빨치산 병사였던 폴리나의 증언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어. 하지만 한 마을이 불길에 휩싸인 걸 봤지 … 소리를 지를 수도 큰소리로 울 수도 없었어. 정찰을 나갔다가 마침 그 마을 근처에 있었거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내 팔을 물어뜯는 것 말고는. 그때 물어뜯은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던 게 생각나… 소들도 비명을 지르고… 닭들도 비명을 지르고… 전부, 전부 다 사람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지. 숨이 붙어 있는 것들은 다 불에 타면서 비명을 질렀어. 지금 이건 내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고통이 이야기하는 거지….”

빨치산 연락병 발렌티나의 증언입니다.

남성들과 똑같이 전투에 나갔던 여성들은 소련이 승리하자 훈장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순식간에 훈장을 감추고, 전쟁터에서 생긴 흉터를 숨기고, 자신들이 병사로 싸웠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애써 기억에서 몰아내어야만 했습니다.

여성이라면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며 잔인하다고 쏘아붙이는 사람들의 시선, 전쟁터에서 남성 사병들과 길게는 3~4년을 지냈으니 신붓감으로서 빵점이라는 이웃들의 시선, 그리고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건만 정작 오히려 취직에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목소리를 낮추었고 그러다 결국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잊히게 된 또 하나의 전쟁-이것이 바로 여성들이 몸으로 기억하는 전쟁입니다.

여성들의 기억 속에는 불안해서 움츠러든 사람이 담겨 있고, 고통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는 생명이 있고, 전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난 꽃과 나무들이, 그리고 폐허가 된 가계의 예쁜 모자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세세하고 자질구레한 기억과 묘사가 전쟁을 더 긴박하고 진실하게 보여줍니다.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사람과 동물과 식물입니다. 이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과 속삭임으로 세상은 입추의 여지없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쉬 잊습니다.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힘세고, 배경 좋고, 권력을 휘두르고, 수완 있는 사람들만이 눈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몇 사람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새 놓치고 마는 생명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영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초들이, 남성과 여성과 노인과 아이들이 한 땀 한 땀 빚어냈다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울 게 없습니다. 전쟁광들의 미친 몸부림말고는….

따라서 온 사방이 읽어야 할 텍스트요, 도시의 아파트들에서, 시골의 농가에서, 거리에서, 기차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점점 커다란 귀가 되어간다는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서 인간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방식을 배웠습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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